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교수의 경제산책]
이변이 없는 한 며칠 뒤, 미국이 지명한 한국 출신의 김용 다트머스대 총장이 세계은행 총재로 임명될 예정이다. 세계은행의 총재 임명은 회원국의 투표권 중 85% 이상의 지지가 필요한데, 미국이 15% 이상의 지분과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이상 거의 확정적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의 임명에 관해 많은 경제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 그리고 일부 언론까지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거시경제나 국제금융을 잘 모르며, 정부나 국제기구에서 별다른 경험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러 사람들은 세계은행의 운영을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통한 빈곤의 해결을 잘 이해하는 경제전문가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파이낸셜 타임스> 등 보수적 경제 언론들은 신자유주의식 성장만으로는 개도국의 빈곤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몇 년 전 그의 글을 트집 잡기도 한다. 그러나 세계은행도 최근에는 빈곤층을 위한 성장을 강조하는 것을 보면, 이는 다분히 이데올로기적인 비판이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역시 세계은행의 수장을 뽑는 과정이 공개적이면서 능력에 기초한 것이 아니고, 미국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도국에는 정실주의의 극복과 투명한 거버넌스를 강조하면서 세계은행 스스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세계경제에서 선진국의 위상은 점점 더 약화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미국 정부도 고민이 적지 않았다. 기존 관행을 깨고, 보건과 개발 전문가인 아시아계의 김용을 지명한 것은 회심의 카드였던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미국 등 선진국은 국제사회에서 개도국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견제하려 한다. 개도국의 입장을 주로 반영하며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의 주류경제학적 정책 제언을 비판해 온 유엔무역개발회의(운크타드)가 당장 그 대상이다. 선진국들은 21일부터 열릴 유엔무역개발회의 총회를 앞두고, 이 기구의 연구의제를 국제금융이나 전반적인 개발문제 대신 거버넌스나 민주주의 등의 이슈에 제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글로벌 거버넌스를 둘러싼 힘겨루기에서 ‘선진국의 역습’이라 부를 만하다.
이번 세계은행 총재 임명전에는 개도국 출신의 경쟁자들도 참여하고 있다. 일부 언론과 보수적인 이들은 세계은행에서 오랜 경험이 있는 주류경제학자인 나이지리아의 오콘조이웨알라가 최선의 후보라고 주장한다. 반면, 좀더 진보적인 학자들은 세계은행의 진정한 개혁을 위해 콜롬비아의 재무장관을 지낸 오캄포 교수를 지지한다. 하지만 김용 총장은 미국 정부뿐 아니라 제프리 색스 등 개혁파의 지지도 받고 있으며,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도 반대하는 분위기는 아니다.
아무쪼록 김용 총장이 임명된다면 시장이 주도하는 성장의 한계를 언제나 잊지 않기를 바란다. 나아가 많은 개도국 시민들의 바람대로, 그가 세계은행을 미국의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전세계의 것으로 만들고, 글로벌 거버넌스의 개혁에도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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