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교수의 경제산책
일제 때 수필가 민태원은 ‘청춘예찬’에서 청춘은 듣기만 하여도 설레는 말이며 인생의 황금시대라 썼다. 하지만 요즘 우리 청춘의 모습은 우울하고 슬프기까지 하다.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역시 학교폭력에 견디지 못해 자살한 중학생의 이야기다.
왕따와 이지메 등은 언제 어디서나 있어 왔겠지만 최근에는 그 폭력성이 더욱 심해져서 끔찍한 결과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폭력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아이들이나 그들의 부모들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놀라울 정도이다.
폭력적인 게임, 엄격하지 못한 처벌, 무심한 가정과 방관하는 학교 등, 학교폭력이 심각해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더욱 넓은 시각에서 보면 사회경제구조의 변화와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경쟁지상주의와 이기적인 승자독식 사회의 등장, 그로 인한 소득불평등의 악화가 바로 그것이다.
이미 여러 실증연구들은 다른 요인들을 고려하고도, 소득불평등이 살인사건과 강간, 폭력범죄 그리고 정신병과 비만까지 거의 모든 사회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보여준다. 드물지만 학교폭력을 다룬 연구도 있다. 최근의 한 연구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작성한 여러 나라의 데이터를 비교하여 소득불평등이 높을수록 학교폭력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보고한다.
아이들이 어른을 닮듯이 교실은 사회의 축소판이다. 반이 바뀌자마자 ‘일진계급’과 ‘찌질이계급’이 나뉘는 현실은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어른들 사회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 초등학교부터 과도한 경쟁으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는 입시 위주의 교육, 아파트 평수를 서로 물어보는 어린 학생들, 무리해서라도 아이들에게 비싼 옷을 사 입히고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엄마들, 이런 현실이 과연 학교폭력과 무관하다 할 수 있을까.
학교폭력은 청소년들의 사회성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신뢰와 사회자본을 악화시켜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청소년들은, 학업능력은 뛰어나지만 주변 사람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능력인 사회성은 이미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10대만 아픈 것이 아니다. 학교폭력을 잘 피하고 엄청난 입시경쟁을 뚫고서 겨우 대학에 들어와서도, 우리의 젊은이들은 엄청난 등록금 부담과 무한대의 스펙 경쟁 그리고 취직이 어려운 불확실한 미래에 직면한다. 이들에게 청춘이란 원래 불안하고 막막하고 흔들리는 것이라며 따뜻하게 위로하는 것만이 기성세대의 몫일까. 더욱 필요한 것은 지금 청춘의 삶이 왜 그렇게 고단하고 힘들어졌는지 사회경제적 원인을 고민하고 함께 그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일 것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학교폭력에 시달리고 미래가 어둡게만 보이는 우리의 청소년들과 젊은이들은 정말로 죽을 만큼 아프고 힘들어 보인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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