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 교수의 경제산책
이강국 교수의 경제산책
손학규 민주통합당 고문의 대선 구호가 장안의 화제다. ‘저녁이 있는 삶’. 무한경쟁 속에서 바쁘게 일하느라 삶의 여유를 잃어버린 우리 모두의 가슴에 깊이 와닿는 문구다. 손학규 고문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일자리를 더 만들고 잃어버린 저녁을 국민들에게 돌려주겠다고 한다.
한국 사회의 열악한 노동 현실은 주지의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할 때 노동시간은 단연 1등으로, 우리는 다른 선진국 노동자보다 1년에 평균 2달이 넘게 더 일한다. 반대로 노동생산성은 최하위권이고 임금격차는 가장 높은 수준이며 노사관계도 대립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선을 앞두고 우리 정치가 소외되어 왔던 노동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물론 노동시간 외에도 여러 노동문제는 산적해 있다. 밤샘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은 저녁은 둘째 치고 밤부터 있는 삶이, 그리고 변변한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청년들은 우선 출근하는 아침이 더 간절할 것이다.
아무튼 대선을 앞둔 정치권의 구호가 말만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지고 여러 노동문제들을 풀기 위한 노력들이 나타나기를 기대해 본다. 경제민주화도 복지국가도 결국엔 일하는 사람들의 편안한 삶을 위한 노력이며, 그 목표들을 이뤄내기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의 힘과 지지가 필수적이다. 모든 후보들이 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말하지만, 노동을 둘러싼 논의 속에서 과연 누가 진정으로 국민의 행복을 바라는지 뚜렷이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이 기업경쟁력을 외면한 너무 이상적인 주장일까? 외환위기 때 유한킴벌리는 정리해고 없이 노동시간을 단축하고 직원들의 휴식과 교육을 장려하는 4조2교대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생산성과 기업의 성과가 눈부시게 높아져 투자와 고용이 더욱 늘어났다. 대공황기 미국의 ‘켈로그’사는 8시간 노동을 6시간으로 단축해 실업을 성공적으로 막았고, 미국 전역에 일자리 나누기 운동을 확산시키기도 했다. 켈로그의 노동자들은 자유와 삶의 의미를 찾았고 노동 자체에도 더 집중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노동시간에 대한 고민은 우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비판적인 경제학자 줄리엣 쇼어는 경제가 어려우니 노동자들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주장은 실업과 불황을 심화시킬 것이라 비판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적으로 노동시간은 계속 줄어들어 왔지만, 1980년대 이후 미국은 노동시간이 늘어나 부분적으로 실업과 과소고용의 원인이 되었다. 또한 현재와 같은 불황에는 덜 일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며, 나아가 환경과 행복한 삶에도 도움이 된다. 하긴 이미 자본주의의 생산력은 우리가 그렇게 오래 일하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높으며, 버트런드 러셀은 게으름을 찬양하며 4시간 노동을 주장하지 않았던가.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 저녁은 편히 쉴 수 있기를.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경제학)
<한겨레 인기기사>
■ ‘국민 귀요미’ 연재 “멋진 동작 위해 키 더 컸으면 좋겠어요”
■ “MB에 일심으로 충성한 검사의 마지막 성과급”
■ 개도 축산물? 오피니언 리더에게 물었더니
■ 대법관 잘못 뽑으면 사람 목숨이 위험해요
■ [화보] 보령머드축제 ‘머드탕’으로 풍덩!
■ ‘국민 귀요미’ 연재 “멋진 동작 위해 키 더 컸으면 좋겠어요”
■ “MB에 일심으로 충성한 검사의 마지막 성과급”
■ 개도 축산물? 오피니언 리더에게 물었더니
■ 대법관 잘못 뽑으면 사람 목숨이 위험해요
■ [화보] 보령머드축제 ‘머드탕’으로 풍덩!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