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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중앙은행이 경제를 구할 수 있을까

등록 2012-12-16 20:44

이강국의 경제산책
45년 전 밀턴 프리드먼은 “통화정책이 할 수 있는 것에 관해 역사가 주는 가장 큰 교훈은, 통화 자체가 경제변동의 주요한 요인이 되는 것을 통화정책이 막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함부로 확장적인 통화정책을 쓰면 경제가 불안해지고 인플레이션만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 통화주의의 핵심이었다. 그 이후 중앙은행은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해 왔고, 경기를 부양하라는 정부의 압력으로부터 독립을 획득했다. 이는 사실 인플레이션으로 실질금리가 낮아지면 큰 손해를 보는 금융계의 이해를 대변한 것이었으며, 금융의 시대에 통화주의가 각광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중앙은행이 변신하고 있다. 위기 이전에는 거품을 코앞에 두고도 수수방관하더니, 경제가 붕괴에 직면하자 세계를 구하는 영웅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연준은 제로금리 정책과 함께 세 차례의 양적완화를 통해 돈을 뿌리고 있고, 유럽 중앙은행 총재는 유로존을 구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고 선언했다. 지난주에도 연준은 내년부터 국채를 추가매입하고 실업률이 6.5% 이상, 인플레이션이 2.5% 이하이면 초저금리를 유지할 것이라 발표했다.

일본에서는 정부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해쳐서라도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총선 과정에서 자민당의 아베 신조 총재는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올리고, 중앙은행이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내는 금융완화를 추진하겠다고 선언했다. 전시에나 가능한 무리한 정책이라며 비판이 쏟아졌지만, 그 발언 이후 엔화는 하락하고 주가는 상승했다. 프리드먼이 작금의 상황을 본다면 개탄할 일이다. 그는 사하라 사막을 정부가 관리하면 5년 안에 모래가 부족할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정부에 비판적이었다. 하지만 어쩌랴, 경제는 여전히 불황에 빠져 있고 시대는 이미 변하고 있는 것을.

중앙은행이 경제를 구할 수 있을지, 그리고 통화정책이 얼마나 적극적이어야 하는지에 관해서는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위기 이후 금융안정과 경기부양까지 책임지는, 좀더 능동적인 중앙은행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강해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질문은 중앙은행의 변신과 그것을 통제하려는 정부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시민들의 뜻이 정책에 고스란히 반영되는 민주적인 정치와 정부 아래서는, 중앙은행을 정부가 통제하며 적극적인 통화정책을 수행하는 편이 나을 수 있다. 실제로 중앙은행의 독립에 반대하는 주장은 서구에서는 주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진보적인 입장에서 나왔다.

반면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통화정책의 변화도 소수만을 위한 관치경제를 낳고 말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 자민당은 찍어낸 돈을 그나마 복지지출도 아니고 정부의 건설국채를 매입하는 데 쓰겠다며, 보수적인 토건족의 면모를 그대로 보이고 있다. 중앙은행이 경제를 구하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은 역시 제대로 된 민주정치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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