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교수의 경제산책
찬바람이 부는 겨울은 아무래도 사람들을 더욱 착하게 만드는 듯하다. 가난한 누군가는 이 추위 속에서 분명 더 많이 떨고 있을 터이다. 게다가, 누구든 자신과 이웃 사람들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한 해가 저무는 12월이 아닌가. 연말이면 사람들은 정말 눈송이처럼 순수한 마음이 되어 기부를 하고, 캐럴을 들으며 구세군 냄비에 돈을 넣는다. 뉴스가 끝날 무렵에는 앵커들도 한마디씩은 이웃에 대한 관심을 이야기한다. 하긴 산타클로스의 기원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자선을 베풀던 주교 세인트 니콜라스였다.
하지만 추위 때문에 더욱 안타까운 죽음에 관한 소식은 마음을 착잡하게 만든다. 목숨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때로 질기다지만, 차갑고 비정한 시장과 효율의 논리 속에서 너무 쉽게 스러져가기도 한다.
죽음 하나. 9일 새벽 공항철도에서 살을 에는 추운 날씨에 귀마개와 두꺼운 옷을 입고 작업하던 노동자들이 기차에 치여 철로 위에 쓰러졌다. 모두가 180만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밤샘작업을 하는, 코레일공항철도의 하청회사 소속 비정규직이었다. 그러나 그 모두는 가족들에겐 하늘 같은 아버지이고 남편이었을 것이다.
시설운영부문의 민영화와 외주화 과정에서 추진된 무리한 비용절감이 사고의 한 배경이었고 사고 당시 현장에 관리감독원도 배치되지 않았다니 더욱 안타까운 일이다. 1990년대 영국은 철도산업을 쪼개고 민영화했지만, 이후 안전사고와 철도 대란이 끊이지 않아, 결국 2002년 선로를 다시 국유화했다. 누군가는 큰 이득을 얻었지만 국민 대부분은 피해를 본 이 경험이 이제 우리 일이 되고 있는 것이다.
죽음 둘. 12일 장애인 박아무개군이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추운 겨울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단칸방 안에 가스난로를 켜고 자다가 화재가 나서 목숨을 잃었다. 언제나 착하고 맑았다는 아들, 잠시 집을 비운 아버지에겐 얼마나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었을까. 또 하나의 가슴 아픈 죽음이다.
에너지 구입비가 소득의 10%를 넘는 소위 에너지 빈곤층이 120만가구가 넘고, 그저 돈이 없어서 얼음장 같은 방에서 한겨울을 버티는 이웃들이 수없이 많다. 작년에는 점증하는 사회적 비판 속에서 그나마 가구당 17만원의 저소득층 에너지 복지법안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그 난리를 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통과시키던 국회에서 1년이 넘게 표류중이라 하니 답답할 따름이다.
신영복 선생은 칼잠을 자는 좁은 감옥에서는 그래도 다른 수감자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이 여름보다 차라리 낫다고 썼다. 자선과 온정은, 힘겹게 겨울을 나는 이 땅의 많은 사람들에게 따뜻한 체온만큼이나 고맙고 소중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은 그 따뜻한 마음을 정책과 사회구조의 변화로 이어지도록 하는 노력일 것이다.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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