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국의 경제산책
금융위기 마왕이 강호를 덮친 지도 4년, 불황의 암운 아래 백성들은 일자리가 모자라 신음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 미명을 뚫고 연준파의 장로 번앙귀가 외쳤다. “다시 한번 양적완화 신공을 실시한다!”
80년 전 세상을 파괴했던 대공황 마왕을 연구했던 그는, 불황 때는 디플레이션이라는 괴물을 피하기 위해 경공술을 사용해 하늘에서 돈을 뿌려야 한다고 설파해 이름을 날렸다. 2008년 중원 미국에 위기가 닥쳐와 사람들이 공포에 빠지자 그는 먼저 단전의 내공을 끌어모아 이자율을 제로로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 관부가 발행하는 채권을 사주는, 소위 양적완화라 불리는 돈 뿌리기 신공을 두 번이나 펼치며 강호경제의 붕괴를 간신히 막았다.
이제 정치인들의 반대로 관부가 직접 돈을 쓰는 재정지출 권법이 멈추게 되는 재정절벽에 다다르자, 번앙귀는 다시 한번 공중으로 날아올라 강호에 돈을 뿌리기로 한 것이다. 이번 초식(검놀림)은 백성들이 집을 살 때 은행들이 빌려준 돈의 증서를 기한 없이 연준이 사주는 것. 그는 이렇게 뿌린 돈이 시장의 이자율을 낮게 유지하고 자산시장을 떠받쳐서 사람들의 소비도 자극할 것이라 기대했다.
한편, 장로의 양적완화 신공은 암기(은밀한 무기)도 숨겨놓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원의 돈 가치는 떨어뜨리고 풀린 돈이 흘러들어가는 변방 신흥국들의 돈은 더 비싸게 만들어, 위기를 변방으로 몰아내자는 복심이 있었다. 게다가 인플레이션은 변방 나라들이 돈 가치를 높이도록 압력을 가하고, 중원 관부의 부채부담마저 줄어들게 만드니 일거양득의 묘수가 되지 않는가. 이를 간파한 변방의 원로들은 자본통제라는 비기를 쓰면서, 양적완화 신공은 강호에 통화전쟁이라는 또다른 파란을 일으키는 것이라 반발했다.
이 신공에 반대하는 무림 고수들의 목소리도 높았다. 강호에 돈이 넘쳐나면 언젠가는 인플레이션이라는 또다른 괴물이 깨어나 세상을 덮칠 수 있으며, 이미 기름시장이나 음식시장은 투기의 사술로 엉망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었다. 게다가 혈도가 막힌 것처럼 뿌린 돈이 은행에만 쌓여 정작 강호경제에는 제대로 돌지 않고 있었다. 이미 이웃나라는 오래전 돈 뿌리기에다 쿠폰 뿌리기 신공까지 사용했지만 실패하지 않았던가.
위기의 그늘에서도 돈과 권력을 쥔 이들은 건재했고, 빚을 지고 가장 큰 고통을 받은 백성들의 살림살이는 여전히 엉망이었다. 돈 뿌리기 신공은 강시처럼 돼버린 이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이미 부자인 은행들의 배만 불려주어 대협을 실천하는 영웅의 길이 아님이 분명했다.
장로는 탄식했다. ‘구파일방의 모든 경제학 비급도 난세의 위기 앞에선 소용이 없단 말인가.’ 하루가 다시 저물고 발길을 옮기는 장로와 강호경제의 앞날에는 짙은 안개가 드리워져 있었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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