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기업의 진화] 3부 일본-영광이여 다시한번
2. 명예회복 벼르는 일본 금융
2. 명예회복 벼르는 일본 금융
90년대 거품 붕괴 겪은뒤
리스크 관리 강화에 중점
금융위기 ‘안전지대’ 부각 수익 감소세에 고민 깊어
투자은행 인수 ‘활로찾기’ 지난 8월27일 오후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도쿄유에프제이(UFJ)은행 본점 영업부는 나이 지긋한 고객들로 분주했다. 은행 벽에는 그 흔한 금융상품 광고도 눈에 띄지 않는다. 제로(0) 금리에도 저축 행렬이 이어지는 ‘희한한’ 나라 일본은 2년 전까지 세계 금융계의 ‘지진아’였다. 첨단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미국·유럽 금융기관들이 현란한 파생상품으로 세계를 휘젓는 동안, 일본 은행은 1억3000만명의 인구를 기반으로 한 내수 시장의 담장 안에서 예금과 대출 업무에 집중할 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본을 향한 비웃음은 사라졌다. 서구 금융기관들의 빚으로 쌓은 성채가 무너진 자리에서, 보수적 영업으로 위기를 피해 간 일본 금융기관들이 풍부한 자금력을 발판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 위기에서 빛난 ‘기본’ 일본의 금융 구조는 ‘원칙적’이다. 지난 3월 말 현재 일본 가계가 쥐고 있는 금융자산은 1453조엔(약 1경9620조원)에 이른다. 절반이 넘는 798조2000억엔이 현금과 예금이고, 주식 등 리스크성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않는다. 국민의 안전자산 선호 성향에 맞춰, 일본 은행 역시 예금을 대출하고, 실물경제를 보조하는 ‘상업은행’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1990년대 버블(거품) 붕괴 후유증을 호되게 앓았던 학습효과의 영향도 컸다. 일본총합연구소(일본총연)의 무코야마 히데히코 선임연구원은 “당시 실물자산이 붕괴하고 부실채권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금융기관들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왔다”고 설명했다. 금융을 ‘산업’으로 인식한 미국과 유럽 등의 서구 금융기관들은 레버리지(차입)를 이용해 각종 파생상품을 만들어 수익을 올리는 투자은행으로 변모했고, 결국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이들 모델은 사실상 붕괴했다. 세계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 은행의 비예금성 부채 규제,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감독 등을 강화하는 추세다. 금융은 산업이 아닌, 실물을 보조하는 핏줄 구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풍부한 자산과 낮은 금리, 탄탄한 재무제표로 무장한 일본 은행들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미쓰비시도쿄유에프제이은행의 다케우치 다카시 상석조사역은 “위기 전까지만 해도 서구의 유명 금융기관만 상대했던 외국 고객들이 이제는 일본 은행들을 ‘핵심’ 금융기관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비일본계 고객들이 많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 새로운 도전, ‘상업투자은행’ 금융위기가 은행의 ‘원칙’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는 됐지만, 막상 모범 사례로 꼽힌 일본 은행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상업은행이라는 고전적인 틀은 위기의 방패막이가 됐지만, 성장의 발목을 잡는 족쇄이기도 하다. 낮은 경제성장률과 고령화, 사실상의 제로금리 정책으로 대출을 통한 수익성 확보는 사실상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올 6월 말 현재 일본 은행들의 수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줄어 7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돌파구는 ‘변신’이다. 일본 금융기관들은 서구 유명 투자은행을 사들이며 상업은행에 투자은행 성격을 결합한 ‘상업투자은행’으로 거듭나고 있다. 미쓰비시유에프제이파이낸셜그룹은 금융위기 직후 궁지에 몰린 모건스탠리에 90억달러를 투자해 최대 주주(지분율 21%)가 됐고, 같은 해 유니언뱅크 지분 35%를 인수했다. 노무라증권도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유럽·중동 사업부문을 인수해 세계적 투자은행 인력 2500여명을 고스란히 품에 안았다. 다케우치 상석조사역은 “일본 기린맥주와 필리핀 산미겔 맥주회사의 합병이나 스즈키-폴크스바겐 제휴 등 기업고객의 수요에 대응하려면 모건스탠리 같은 서구 투자은행의 노하우가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상업은행의 안정적인 수신구조를 기반으로 회사채 발행 주선, 기업공개, 인수·합병(M&A) 자문 등 기본적인 투자은행 업무를 결합하는 전략이다. 주된 활동 무대는 신흥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코야마 선임연구원은 “중국·인도 등 신흥국의 인프라 수요가 늘면서 일본 기업과 함께 금융기관도 함께 거점을 마련하는 추세”라며 “신흥국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는 중”이라고 말했다. 도쿄/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리스크 관리 강화에 중점
금융위기 ‘안전지대’ 부각 수익 감소세에 고민 깊어
투자은행 인수 ‘활로찾기’ 지난 8월27일 오후 일본 도쿄의 미쓰비시도쿄유에프제이(UFJ)은행 본점 영업부는 나이 지긋한 고객들로 분주했다. 은행 벽에는 그 흔한 금융상품 광고도 눈에 띄지 않는다. 제로(0) 금리에도 저축 행렬이 이어지는 ‘희한한’ 나라 일본은 2년 전까지 세계 금융계의 ‘지진아’였다. 첨단 금융기법으로 무장한 미국·유럽 금융기관들이 현란한 파생상품으로 세계를 휘젓는 동안, 일본 은행은 1억3000만명의 인구를 기반으로 한 내수 시장의 담장 안에서 예금과 대출 업무에 집중할 뿐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본을 향한 비웃음은 사라졌다. 서구 금융기관들의 빚으로 쌓은 성채가 무너진 자리에서, 보수적 영업으로 위기를 피해 간 일본 금융기관들이 풍부한 자금력을 발판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 위기에서 빛난 ‘기본’ 일본의 금융 구조는 ‘원칙적’이다. 지난 3월 말 현재 일본 가계가 쥐고 있는 금융자산은 1453조엔(약 1경9620조원)에 이른다. 절반이 넘는 798조2000억엔이 현금과 예금이고, 주식 등 리스크성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미치지 않는다. 국민의 안전자산 선호 성향에 맞춰, 일본 은행 역시 예금을 대출하고, 실물경제를 보조하는 ‘상업은행’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1990년대 버블(거품) 붕괴 후유증을 호되게 앓았던 학습효과의 영향도 컸다. 일본총합연구소(일본총연)의 무코야마 히데히코 선임연구원은 “당시 실물자산이 붕괴하고 부실채권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금융기관들이 리스크 관리를 강화해 왔다”고 설명했다. 금융을 ‘산업’으로 인식한 미국과 유럽 등의 서구 금융기관들은 레버리지(차입)를 이용해 각종 파생상품을 만들어 수익을 올리는 투자은행으로 변모했고, 결국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이들 모델은 사실상 붕괴했다. 세계는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 은행의 비예금성 부채 규제,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감독 등을 강화하는 추세다. 금융은 산업이 아닌, 실물을 보조하는 핏줄 구실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된 것이다. 풍부한 자산과 낮은 금리, 탄탄한 재무제표로 무장한 일본 은행들의 위상은 한층 높아졌다. 미쓰비시도쿄유에프제이은행의 다케우치 다카시 상석조사역은 “위기 전까지만 해도 서구의 유명 금융기관만 상대했던 외국 고객들이 이제는 일본 은행들을 ‘핵심’ 금융기관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비일본계 고객들이 많이 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 새로운 도전, ‘상업투자은행’ 금융위기가 은행의 ‘원칙’을 되새기게 하는 계기는 됐지만, 막상 모범 사례로 꼽힌 일본 은행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상업은행이라는 고전적인 틀은 위기의 방패막이가 됐지만, 성장의 발목을 잡는 족쇄이기도 하다. 낮은 경제성장률과 고령화, 사실상의 제로금리 정책으로 대출을 통한 수익성 확보는 사실상 한계에 다다른 상황이다. 올 6월 말 현재 일본 은행들의 수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줄어 7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 돌파구는 ‘변신’이다. 일본 금융기관들은 서구 유명 투자은행을 사들이며 상업은행에 투자은행 성격을 결합한 ‘상업투자은행’으로 거듭나고 있다. 미쓰비시유에프제이파이낸셜그룹은 금융위기 직후 궁지에 몰린 모건스탠리에 90억달러를 투자해 최대 주주(지분율 21%)가 됐고, 같은 해 유니언뱅크 지분 35%를 인수했다. 노무라증권도 파산한 리먼브러더스의 유럽·중동 사업부문을 인수해 세계적 투자은행 인력 2500여명을 고스란히 품에 안았다. 다케우치 상석조사역은 “일본 기린맥주와 필리핀 산미겔 맥주회사의 합병이나 스즈키-폴크스바겐 제휴 등 기업고객의 수요에 대응하려면 모건스탠리 같은 서구 투자은행의 노하우가 절실하다”고 설명했다. 상업은행의 안정적인 수신구조를 기반으로 회사채 발행 주선, 기업공개, 인수·합병(M&A) 자문 등 기본적인 투자은행 업무를 결합하는 전략이다. 주된 활동 무대는 신흥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무코야마 선임연구원은 “중국·인도 등 신흥국의 인프라 수요가 늘면서 일본 기업과 함께 금융기관도 함께 거점을 마련하는 추세”라며 “신흥국이 ‘기회의 땅’으로 떠오르는 중”이라고 말했다. 도쿄/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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