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 공약→보수 친화적
지출 확대→진보와 가까워
석유산업은 지원, 금융 규제는 완화
FT, “중앙은행 역할 축소와 정부 역할 확대”
지출 확대→진보와 가까워
석유산업은 지원, 금융 규제는 완화
FT, “중앙은행 역할 축소와 정부 역할 확대”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 동안 뚜렷하게 드러난 강한 보호무역주의 성향 외에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경제 공약은 공화당 등 미국 내 정통 보수 세력의 주장과 배치되는 부분이 적지 않다. 또 공약들 간에 서로 충돌하는 내용도 있다. 트럼프노믹스에 대해 전문가들이나 미 현지 언론의 평가가 서로 엇갈리며 “트럼프의 향후 행보를 좀더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 중심을 이루는 배경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확장적 재정 정책’을 일관되게 강조해왔다. 세금은 줄이고 지출은 늘린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법인세는 세율을 35%에서 15%로 절반 가량 낮추고, 소득세는 현행 7단계인 소득 과세 구간을 3단계로 축소하며 동시에 각 구간별 세율도 인하한다고 공약했다. 주로 고소득자들의 세부담이 큰 상속세도 세율을 크게 낮춘다고 약속했다. 공공인프라 부문에만 향후 5년간 1조달러 가량을 투자한다며 재정 지출도 크게 늘린다고 밝혔다. 이런 기조는 ‘법인세 감세·부자 증세 반대’란 점에선 보수주의 경제학을 실천에 옮겼던 과거 레이건 정부 때와 큰 차이는 없으나, 정부 채무나 재정 적자 확대를 감수하더라도 재정 지출을 대폭 늘리기로 한 대목은 민주당 성향인 오바마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을 지낸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나 민주당 후보 힐러리 클린턴을 공개 지지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가 늘상 하던 주장과 가깝다.
반면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향한 트럼프 당선자의 시선은 매우 모호한 편이다. 전문가들 전망이 가장 엇갈리는 대목이다. 가령 2018년 2월에 임기가 끝나는 재닛 옐런 연준 의장에 대해 공개적으로 “옐런 의장은 공화당원이 아니다. 힐러리를 위해 금리를 제때 올리지 않고 있다”며 여러 차례 공격했다. 이는 통화 완화 기조를 오래 유지한 연준을 줄곧 비판해온 공화당 기조와도 맞닿는 탓에 트럼프 당선 이후 연준이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정책 금리를 인상하거나 그렇게 하도록 행정부가 압박할 것이라는 예상을 낳았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자는 스스로를 “통화 완화와 저금리를 추구하는 사람”으로 설명하며 “고금리는 미국 경제에 위협이 된다”고 주장해왔다. 이런 주장은 경기 부양을 위해 확장적 경제정책을 내세운 것과 마찬가지로 연준의 팔을 비틀어서라도 금리 인상을 되도록 미루도록 압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상을 낳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트럼프 시대 연준의 통화정책 방향에 대해 엇갈리는 주장이 넘치고 있다”며 “최근에는 재정 지출 확대와 (반이민정책 공약에 따른) 노동공급 축소와 그에 따른 임금 인상 영향으로 불거질 인플레이션을 방지하기 위해 연준이 금리를 더 빨리 올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이런 모호성과 복잡성에 견주면 산업정책 쪽은 그 방향이 비교적 명확하다. 전통 제조업의 부활과 금융 규제의 완화가 그것이다. 트럼프 당선자는 구체적으로 친환경 에너지 산업 부문에 대한 보조금을 줄이고 석유산업을 지원하기로 했다.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분리(글래스-스티걸법의 부활)에는 클린턴 후보와 생각이 같지만, 투자은행의 자기자본거래를 제한하는 도드-프랭크법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질리언 테트 부국장은 11일자 칼럼에서 트럼프 당선자 경제정책 기조에 대해 “(사람들은) 트럼프의 경제 공약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노선의) 혼합으로 본다. 하지만 (트럼프 경제정책은) 통화정책에만 의존해서는 경제의 성장을 촉발할 수 없다는 회의를 반영하고 있다. 훗날 역사가들은 가장 중요한 경제정책의 변곡점으로 탈 규제나 감세 공약이 아니라 중앙은행의 역할 변화로 볼 것”이라고 말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경제 향배에 큰 영향력을 발휘해온 ‘연준’의 위상이 약화되고 그 자리를 ‘정부’가 메우겠다는 게 트럼프 경제정책을 관통하는 기조라는 뜻이다.
김경락 기자 sp9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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