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자를 현직처럼 챙기기
기업비밀 유출 방지 등 목적
삼성은 퇴직자들 평가 진행
현대차는 고문·자문역 맡겨
SK·두산, 후한 금전적 보상
기업비밀 유출 방지 등 목적
삼성은 퇴직자들 평가 진행
현대차는 고문·자문역 맡겨
SK·두산, 후한 금전적 보상
일부 기업 임원들은 퇴직 뒤에도 일정 기간 관리를 받는다. 퇴직금을 받고 관계가 끊기는 일반 직원들과는 차이가 있다. 관리 이유는 선배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부터 내밀한 기업비밀 유출 방지 목적까지 다양하다. 관리 수준도 기업별로 천차만별이어서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퇴직임원 프로그램 선두주자는 삼성그룹이다. 1960년대 삼성그룹 사정에 밝은 한 대학교수는 흥미있는 일화를 <한겨레>에 소개했다. 그는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심복이었던 성상영(1996년 작고)씨가 퇴직 후 제일모직 경쟁사를 차린 게 삼성 퇴직임원 관리의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성씨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등 당시 삼성 핵심 계열사 사장을 지내다가 1966년 한국비료 사건(사카린 밀수 사건)에 연루돼 옷을 벗은 뒤 제일모직 경쟁사인 대성모방을 창업한 인물이다. 이 교수는 “이병철 회장이 성상영씨 사건을 계기로 퇴직임원 관리 필요성을 깨달았다. 내밀한 정보를 많이 아는 핵심 임원은 언제든지 경쟁자로 변신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2008년 ‘삼성 비자금 사건’ 이후 주요 그룹에서 나타난 움직임에서 이런 속성은 잘 드러난다. 삼성 비자금 사건은 핵심 임원이라고 할 수 있는 김용철 삼성그룹 전 법무팀장이 비자금 의혹을 외부에 폭로한 이후, 이건희 회장 등 그룹 주요 인사들이 법정에 서게 된 사건을 가리킨다.
현대차그룹 부사장(전략담당)을 지낸 한 인사는 “김용철 사건 이후 주요 그룹의 퇴직임원 관리가 크게 강화됐다. 퇴직임원 사이엔 김용철씨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고 말했다. 퇴직임원의 폭로 위력을 실감한 주요 그룹 사이에 퇴직임원의 재발견이 이뤄졌다는 의미다. 이 인사는 “단적으로 현대차 퇴직임원 모임(자우회) 사무실 규모가 세배 가까이 커졌다”고 밝혔다.
퇴직임원 관리의 목적은 유사하지만 처우는 그룹별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삼성그룹은 퇴직임원별로 편차가 커서 일률적으로 말하기 힘들다. 이 회사는 퇴직임원에 대해서도 평가를 진행하는 것도 특징이다. 이 회사의 한 퇴직임원은 “평가를 거쳐 2년 더 자리를 연장해주기도 한다. 이 때문에 퇴직임원들 중엔 현직 때만큼 뛰는 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주요 그룹 가운데 퇴직임원 보상이 비교적 짠 편에 속한다. 사장과 부회장을 끝으로 퇴직한 임원에겐 2년간 고문 직함이 붙는다. 반면 부사장 이하 임원에겐 1년간 자문역 자리를 준다. 보수도 현직 시절 받던 기본급의 50% 선이다. 다만 계열사별로 활성화돼 있는 퇴직임원 동호회에 대한 지원이 풍성하다. 한 예로 세금 관리나 재테크 외에도 사진 등 취미활동 지원을 위한 강의도 정기적으로 이뤄진다. 자우회의 한 간부는 “현직 사장이 나와 회사 상황 등에 대해 설명회를 겸해 1년에 한두 차례 골프대회를 열기도 한다”고 말했다.
에스케이(SK)그룹은 금전적 보상이 크다. 사장 이상 퇴직임원은 통상 3년간 자문역을 맡는다. 보수는 매회 다른데, 통상 퇴직 1년차엔 기본급의 100%를 주고, 그 다음해부터는 조금씩 떨어진다. 두산그룹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금전적 보상 프로그램을 운영중이다.
엘지그룹은 최대 2년간 자문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여타 그룹이 퇴직 당시 직급에 따라 차등 운영을 하고 있는 데 반해, 이 그룹은 재직 당시 성과를 토대로 자문 기간과 보수 수준을 책정한다. 이 회사 핵심 관계자는 “부사장 출신이 사장 출신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경우도 생긴다”고 말했다.
김경락 류이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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