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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나, 도지사야!

등록 2012-01-08 20:30

류동민 교수의 경제산책
‘아이 엠 도지사’라는 애플리케이션 덕택에 오랜만에 웃었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나 도지삽니다’를 단순반복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주인공은 오랫동안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더구나 스스로 지식인에서 노동자로 ‘존재 이전’(이 얼마 만에 들어보는 말인가!)까지 했던 분이다. 굳이 갖다 붙이자면 내게는 한참 위의 대학 선배가 되는데, 유독 ‘변절’이 많던 우리 전공 분야에서 끝까지(!) 지조를 지키는 분으로 한때 후배들에게는 전설이었던 적도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이 가진 이념이나 철학의 지속성보다는 정서와 습속의 강고함을 더 믿는 편이다. 그래서 이념적인 변화는 변화일지언정, 그분은 적어도 육체노동 한번 해본 적 없는 나 같은 사람보다는 노동자의 애환에 관해 잘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가 세간의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행동한 것은 어쩌면 개인적 캐릭터보다는 권력 자체의 속성 탓인지도 모른다.

최근에 읽고 있는 책에서 ‘모든 의미는 권력관계에 의해 구성된다’라는 구절을 발견했다. 의미 그 자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럴듯하다. 이를테면 ‘너는 나의 가장 좋은 친구야’라거나 ‘너만을 사랑해’ 같은 지극히 사적인 표현도 그것이 일단 말해지고 나면, 권력관계를 형성하며 그에 기초한 의미를 부여받게 된다. 그러니 권력에 부여되는 유형·무형의 힘이 왕년의 노동운동가인 도지사 스스로는 왜 문제인지도 모를 정도로 그 의미를 자가발전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도지사 해프닝이 보여주는 또 하나의 중요한 교훈은 비판여론의 확산이 권력의 의미를 다시 규정하는 구실을 수행하였다는 점이다. 모든 권력에는 끊임없는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는 고전적인 지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라는 도구를 통해 다시 한번 입증된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력의 경우 그래도 이 정도의 사후적 견제나마 가능하지만, 시장의 권력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한 것도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나 오너야!’라는 말에 부여되는 권력 의미는 ‘나 도지삽니다’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닌 것이다. 비단 재벌계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은 물론 사학이나 교회 같은 유사 기업 조직에 이르기까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도처에 널려 있다.

작년 하반기 뜨거운 이슈였던 희망버스에 대해 평소 진보적인 학자들도 비판하는 경우가 있었다. 산업경쟁력 약화라는 거시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든가, 더 어려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많다든가, 개별 기업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요구한다든가 등 많은 지적들이 있었고 나름대로 진실의 일면을 담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마도 시장경제 최후의 성역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관심과 실천을 불러일으킨 점은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이다. 경제민주주의가 중요한 화두가 될 올 한해, 도지사 해프닝을 반면교사로 삼아 희망버스의 합리적 핵심을 이어나가는 것은 그래서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된다. 충남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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