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교수의 경제산책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와 류동민 충남대 교수(경제학)가 집필하는 새 칼럼 ‘경제산책’이 매주 월요일에 선보입니다. 두 교수는 국내외 경제 현안들을 꿰뚫어 보고 비평하는 형식으로 매주 번갈아가며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잘 알려져 있듯이 미국의 갑부 워런 버핏은 부자감세를 반대해 왔다. 한 언론인이 부자의 세금을 올리자고 주장하는 그에게, 그런 말은 계급투쟁을 조장한다고 비판받을 수도 있다고 물어보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요, 그런 투쟁이 존재하죠. 하지만 싸움을 걸고 있는 것은 내가 속한 부자계급이고, 우리가 이기고 있잖아요.” 돈과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고 불평등이 너무 심한 사회에서는 부자들도 마음이 편치 않은 법이다.
빈부격차가 미국 못지않은 우리 사회도 복지정책을 둘러싸고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세간을 시끄럽게 했던 서울시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복지전쟁의 첫 전투와도 같았고 결국 진보의 승리로 끝났다. 어떤 반대논리도 아이들의 밥 한 끼는 사회가 책임지자는 목소리를 이기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부자 아이들에게까지 무상급식을 줄 필요는 없다는 주장은 아이들을 편 가르지 않는 보편적 복지의 정신 앞에 고개를 숙였다. 복지포퓰리즘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는 전가의 보도와 같은 비판도 먹히지 않았다. 재정에 관한 우려는 토목공사 등에 낭비되는 세금과 부자감세를 생각하면 설득력이 없고, 한국의 복지는 국제적으로나 소득수준에 비해서나 너무 낮은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제 복지가 대세라는 흐름 속에서 더욱 열띤 복지논쟁이 벌어질 것이고 보수세력의 반격도 거세질 것이다. 하지만 복지의 확충 없이는 심각해진 불평등이 안정적 성장의 기반마저 해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최근에는, 잘 알려진 주류경제학의 여러 연구들도 소득과 부의 불평등이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심각한 양극화는 사회적 갈등과 불안정을 심화시켜 투자를 저해하고, 금융시장이 불완전한 현실에서 빈부격차는 가난한 이들의 교육 기회를 가로막아 빈곤을 대물림하고 결국 성장을 가로막는 것이다.
세계은행이 2006년 펴낸 세계개발보고서도 기회의 공평함이 경제발전에 핵심적이고 이를 위해 아이들의 건강이나 교육 기회의 보장이 필수적이며, 불평등을 개선하려는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또한 학자들은 복지가 언제나 효율성을 해친다는 주장은 근거가 미약하며, 세계화와 개방이 진전될수록 약자를 보호하는 정부의 역할은 더욱 커지고 있다고 보고한다.
신자유주의와 심각한 사회양극화가 미국발 금융위기의 뿌리였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보자. 1980년대 이후 사회복지 축소로 불평등이 심화되고 빈곤층이 더 가난해졌지만, 금융규제 완화를 배경으로 급증한 부채와 거품(버블)이 과다한 지출을 떠받쳤고, 결국 그 붕괴가 금융시스템의 파산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알고 보면 최근 미국의 재정위기도 복지지출이 아니라, 감세와 과다한 군사비 그리고 불황 자체의 탓이다.
불평등보다 복지병이 더 걱정이라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들이다. 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새로운 버전이 필요하다지만, 제대로 된 복지에는 반대하면서 따뜻한 자본주의 운운하는 것은 아무래도 위선적이다.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이강국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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