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교수의 경제산책
얼마 전 일본 정부는 2011년 일본의 무역수지가 대지진과 엔화 강세를 배경으로 31년 만에 처음으로 약 2조5000억엔의 적자를 기록했다고 발표하여 충격을 주었다. 파나소닉 등의 전자업체들은 사상 최악의 적자를 기록했고, 신용평가기관들은 부실한 재정을 이유로 일본의 신용등급을 강등할 전망이다. 20년을 넘는 불황에도 버티던 일본 경제가 침몰하기 시작하는 것일까?
이미 서구 언론에서는 일본 경제의 운명을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진 바 있다. 저명한 언론인 에이먼 핑글턴은, 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는 안정적이며 경상수지 흑자와 낮은 실업률을 생각하면 일본이 실패했다는 생각은 환상이라 주장한다. 사실 3조달러가 넘는 세계 최대의 해외자산과 튼튼한 부품산업 등 일본 경제의 힘은 여전하며 국내총생산(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도 10%대 초반에 불과하다. 일본은 이미 무역수지보다 해외에 투자한 자산으로부터 나오는 소득수지가 훨씬 크며, 이는 2011년 14조엔에 이르러 경상수지는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폴 크루그먼 등이 지적하듯 구조적인 문제가 뚜렷하다. 고령화를 배경으로, 국내총생산의 두 배가 넘는 국가부채와 정부지출의 절반을 빚으로 메우는 재정문제가 일본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는 국채의 90% 이상이 국내에서 소화되지만, 저축률이 하락하고 경상수지마저 적자로 돌아선다면 앞날이 걱정이다. 나랏빚을 외국투자자에 의존하고, 이들의 믿음이 약화된다면 국채가격이 급등하고 재정위기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성장과 함께 구조적인 문제에 직면하고 위기가 터지기도 하는 것이 어디 일본만의 문제일까? 더욱 중요한 것은 위기에 대응하여 변화와 개혁을 이루어내는 사회의 역량일 것이다. 이를 고려하면 일본 경제의 문제도 정치에 있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거품 붕괴 이후 일본 정부는 구조개혁 대신 비생산적인 토건지출로 경제를 자극하려 했고 재정개혁은 진전되지 않았다. 이제 와서야 집권당은, 소비세의 인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정치적 반발 속에서 전망이 불투명하다.
이제는 조용하던 일본인들조차 정치의 쇄신을 열망하고 있으며, 하시모토 도루가 이끄는 오사카 유신회의 돌풍은 이를 잘 보여준다. 우익적인 색채와 독단적인 스타일에 대한 우려도 높지만, 그는 대중성을 바탕으로 변화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들은 최근 메이지 유신의 기초가 되었던 사카모토 료마의 ‘선중팔책’을 본떠 여러 공약들을 제시했다. 그중에서 청년층을 위한 연금개혁, 그리고 자산세 강화와 기본소득제 검토 등의 아이디어는 주목할 만하다. 일본의 정치가 얼마나 변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경제개혁을 위해서도 깨어 있는 국민들이 제 목소리를 내며 갈등의 해결책을 찾아가는 건강한 민주정치가 필수적일 것이다.
가라앉고 있는 일본 경제는 ‘바보야, 정말 문제는 정치야!’라고 외치고 있다. 많이 늦었지만, 일본의 정치가 이에 화답할 차례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