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의 경제산책
1848년 시카고에서 탄생한 근대적 선물시장인 시카고상품거래소는 농업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미래의 거래에 관해 정해진 가격으로 현재 계약하는 선물시장의 목적은 농산물 가격의 안정과 위험의 회피였다.
하지만 수요가 경직적인 곡물의 선물시장은 엄청난 돈벌이의 기회가 되었다. 이제 이 시장에는 거대한 금융자본이 대거 참여하고 있으며, 위험 회피의 수단이 투기의 지렛대가 되어 거래의 80% 이상이 투기적이라 추정된다. 이와 함께 수십 년 동안 안정적이던 곡물가격은 2006년 이후 급등과 불안정을 동시에 겪고 있다. 지난 7월에는 미국 곡창지대의 가뭄과 폭염을 배경으로 다시 옥수수, 밀, 대두 등의 가격이 폭등해 식량위기의 우려를 던져주었다.
최근 곡물 가격이 급등한 배경에는 사료용 수요 증가와 미국 정부의 바이오연료 정책도 한몫 했지만, 곡물의 안정된 공급과 재고를 고려하면 투기적인 요인이 결정적이라 할 수 있다. 몇몇 학자들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연구는 선물시장의 투기와 곡물 가격 변화의 인과관계가 미약하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많은 비정부기구(NGO)들은 그 반대라고 주장했고, 2011년 국제결제은행(BIS)의 보고서는 곡물 선물시장에 대한 금융적인 투자가 단기적으로 곡물가격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상품시장의 ‘금융화’로 불리는 이러한 변화를 촉진한 것은 역시 규제완화였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이후 투자포지션 제한이나 선물거래보고 의무 등 금융기관들의 선물시장 투자에 대한 규제가 지속적으로 완화되었고, 2000년에는 장외시장을 포함한 선물거래의 규제를 철폐한 상품선물현대화법이 도입되어 투기라는 불에 기름을 부었다. 특히 곡물메이저들은 최종수요자로 인정받아 별다른 규제 없이 선물시장에 참여했고, 우월한 정보를 이용해 곡물시장을 장악했다.
전세계가 금융위기를 겪고 식량위기에 직면하자 투기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고, 그것을 규제하기 위한 노력도 발전하고 있다. 미국의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안은 상품선물시장의 포지션 제한과 장외시장 거래의 제한 등을 포함한 조처들을 담고 있으며, 유럽연합(EU)도 유사한 규제안을 논의중이다. 이미 2009년 4대 곡물메이저 중 하나인 벙기는 시장조작과 관련해 벌금을 물기도 했다. 물론 자본은 온갖 로비로 이러한 규제를 약화시키기 위해 노력중이다.
결국 투기자본에 고삐를 채우는 힘은 아래로부터 나올 것이다. 얼마 전 유럽에서는 코메르츠방크 등의 은행들이 시민들의 점증하는 비판에 직면하여 곡물 시장의 투자를 철수했다. 밥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금융자본, 그리고 곡물메이저들과 싸워야 하는 시절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지 않는, 투기로 날뛰는 시장에 필요한 것은 세계 시민들의 주먹이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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