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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1997년 못잖은 위기…응답하라 2012

등록 2012-09-23 20:38수정 2012-09-24 09:50

이강국의 경제산책
요즘 대중문화는 1990년대로의 복고열풍이다. 영화 <건축학개론>은 94학번의 첫사랑을 그렸고,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당시 고등학생이던 주인공들의 삶과 사랑을 그리며 90년대를 생생하게 불러낸다. 전람회와 에이치오티, 삐삐와 컴퓨터통신의 기억들이 손에 잡힐 듯 아련하다.

첫사랑의 추억이 드라마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그때의 고등학생들이 소비의 주체인 30대가 된 지금, 대중문화가 꽃피었던 1990년대 이야기가 잘 팔리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2012년의 복고열풍은 역시 살기 힘든 오늘의 경제상황을 반영한다. 새로이 분출하던 90년대의 다양한 문화의 기반에는 경제호황이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먹고사는 걱정은 그리 크지 않던 시대, 꿈 많던 학창시절의 고민은 스펙경쟁이 아니라 첫사랑이나 우정이었다. 당시를 회고하는 것은 현재의 어려움을 잠시나마 잊게 해준다.

그러나 90년대 한국 경제는 대내외적으로 구조적 문제가 악화되고 있었다. 정부는 1990년대 들어 투자조정 등의 산업정책을 포기했고, 이미 힘이 커져버린 재벌은 위험한 경영을 계속했다. 국내외의 자본은 줄기차게 금융 규제 완화를 요구했고 민주화 바람은 정부 경제개입의 정당성을 약화시켰다. 무엇보다도 1993년 이후 이루어진 해외단기차입의 자유화는 한국 경제를 대외적인 쇼크와 자본유출에 극히 취약하게 만들었다.

결국 드라마의 그 1997년에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이어진 금융위기가 발발했고, 위기와 구조조정은 많은 이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다. 드라마는 “삶은 항상 예상치 못한 순간에 뒤통수를 갈기고, 우리는 살아내야 한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하지만, 그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경제구조도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었다. 위기 이후 민주정부가 정권교체와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한국 경제는 내외부적인 압력 속에서 자유화와 개방의 길로 멀리 나아갔다. 하지만 1997년 이후 나타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성장동력은 약화되었고 중산층은 무너졌으며 빈부격차와 미래의 불안은 더욱 커졌다.

첫사랑이 이루어졌건 아니건, 주인공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맞닥뜨린 세상은 추억의 1990년대와는 많이 다른 정글이었다. 94학번은 저주받은 학번이 되었고 이제 30대가 된 90년대의 청춘들은 연애도 결혼도 출산도 힘겨워한다. 지금의 삶이 힘들고 피곤한 만큼 그들은 지나간 날들을 더욱 그리워하고 90년대 복고에 열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난 시절을 호출하고 90년대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첫사랑의 추억에 젖기 위함만은 아닐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는 중요한 이유는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다. 재벌은 더욱 강력해졌고 권력은 시장에 넘어간 지 오래지만, 역사적인 선택을 앞둔 지금이야말로 90년대의 한국 경제를 돌아보며 배워야 할 때다. 하긴 세상을 바꾸는 일도 첫사랑과 같은 순수한 열정에서 시작되는 법이 아니던가. 2012년은 우리 모두가 응답할 차례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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