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교수의 경제산책
미국의 월가에서 시작된 시위가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1%의 탐욕스러운 금융자본가들과 금권정치, 그리고 불평등한 경제체제를 반대하는 시위 행렬은 한국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불평등과 빈곤의 심화, 기득권 세력의 정치 장악, 그리고 부정부패로 말하자면 우리도 미국보다 나을 것이 없다. 광장과 거리 그리고 다른 수많은 곳에서 사람들이 분노하고 저항하지 않는가. 하지만 인정해야만 하는 현실은 그 많은 행동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서민들의 삶은 팍팍해져 왔고, 황당한 불법과 비리는 계속되며, 정부는 여전히 대기업과 부자의 편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압도적 다수의 시민들이 변화를 바란다면 선거로 정치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수많은 이들이 현 정부의 부조리에 분노한다 해도 선거를 이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먼저 많은 사람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투표 자체를 하지 않는다. 경제학에 따르면, 합리적인 유권자라면 나 한 사람의 표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확률이 너무 낮기 때문에 시간이나 수고 등 기회비용을 고려하여, 투표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후보들 사이의 지지율이 박빙일 때는 한 표의 영향력이 높아질 것이므로 투표율이 높아질 수 있고 실증연구들도 이를 확인해준다.
선거가 무력해지는 다른 중요한 이유는, 투표를 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이해를 가장 잘 대변하는 정당에 표를 던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특히 부자들과는 다르게, 많은 가난한 이들은 오히려 부자를 위하는 정당에 표를 던져서 계급투표라는 이상을 환상으로 만들어버린다. 수많은 서민들이, 잘살게 해주겠다는 보수정당의 잘못된 논리와 사탕발림 공약을 너무 쉽게 믿어버린다. 게다가 돈과 권력 그리고 낡은 이데올로기와 비방은 선거에서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한다.
아마도 가장 큰 문제는 유권자들이 소중한 표를 믿고 던질 만한 정치세력이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정부여당을 싫어하고 <나는 꼼수다>에 열광하지만 그렇다고 야당이 썩 맘에 드는 것도 아니고 진보정당은 관심의 대상도 아니다. 제대로 뜻을 펴보지도 못하고 우왕좌왕하던 민주정부에 실망한 뒤라면 더욱 그럴 터이다. 정치권 밖의 인물에 대한 높은 관심은 바로 그 반증이며, 이는 진보를 이야기하는 정당에 뼈저린 반성과 혁신을 요구한다.
이런저런 문제들에도 불구하고 선거는 시민들이 그 머릿수만큼 세상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가장 평등한 기회이다. 실제로 이론의 예측과는 달리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며 학자들은 이 ‘투표의 역설’을 정치적 참여에서 얻어지는 만족감 때문이라 설명하기도 한다. 물론 분노와 희망으로 추동되는 정치적 실천을 비용편익 모델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많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1%만을 위하는 불공정한 사회를 더 나은 곳으로 바꾸는 것은 결국 수많은 시민들의 정치적 참여와 실천이며, 투표는 그 출발점이다. ‘우리는 99%다’라는 외침이 필요한 곳은 분명 광장이나 거리만이 아닐 것이다.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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