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conomy | 김양희의 경제통합 풀어보기
그래픽_김지야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폐쇄된 지 1년 4개월이 지난 개성공단의 재개 가능성은 커졌지만 북핵 문제로 그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이런 상황에서 개성공단을 언급하는 것이 생뚱맞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동안 FTA 협상 테이블에서 개성공단 제품의 수출을 위해 지불한 비용을 매몰 비용이라 포기하고 돌아서기엔, 위에서 말한 야심차고 원대한 실험이 가져올 열매를 체념하기 어렵다. 그래서 개성공단이 재개되거나 제2 개성공단이 건설될 경우에 대비해, 지금이라도 왜 무엇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건지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라도 찬찬히 그러나 철저히 되돌아봐야 한다.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FTA의 개성공단 관련 규정 어떤 나라와 FTA를 체결하면 그 나라에 수출하는 모든 제품이 자동적으로 무관세나 저관세 등 특혜관세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그렇지 않다. 제3국 제품이 은밀히 FTA 체결국산 제품으로 둔갑해 엉뚱하게 관세 혜택을 받는 소위 ‘무역굴절 효과’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모든 FTA는 체약국 내 즉 역내 상품과 역외품을 구분하고자 특혜원산지규정을 두고 있다. 이처럼 특혜원산지규정에 의해 관세 혜택 자격을 획득한 역내 상품을 원산품(originating goods)이라고 한다. 원산품이 되려면 개별 품목마다 까다롭게 적용되는 품목별 원산지규정(PSR)을 충족해야 하며 이와는 별도로 누적기준, 최소가공기준, 역외가공인정, 대체가능 물품, 간접재료 등의 보충적 원산지 결정기준이 있다. 이 중 역외가공인정(Outward Processing)이 개성공단과 관련된 것이다. 특혜원산지 규정상의 역외가공인정이란 생산품의 원산지 판정 시 FTA 체결국을 벗어난 역외에서 생산 가공된 제품도 일정 조건을 충족하면 원산품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즉 한국이 체결한 14건의 FTA에서 개성공단 혹은 북한 전역에서 생산된 물품이 해당 FTA 각각에서 합의한 역외가공규정을 맞추면 한국 원산품으로 간주해 50여개 FTA 상대국에 저관세 혹은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이 맺은 14건의 FTA에서 개성공단 조항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는 위의 역외가공방식으로, 싱가포르, EFTA, ASEAN, 인도, 페루, 콜롬비아, 베트남, 중국과의 FTA에서 이를 채택했다. 이들 FTA에서 개성산 제품이 한국산 원산품이 되는 요건은 역외(개성) 부가가치 40% 이하이며, 역내(한국)산 재료비는 45%(한-싱가포르 FTA)~60% 이상(한-싱가포르 FTA 외 7건)이다. 둘째는 한-싱가포르 FTA에서만 유일하게 역외가공방식과 함께 도입한 통합인정(ISI)방식이다. 이는 당사국이 합의한 일정 품목은 역내산으로 인정하는 가장 느슨하고 활용도가 높은 방식이다. 셋째는 미국, EU,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 터키와의 FTA에서 발효 후 역외가공지역위원회를 구성해 구체적 요건을 논의하기로 한 위원회 방식이다. 그렇다면 개별 FTA의 관련 규정은 어떻게 되어있고 어떠한 문제점이 있는지 정부 공식문서와 협정문, 선행연구 그리고 정부 및 입주기업 관계자 인터뷰 등을 토대로 살펴보자. 한-싱가포르 FTA에서는 역외가공방식과 함께 유일하게 가장 유연한 통합인정방식이 적용됐고 허용품목도 4625개(HS 6단위)로 가장 많다.2) 하지만 싱가포르는 6개 품목을 제외한 전 수입품목이 무관세라서 한국이 개성공단을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한 첫 FTA라는 상징성은 크되 실질적인 의미는 반감된다. 한-EFTA FTA에서는 역외가공규정에서 역외산 투입재료가치를 최종상품 공장도가격(EXW)의 10% 이하로 하는 기존 FTA 중 가장 엄격한 규정을 만들어 개성공단에 적용 시 실효성이 의문시된다.3) 이는 이미 EFTA가 저임 주변국을 역외가공지역으로 활용하고 있어 오히려 이들 지역으로부터의 저가품 수입 증가를 우려한 우리 정부가 수세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ASEAN, 인도, 페루와의 FTA에서는 개성공단 제품의 수입이 상대국 산업에 피해를 초래할 경우 피해입증의무도 없이 일방적으로 특혜를 정지하고 그 기간도 연장할 수 있게 하였다.4) 나아가 협정 발효 5년 후 상대국이 이 규정이 자국 이익에 손상을 준다고 판단할 경우 재량으로 폐기하며 이와 관련한 분쟁은 분쟁해결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는 조항도 포함했다. 이 조항은 특히 ASEAN과의 FTA에서 문제 될 수 있다. ASEAN은 남한의 주요 수출시장이며 국내기업의 투자도 활발해 동아시아 생산 네트워크가 나름 구축되어 있어 이 조항이 남용될 경우 북한-남한-ASEAN 간 글로벌 가치사슬 형성이 저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ASEAN 역내 국산 제품이 개성공단산 제품과 경합관계에 있다고 보는 ASEAN의 동 규정 도입에 대한 강경한 반대 입장이 한몫했다. 결국 이 사안은 협상 막판까지 난항을 거듭하다 위와 같은 절충안에 이른 것이다. 이 상황에서 정부는 개성공단의 역외가공지역(OPZ) 인정에 따른 수출증대보다 개성공단의 국제적 지위 획득과 개성산의 수입품의 대체 효과에 더 주안점을 둔 것으로 보인다.5) (▶관련자료 바로가기) 만일 그렇게 판단했다면 정부는 개성산 제품의 수출이 가져올 복합적인 효과를 간과한 근시안적인 사고를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한-ASEAN FTA에서는 개성공단이 본격 개발되기 이전이라 실제 개성의 생산품과 FTA 지정품목이 일치하지 않는 문제도 있다. [표2] 한국의 FTA 상대별 개성공단 관련 원산지 규정 비교
정부는 한중 FTA 협상 타결 뒤 무엇보다도 개성공단 조항이 개성공단 입주기업의 의사를 반영해 310개 품목을 역외가공 허용품목으로 지정한 것을 위시해 여러모로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점을 강조한 바 있어 적잖은 기대감을 품게 했다. 그러나 한중 FTA에서 지정된 310개 품목 중 즉시 철폐비중은 13.5%에 불과하며 60.3%에 달하는 187개 품목이 10년 내 철폐이며 11.9%(37개)도 15년 내 철폐로, 장기적으로는 어떨지 모르나 발효 즉시 활용 가능하다는 정부 주장은 무색해진다. 단, 한국이 개성공단으로 반출한 중간재를 재반입하여 완성한 뒤 중국에 수출할 경우 개성공단 내 투입 재료비의 총가치가 한국으로 반입된 최종상품의 수출가(FOB 기준)의 40% 이하이거나, 한국에서 수출된 원산지 재료가치가 임가공에 사용된 총가치의 60% 이상이 되면 한국산 원산품으로 간주한다. 즉 여타 13건의 FTA에서는 ‘비원산지 투입가치(비원산지재료비+임가공비+해외운송비)’를 기준으로 하는 반면 한중 FTA에서는 여기에서 임가공비가 제외된 ‘비원산지 재료가치’를 기준으로 하여 북측 노동자의 임금상승 시 비원산지 투입가치 상승의 부담이 줄어든다. 또한 한중 FTA에서는 개성공단 전역이 아니라 1단계 100만평만 역외가공지역으로 지정하였으나 추후 역외가공위원회를 구성하여 추가 지정 및 확대 논의의 법적 근거를 만들어 두었다. 미국의 선례를 이어 EU, 호주, 캐나다, 뉴질랜드와의 FTA에서 채택한 위원회 방식은 사실상 역외가공지역 인정을 받지 못한 것으로 봐도 무방하다.6) 특히 이들 고소득 국가에서는 개성산 제품이 가격경쟁력을 갖는 나라들이나 이 방식으로 인해 어떠한 진전도 없었다. 한미 FTA에서는 이 조항 도입의 전제조건으로 한반도 비핵화 진전, 남북관계에 미치는 영향, 역외가공지역의 일반적인 환경기준, 노동 기준과 관행, 임금과 영업 및 경영 관행 등 여러 단서 조항을 내걸고 있어 북미 관계가 풀리지 않는 한 기대난망이다. 이런 연유로 미국 의회조사국(CRS, 2011)은 한미 FTA를 통해 개성산 제품이 미국으로 수입될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한 바 있다. 야심 찬 정책실험의 좌초 원인 이상과 같은 협정문상의 문제점으로 인해 한국의 FTA 네트워크를 활용한 개성공단산 제품의 수출은 사실상 좌초위기에 처했다 그 위기의 이면에는 위와 같은 협정문 자체의 맹점, 제도 운용상의 문제점, 동 제도와 직접적으로 무관한 경제외적 요인의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자리하고 있으나 필자는 이 중 첫 번째 즉 애초 제도설계상의 맹점이 핵심이라고 본다. 이것이 해결되지 않는 한 둘째, 셋째 장애물이 사라져도 개성공단 역외가공규정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가 북한의 핵실험과 로켓 발사에 대응한다며 개성공업지구(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발표한 다음날 밤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가 북한의 개성공단 인원 전원 철수 방침을 통보 받은 뒤 폐쇄됐던 남북출입사무소로 북쪽에 남아있던 관계자들의 차량들이 입경하고 있다. 남북출입사무소/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한겨레통일문화재단과 개성공단기업형의회, 남북경협기업 주최로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17 상생의 남북경협을 위한 서울시민 한마당' 행사가 21일 오후 한 시민이 개성공단 재개를 소망하는 포스트잇을 게시판에 붙이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참고자료
1) UN에 동시가입한 별도의 관세영역인 북한의 제조품이 한국에 무관세 반입이 가능한 점은 원칙적으로 WTO 회원국 간에 동등한 대우를 부여해야 하는‘최혜국대우(MFN)’원칙에 위배된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기본합의서(1992. 2. 발효) 부속합의서” 1조 10항”에서 상호간에 이를 인정하고 우리 헌법의 영토규정 3조와 “세계무역기구협정의 이행에 관한 특별법(1995. 1. 발효)”,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24조 등의 국내법과 “UN헌장”(민족자결권 규정, 제2조 7항) 등의 국제법을 근거로 남북교역이 여타 교역과 근본적으로 다른 민족내부거래이므로 남북무관세교역이 MFN 위배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이일영·김양희·구갑우, 2014).
2) 한-싱가포르 FTA 협정문 제4.4조(역외가공) 및 부속서 4C
3) 한-EFTA FTA 2.2조, 부속서 I 3절 13조 및 부록 4(영역원칙의 면제)
4)한-ASEAN FTA 상품무역협정 5조(원산지 규정) 및 부속서 3(원산지 규정)의 6조(특정상품의 취급), 교환각서(2006년 8월 24일자), ‘개성공단 관련 대상품목 목록’, 한-인도 FTA 협정문 3장(원산지규정), 부록 3-나-1(영역 원칙의 예외의 적용대상이 되는 품목표) 및 교환각서(재료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법에 관한 협의), 교환각서(개성공업단지), 교환각서에 첨부된 개성공업단지 지도, 한-페루 FTA 협정문 3장(원산지규정) 15조(영역 원칙), 부속서 3-나(영역원칙의 예외)
5) 이에 대하여 정부는 FTA 공식 사이트를 통해 “ASEAN국가의 주력 품목이 개성공단 생산제품과 경합관계에 있다는 점과 향후 추진할 FTA에서 개성공단에 대한 한국의 원칙을 설득력있게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자평한다.
6) 한미 FTA 22장(제도 규정 및 분쟁해결) 부속서 22-나(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한-EU FTA 원산지 제품의 정의 및 행정협력의 방법에 관한 의정서 3부(영역 요건) 12조(영역 원칙), 부속서 4(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한-호주 FTA 3.13조(한반도 역외가공지역), 부속서 3-나(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한-캐나다 FTA 3.15조(영역 원칙), 20장(제도 규정 및 행정), 부속서 20-나(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한-뉴질랜드 FTA 3장 부속서 3-나(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1) UN에 동시가입한 별도의 관세영역인 북한의 제조품이 한국에 무관세 반입이 가능한 점은 원칙적으로 WTO 회원국 간에 동등한 대우를 부여해야 하는‘최혜국대우(MFN)’원칙에 위배된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기본합의서(1992. 2. 발효) 부속합의서” 1조 10항”에서 상호간에 이를 인정하고 우리 헌법의 영토규정 3조와 “세계무역기구협정의 이행에 관한 특별법(1995. 1. 발효)”,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24조 등의 국내법과 “UN헌장”(민족자결권 규정, 제2조 7항) 등의 국제법을 근거로 남북교역이 여타 교역과 근본적으로 다른 민족내부거래이므로 남북무관세교역이 MFN 위배가 아니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이일영·김양희·구갑우, 2014).
2) 한-싱가포르 FTA 협정문 제4.4조(역외가공) 및 부속서 4C
3) 한-EFTA FTA 2.2조, 부속서 I 3절 13조 및 부록 4(영역원칙의 면제)
4)한-ASEAN FTA 상품무역협정 5조(원산지 규정) 및 부속서 3(원산지 규정)의 6조(특정상품의 취급), 교환각서(2006년 8월 24일자), ‘개성공단 관련 대상품목 목록’, 한-인도 FTA 협정문 3장(원산지규정), 부록 3-나-1(영역 원칙의 예외의 적용대상이 되는 품목표) 및 교환각서(재료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법에 관한 협의), 교환각서(개성공업단지), 교환각서에 첨부된 개성공업단지 지도, 한-페루 FTA 협정문 3장(원산지규정) 15조(영역 원칙), 부속서 3-나(영역원칙의 예외)
5) 이에 대하여 정부는 FTA 공식 사이트를 통해 “ASEAN국가의 주력 품목이 개성공단 생산제품과 경합관계에 있다는 점과 향후 추진할 FTA에서 개성공단에 대한 한국의 원칙을 설득력있게 추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였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자평한다.
6) 한미 FTA 22장(제도 규정 및 분쟁해결) 부속서 22-나(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한-EU FTA 원산지 제품의 정의 및 행정협력의 방법에 관한 의정서 3부(영역 요건) 12조(영역 원칙), 부속서 4(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한-호주 FTA 3.13조(한반도 역외가공지역), 부속서 3-나(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한-캐나다 FTA 3.15조(영역 원칙), 20장(제도 규정 및 행정), 부속서 20-나(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한-뉴질랜드 FTA 3장 부속서 3-나(한반도 역외가공지역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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