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교수의 경제산책
김형, 이제 이른 추석도 끝나고 가을 기운이 완연합니다. 고향 부산의 해운대와 광안리, 바닷가 해수욕장들에도 가을바람이 시원하겠지요. 그 바닷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영도조선소의 좁은 크레인에서 민주노총의 김진숙 지도위원이 아홉달이 다 되어가도록 농성중에 있습니다.
그녀는 한진중공업의 부당한 정리해고를 반대하며 목숨을 건 싸움을 하는 중입니다. 공장의 해외이전, 주식배당, 임원들의 급료인상 등 대규모 정리해고로 노사관계가 파국을 맞은 한진중공업의 이야기는 잘 알고 계시겠지요. 외유를 하다 국내에 몰래 들어온 회장은 청문회에서 해결책은 얘기하지 않고 고개만 숙였습니다.
많은 이들은 그녀의 싸움에 눈을 흘깁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과도한 요구가 경제를 어렵게 만들고, 이들을 쉽게 해고할 수 있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기업의 경쟁력에 필수적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경제위기에 책임이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고, 80년대 미국 기업의 구조조정 이후 발전된 연구들을 보면 대량해고나 노동시장 유연화가 장기적으로 기업의 성과에 도움이 된다는 실증적 증거도 미약합니다. 비정규직을 포함한 한국의 전체 노동시장은 세계적으로도 유연하며, 한국 기업에는 노동시장 유연화가 기업의 성과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연구조차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주주의 이익과 이윤 추구를 위해 노동자를 팽개치고 해외로 공장을 이전하는 한국 재벌의 행태를 잘 보여줍니다. 한진중공업의 구조조정이 그대로 인정된다면 더 많은 재벌들이 글로벌화와 함께 정리해고를 남발할지도 모릅니다. 많은 보호를 받고 있는 정규직의 해고 문제보다 비정규직 문제가 훨씬 더 심각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맞는 이야기지만, 생활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해고 앞에선 모두가 같은 약자일 것이며, 무분별한 정리해고에 대한 반대는 열악한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도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사회 전체가 해고된 노동자의 생활을 보조하고 훈련과 재취업을 지원해 주는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이 필요하지만, 이 사태에 대해 애써 외면하고 있는 정부와 정치권이 답답할 따름입니다.
희망은 오히려 이 슬픈 현실이 많은 이들을 분노케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부산으로 달려가는 희망버스에 수많은 시민들이 몸을 실었고 이제 그 버스는 전국을 달립니다. 희망버스가 향하는 곳은 서울광장의 촛불과 현장의 노동자들이 만나고, 전태일의 불타는 외침과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람 사는 세상의 꿈이 만나는 곳이겠지요.
선거철이 다가오자 여당조차도 복지를 이야기하고, 새로운 정치세력에 대한 기대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복지국가의 미래는 분명 매력적이고 정치의 새바람도 바람직한 일이겠지요. 하지만 재벌의 부조리와 기득권의 권력이 이렇게 강력한 현실에서 먼저 필요한 것은 희망버스가 보여주는 노동과 시민의 튼튼한 연대일 것입니다. 밤바람이 더 차가워지기 전에 농성이 해결되길 바랍니다. 김형도 환절기 감기 조심하시길.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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