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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일본

[특파원리포트] 일본 내각은 ‘아베 패밀리’

등록 2006-09-27 22:57수정 2006-09-27 23:00

26일 출범한 일본의 아베 내각을 둘러싸고 말들이 많다. ‘끼리끼리 내각’이니 ‘동아리 내각’이니 ‘아베 패밀리’니.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비아냥이 대부분이다. 이념적 동질성을 유지해온 측근과 총재선거에서 앞장서 지지해준 인사들로 내각을 모두 채웠으니 그런 비판을 듣기에 충분하다. 언론들도 조각의 기준을 ‘친아베’와 ‘논공’이란 말로 요약했다.

총리가 되는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를 찍지 않은 의원 가운데 입각한 사람은 본인이 출마한 아소 다로 외상뿐이다. 이른바 아베 별동대로 불리는 원조 측근들은 물론이고, 입각한 인사들은 갖은 이름의 아베 지원조직에서 감투를 쓴 인물들이다. 시니어 모임, 종합선대본부, 아베를 지지하는 중견의원 모임 등등. 제2파벌 쓰시마파에선 출마를 희망하던 누카가 후쿠시로 방위청 장관을 주저앉히는 데 앞장섰던 규마 후미오 총무회장이 그 공을 인정받아 누카가 대신 방위청 장관에 임명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있다.

‘끼리끼리 내각’ ‘동아리 내각’ ‘아베 패밀리’ 비아냥 가득

아베가 당직과 내각 인사를 하면서 가장 고심한 대목은 간사장과 관방장관 선임으로 전해졌다. 각각 집권당과 내각의 2인자이므로 비중과 주목도가 압도적으로 크다. 아베는 총재선거 이틀 전인 18일 밤 도쿄 롯폰기에 있는 모리 요시로 전 총리의 집을 은밀하게 방문했다. 저녁을 함께 먹으며 2시간 가량 머리를 맞댔다. 인사에 관해 소속 파벌 수장인 모리와 3번째이자 마지막으로 협의하는 자리였다.

당시 아베의 머릿속에 있는 카드는 ‘아소 간사장, 시오자키 관방장관’이었다. 나카가와 히데나오 간사장 유력이라는 보도가 봇물을 이뤘던 것과는 사정이 사뭇 달랐다. 모리도 이미 나카가와로부터 아베가 자신을 입각시키려 한다는 불평섞인 얘기를 들은 터였다.

모리는 “간사장은 누구로 할텐가”라며 말문을 열었다. 아베는 “간사장은 선거의 얼굴이 될 사람으로 했으면 좋겠는데…”라며 조심스레 운을 뗐다. 총재선거에서 ‘말발’을 세워 인기를 끌었던 아소를 염두에 둔 말이었다. 모리는 “간사장이 다른 파라면 관방장관은 우리 그룹에서 내야겠군. 파벌로서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가 없지”라고 못을 박았다. 명색이 총리를 배출한 자민당 최대 파벌인데, 핵심 두자리 가운데 하나는 먹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시오자키를 관방장관에 앉힐 생각을 굳혔던 아베는 가벼운 신음소리를 낸 뒤 잠시 숙고에 들어갔다. 아소는 고노그룹에 속하고, 시오자키는 니와·고가파에 속해, 둘다 모리파가 아니기 때문이다.

“참의원의 서열주의 인사를 받아들이라” 관행 요구에 아베 수용

아베는 “나카가와는 경제재정상이 어떠냐”고 속마음을 털어놓지만, 모리는 부정적이었다. 그는 “나카가와는 각료는 받아들이지 않을 걸세. 간사장을 맡기는 것이 제일이 아니겠는가”라고 권유했다. ‘천하를 다투는 중차대한 선거’라는 내년 참의원 선거를 의원 11명의 소파벌 출신이 아니라 최대 파벌이 주도해나가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아베는 나카가와 간사장을 받아들이는 대신, 간사장 대리에 최측근 이시하라 노부테루를 기용할 것을 타진해 긍정적 답을 얻어냈다.

관방장관 또한 각료 경험이 전혀 없는 시오자키를 발탁하면, 총리와 관방이 모두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 한때 요사노 가오루 전 경제재정상이 유력시됐다. 요사노는 무파벌이어서, 총리·간사장·관방의 모리파 독점이라는 비난도 피할 수 있었다. 이번에는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제동을 걸었다. 요사노는 관료에 너무 치우쳐 있으니 개혁노선에 지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베는 또 관례로 돼온 참의원 몫 각료 2명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버텼다. 그는 모리에게 참의원으로부터 “몇사람의 후보를 받아 내가 선택하면 어떻겠는가”라고 말을 건넸다. 모리를 고개를 저었다. 아베는 이어 한명을 자신이 결정하는 안을 냈으나, 모리로부터 참의원의 서열주의 인사를 받아들이라는 충고를 들었다. 아베는 22일 참의원을 좌지우지하는 아오키 미키오 자민당 참의원 회장을 비밀리에 만났다. 추천 인사 가운데 1명에 대해 난색을 보였으나 아오키는 요지부동이었다. 참의원과 정면대결을 불사할 배짱은 없었던 아베는 손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아베 부름 받아 입각한 각료들 ‘감읍’

아베는 인사와 관련해 “많은 사람의 얘기를 듣되 최후에는 자신이 결정한다”며 후지산 기슭 별장에 사흘간 틀어박혀 지냈다. 그리고 일체의 기득권은 인정하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그렇지만 자민당 왕고참들과의 물밑조정 과정에선 소신을 굽히고 체면을 구기는 장면이 여러차례 연출됐다.

한편, 아베의 부름을 받아 처음 입각한 인사들에게선 감읍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베는 고이즈미 스타일을 모방해 휴대전화로 당사자에게 직접 각료 임명을 알렸다. 중의원 회관에서 전화를 학수고대하던 아마리 아키라 경산상은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몇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고맙습니다”를 연발했다고 한다. 재도전의원연맹을 만들어 아베 대세론을 주도했던 야마모토 유지 금융상은 전화벨이 세번 울린 뒤 끊어지는 바람에 다급했다. 발신자가 아베로 나와 있는 것을 확인한 그는 서둘러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좀체로 전화가 연결되지 않아, 아베가 마음을 바꾼 게 아닌가 하고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도쿄/박중언 특파원 park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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