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교수의 경제산책
공황을 의미하는 ‘패닉’이라는 단어의 뿌리는 그리스 신화의 판이라는 신이다. 허리 위는 사람의 모습이고 아래는 염소의 모습인 이 신은 소리를 지르며 나그네에게 공포를 주어서 패닉의 어원이 되었다.
그 신화의 발상지인 그리스의 위기가 유럽과 세계의 금융시장을 다시 공포에 빠뜨리고 있다. 그리스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돈을 물린 유럽 금융기관들의 엄청난 손실이 예상되고 이탈리아와 스페인 등으로 위기가 번져나가면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에 버금가는 쇼크가 될 것이라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 정부는 외부의 지원에 의해 만기가 돌아오는 빚을 막고 있지만, 시한폭탄 같은 파산 가능성은 금융시장에 끊임없는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그리스에 대한 지원조건은 재정적자의 감축인데, 이는 방만한 재정지출이 위기의 근본 요인이라는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긴축정책이 그리스 경제를 더 심각한 불황에 빠뜨려 재정적자를 증가시키고 시민들의 저항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이코노미스트지도 지적하듯, 남유럽 정부의 재정문제가 위기를 일으킬 만큼 심각하다고 보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그리스의 재정문제도 엄청난 지하경제와 탈세, 감세정책으로 인한 세수 감소 그리고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 등 구조적 문제들이 겹쳐서 발생한 것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유럽 통합과 관련된 원죄이다. 그리스 등의 정부는 유로를 사용하며 저금리로 외국자본을 끌어와 부채를 메꾸었지만, 수출경쟁력은 약화되어 경상수지 적자가 심각해졌다. 또한 유로존 통합 과정에서 금융기관들은 이들 국가의 국채를 안전자산으로 판단했지만, 그 환상이 깨지면서 패닉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유로존은 화폐의 통합은 성공했지만 정치적 통합은 아직 갈 길이 멀어서, 각국 간에 재정정책의 조화는 미약하고 유럽중앙은행은 각국의 국가부채를 떠받치는 데에는 아무래도 소극적이다.
일각에서는 그리스를 포함하여 유럽의 위기 가능성을 완전히 해소하려면 그랜드플랜이라 불리는 통 큰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유럽재정안정기구의 가용자금을 대폭 증액하고, 유럽중앙은행의 국채 매입 등의 방법으로 금융권을 지원하며 동시에 그리스의 부채를 탕감한다는 내용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 지도자들의 결단이 필요하며, 미국과 중국, 그리고 주요 20개국(G20) 등 글로벌 공조도 촉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 역시 부담을 져야 하는 독일 국민들과, 위기에 직접 책임이 없는 다른 국가들의 반대 가능성이 크다. 결국 신뢰 회복을 위해서 현실에서 쉽지 않은 대규모 지원이 먼저라는 해법과, 우선 긴축을 강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는 와중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사태는 결국 그리스의 파산과 유로존 탈퇴로까지 이를지 모르지만, 그 충격의 최소화를 위해서도 신속한 대응과 관리가 필수적이다.
신화에 등장하는 판 이야기는 엄습하는 공포에 조심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것이다. 세계 경제에 패닉을 이기기 위한 지혜로운 정책 공조가 다시 요구되고 있다.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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