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 보수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
임원명의 차명계좌서 비자금 관리도
임원명의 차명계좌서 비자금 관리도
2009년 에스케이텔레콤(SKT)은 이 회사 하성민, 서진우 사장 등 임원 11명에게 각각 1억~1억5000만원의 상여금(보너스)을 지급했다. 그런데 이 상여금은 임원들의 연봉에 포함됐지만, 실제 돈 주인은 따로 있었다. 이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급받은 상여금을 토해냈다. 임원들은 상여금을 현금이나 수표 등으로 다시 인출해 에스케이㈜ 투자회사관리실 재무담당 임원에게 되돌려줬다. 이렇게 해서 에스케이텔레콤에서만 그해 12억5000만원의 ‘비자금’(부외자금)이 조성됐다. 임원에게 상여금을 지급할 때 웃돈을 얹어 줬다가 다시 되돌려 받는 방식으로 에스케이가 2006~2010년 에스케이텔레콤과 에스케이이노베이션(옛 에스케이에너지), 에스케이네트웍스, 에스케이해운, 에스케이인천정유 등 5개 계열사에서 조성한 비자금은 무려 139억5000만원에 이른다.
이는 지난 1월31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돼 징역 4년형을 선고받은 최태원 에스케이그룹 회장 등의 판결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임원의 보수를 회사 비자금 조성의 통로로 활용하는 것은 여러 기업이 비교적 최근까지 즐겨 써온 수법이다. 이 때문에 임원들이 실제 가져가는 급여나 퇴직금이 겉으로 드러나는 명목 소득보다 적은 경우가 생긴다. 정반대로 실제 임원 보수가 명목 보수보다 큰 경우도 있다. 조성된 비자금으로 임원에게 성과금을 지급하는 경우 급여명세서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특경가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판결문을 보면, 정 회장이 700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해 “임직원의 사기 진작을 위한 경영 성과금” 등에 지출했다고 명시돼 있다. 이렇게 받은 임원의 성과금은 ‘검은돈’으로 기업의 임원 보수 공시란에 기재되지도 않고, 과세당국에서도 포착하지 못하는 ‘세금 없는 소득’이다. 임원의 보수가 비자금의 통로가 되기도, 비자금이 임원의 보수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임원 명의의 차명계좌도 비자금을 조성 및 관리하는 고전적 수법이다. 지난달 18일 검찰이 이재현 씨제이(CJ)그룹 회장을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조세포탈) 혐의로 구속기소하면서 밝힌 공소사실에도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 회장은 2003~2007년 그룹 임직원 459명 명의의 차명계좌 636개로 씨제이㈜ 주식을 사고팔면서 1182억원의 주식양도 소득을 올렸으면서도 238억원의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역시 특경가법상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돼 징역 3년형을 선고받은 김승연 한화 회장도 임원 명의를 빌려 주식거래를 하면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 이럴 경우 명목상 주식 소유자와 매매 차익의 귀속자는 임직원이지만, 실제 주인은 이 회장인 셈이다.
삼성 특검이 불법 경영권 승계로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재판에서도 이 회장이 전·현직 임직원의 명의로 1000개가 넘는 차명계좌를 개설해 자신의 소유인 주식, 현금, 채권 등을 분산해 놓은 게 드러나기도 했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회계사는 “그룹 총수의 입장에서 임원은 직원보다 충성심이 높아 믿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임원을 비자금 조성 및 차명 재산 관리를 하는 데 활용해왔다”고 말했다.
류이근 김정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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