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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도시락 폭탄의 추억과 환율 호들갑

등록 2012-11-04 20:37

이강국의 경제산책
2008년 여름 정부는 수출을 위해 집권 초반 펼쳤던 고환율 정책으로 물가가 급등하자 환율을 떨어뜨리는 정책으로 선회한다. 그러나 당시 미국 금융시장의 불안으로 외국인 투자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환율은 더욱 상승했고, 정부는 점심시간 외환시장에 달러를 풀며 이를 막으려 안간힘을 썼다. 이 ‘도시락 폭탄’은 별 효과 없이 외환보유고만 축냈고 금융위기의 폭발과 함께 환율은 천장을 뚫고 말았다.

돌이켜보면 우리에게 경제위기는 언제나 환율 폭등과 함께 닥쳐왔다. 달러가 해외로 급속히 빠져나가서 원화 가치가 폭락하던 기억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데 요즘은 정반대로 원화 가치가 올라가서 걱정이란다. 선진국의 무제한적인 돈풀기를 배경으로 수출기업들이 달러를 시장에 많이 내놓자 9월 이후 달러환율이 급락한 것이다.

이제 환율이 50원 내리면 삼성전자의 순이익이 2조원이 넘게 줄어들 것이라는 둥, 환율 하락이 수출과 경제에 충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가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이미 지난 3분기의 전기 대비 성장률은 거의 제로를 기록했는데 성장의 유일한 엔진인 수출마저 꺼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경제가 어렵다는 보도를 기다렸다는 듯, 숨죽이고 있던 재계와 보수파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경제가 이렇게 엉망인데 대선 후보들의 공약은 위기나 성장 이야기는 없이 복지나 경제민주화뿐이라고 목청을 높인다. 경제를 살려야 한다며 개혁을 가로막는 것은 참으로 익숙한 모습이지만, 이제 환율 하락이 또다른 핑계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돌아보면 지금의 환율은 여전히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서 그리고 다른 경쟁국가들에 비해서도 높은 상태이다. 도시락 폭탄이 실패한 뒤, 현 정부는 고환율 정책을 줄곧 고수했고 덕분에 수출 대기업들은 세계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며 최대의 이익을 올렸다. 문제는 대기업들의 이익은 늘어났지만 그것이 노동자들에게는 돌아가지 않았다는 점이다. 노동생산성만큼 임금은 오르지 않았고 이윤에 비해 노동소득의 비중은 줄어들었다. 반면 높은 환율의 부담은 물가상승을 통해 대부분 서민들에게 돌아갔다. 결국 공정하지 못한 현 경제구조에 환율정책의 책임도 적지 않은 것이다. .

환율이 떨어진다 한들 그리 호들갑 떨 일은 아니다. 물론 급속한 환율변동과 단기 해외자본의 과도한 유출입은 경제를 불안하게 만들 것이므로 자본통제 정책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굳이 환율을 높게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수출기업들은 높은 환율의 효과에 기대는 대신 진정으로 혁신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고환율과 수출촉진 정책 대신 경제의 과도한 대외의존을 줄이고 서민들의 소득을 늘려 내수를 촉진하는 새로운 성장의 길을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전환을 위해서는 소득분배의 개선과 복지의 확충이 필수적이다. 세계경제가 불황이고 환율이 하락하는 시대에 경제민주화가 더욱 절실한 이유이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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