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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FTA가 이끈 제도개혁의 신화와 현실(1)

등록 2018-07-09 17:45수정 2018-07-27 15:12

Weconomy | 김양희의 경제통합 풀어보기
그래픽_김승미
그래픽_김승미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 대한민국은 ‘경제영토 확장’의 기치 아래 2012년 한미 FTA 발효를 전후로 66개의 법령을 제·개정했다. 유례없는 일이었다. 이를 두고 당시 정부는 제도 선진화와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한미FTA 반대측은 정책주권을 훼손하며 미국판 규제를 이식하는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이를 둘러싼 양측의 담론논쟁은 갈수록 증폭되어 적잖은 사회적 비용을 치뤘다. 그로부터 어느덧 6년여 세월이 흐른 지금, 제도선진화는 신화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정책주권 상실 우려는 기우에 불과했을까. 현실은 어떨까. 이하 1편에서 이 질문이 왜 중요한지 짚어보고 2편에서는 당시 제개정된 국내법의 실태를 입체적으로 조망한 뒤 향후 과제를 제시한다.

1. 왜 지금 제도개혁인가?

2018년 6월 27일, 규제개혁 진도가 부진한데 답답함을 표한 문재인 대통령은 개최 3시간을 앞두고 규제개혁점검회의를 전격 취소됐다. 2018년 7월 3일, 재정개혁특위가 제출한 조세개혁권고안이 정부의 개혁에 거는 기대감에 못 미친다는 지적이 무색하게도 기획재정부가 이에 반발하고 나섰다. 이쯤에서 눈치 빠른 독자는 위 ‘개혁’ 두 글자가 사뭇 결이 다르다는 것을 알아챘으리라. ‘제도개혁’이라 쓰고 혹자는 ‘규제완화’라고 읽고 혹자는 ‘규제강화’라고 읽는다.

Stiglitz(2015)의 정의에 따르면 ‘규칙(rules)’은 경제의 작동구조를 결정하는 모든 정부규제와 법의 체계 그리고 사회규범을 포괄한다. 규칙에는 재산권과 계약의 이행을 비롯하여, 기업의 설립과 행동과 책임, 노사관계, 금융시장에서 적용되는 의무와 보호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들이 들어간다. 또한 공공 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세금과 공적 지출, 통화정책 등을 관장하는 규칙과 제도도 포함된다. 나아가 사회적, 경제적 기회로부터 여성과 유색인종과 같은 특정집단이나 계층을 체계적으로 배제해 차별의 구조적 토대를 생성하는 성문화된 혹은 그렇지 않은 규칙도 들어간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규칙을 제도 혹은 규제로 간주하고 혼용하기로 한다.

시장의 ‘자기조절기능이’란 경제학 교과서에나 있는 개념이다. 경제를 ‘보이지 않는 손’에만 맡겨두면 경쟁이 제한되고 경제적 불균형이 지배하는 불평등 사회가 되기 십상이다. 환경오염 유발 등 외부불경제가 발생할 위험성도 존재한다. 이러한 ‘시장 실패’를 최소화하고자 제도 혹은 정부규제가 생겨난다. 반면 이 제도가 불공정하거나 시대에 뒤떨어지고 민간의 자율성을 침해하게 될 경우 시장 실패 못지않은 폐해인 ‘정부 실패’를 야기한다. 이에 규제개혁은 시장과 정부간 역학관계에 따라 완화와 강화 간 진자운동을 반복하나 어느 경우든 기득권 세력의 저항은 상수다.

그러니 기득권 저항을 누르는 일종의 외압으로 개방을 활용하려는 제도개혁의 유인이 고개를 든다. 주로 개도국이 FTA를 이 용도로 활용(Schiff and Winters, 2003)하나 일본의 아베 정부도 같은 이유로 TPP 체결에 나섰다. 그 맞은 편에 위치한 선진국은 포괄적이고 높은 수준의 FTA를 체결하는 흐름을 이끈 장본인이다. 경제의 글로벌화가 심화된 오늘날, 그간의 꾸준한 관세인하조치에 힘입어 글로벌 공급사슬의 흐름을 막는 핵심 걸림돌이 관세장벽에서 국경너머 비관세장벽 즉 각국간 상이한 규제로 이동해, 개방효과를 높이려면 규제조화가 중요해졌기 때문이다(WTO, 2011).

실제 미국과 EC(EU의 전신)가 체결한 100건의 FTA는 규제조화를 중시한다. 예컨대 이들 FTA의 총 52개 의제 중 WTO 규범이 미비한 지식재산권, 시장규제, 법률적용, 보건 등의 의제가 38건이다(Horn and Sapir, 2010). 한미 FTA나 한EU FTA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부는 이러한 FTA를 추진하는 이유로 안정적인 수출시장 확보 다음으로 제도 선진화와 경제체질 강화를 꼽는다(왜 FTA를 추구하는가? http://fta.go.kr/main/situation/kfta/psum/). 정부가 상정하는 경제사회제도 선진화는 개방을 통한 ‘글로벌 스텐다드’의 정착과 서비스 부문의 획기적인 개선으로 이해된다(한미 FTA 타결의 의의 http://fta.go.kr/us/info/1/).

한미 FTA 협정문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한EU FTA 협정문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FTA를 통한 제도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Helble et al(2007)는 제도 선진화의 핵심인 ‘제도 투명성’을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과 ‘단순성(simplification)’로 간주하고, 아태지역 내에서 제도 투명성 제고에 따른 무역환경 개선이 역내 양자간 무역을 촉진하였는데 그 성과는 차별화 제품에서 두드러진다고 분석한다. 나아가 APEC내 RTA를 통한 제도의 투명성 개선으로 역내무역이 1,480억 달러(총무역의 7.5%) 증가했다고 추산한다. 반면 Rodric(2007)은 개도국 정부가 외국시장에의 접근성을 보장받고자 외국 법률과 기준을 수입하는데 열중하나 이는 개도국 개발의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합리적인 이익을 요구하는 선진국내 이익집단을 위한 것 뿐이라고 일갈한다. Stiglitz(2016)는 심화통합과 같은 FTA는 ‘무역의 자유화’가 아니라 ‘무역의 관리’가 본질이라며 ‘특허권자와 투자자의 과도한 보호’라는 미국식 경제규칙을 FTA를 통해 수출해선 안된다고 경고한다.

Viner로 상징되는 RTA 연구는 무역·투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량적 분석이 넘쳐나는 반면 이를 제도적 맥락에서 접근하는 연구는 미진하다는 Baldwin(2011)의 지적은 국내 학계에도 딱 들어맞는다. 한미 FTA 체결 당시 규제개혁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거셌으나 정작 현 시점에서 관련 연구는 논란이 컸던 약사법 개정 정도에 한정된다. 이는 제도개혁 분야는 광범위하고 개혁성과는 한참 후에나 드러나는데 분과학문간 칸막이가 높고 장기공동연구는 상당한 발품을 팔아야 하는 점에 기인한다.

세계는 지금 노동배제적 기술진보와 개방이 야기한 불평등의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는 한국에도 경고등이 켜졌으나 그렇다고 이제와서 빗장을 걸어 잠글 수도 없다. 한편 촛불정부에 부여된 시대정신은 다름 아닌 개혁이다. 특히, 그것을 소득주도성장이라 명명할지 포용적 성장이라 명명할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날로 심각해지는 불평등의 완화 필요성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과연 불평등을 야기한 한 원인인 개방이 다시 그 결과를 완화시킨다는 일견 모순된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전병유·정준호(2016)는 한국의 임금상승이 소비증대를 초래하는 경로보다 노동절약적 투자와 이를 통한 수출증가의 경로를 따른다고 본다. 정준호·전병유·정세은(2017)은 한국에서 외환위기 이후 상품무역 자유화는 소득분배를 완화시켰으나 금융자유화와 외국인직접투자 확대는 이를 악화시켰다고 한다. 이상의 연구는 우리가 개방을 백안시할 게 아니라 어떤 개방인가에 주목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그래서 말이다. 한국이 개방의 총화인 FTA를 통해 추진한 대대적인 제도개혁의 긴 여정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묻는 것은 학술적 차원을 넘어 중요한 정책적 함의를 지닌다. 제도개혁이 규제강화든 규제완화든 길을 잃은 듯 갈팡질팡하는 지금 이 때, 개방을 거부할 수 없는 이 나라에서 6년 전 시도한 FTA를 통한 대대적인 제도개혁 실험이 혁신성장을 제대로 촉진하고 있는지, 불평등 완화와 어깃장을 놓고 있진 않은지 살피고 앞으로 어느 길로 갈지 묻는 일은 족히 유의미하고 시의적절하다.

참고문헌

— Baldwin, Richard(2011). “21st Century Regionalism: Filling the gap between 21st century trade and 20th century trade rules”. WTO working paper ERSD.

— Helble, Matthias, Ben Shepherd and John S. Wilson(2007). Transparency and Trade Facilitation in the Asia Pacific – Estimating the Gains From Reform. World Bank.

— Horn, Mavroidis, P. C. and Sapir, A(2010). "Beyond the WTO? an anatomy of EU and US preferential trade agreements". The World Economy 33(11).

— Rodric, Dani(2007). One Economics, Many Recipes: Globalization, Institutions and Economic Growth. Princeton University Press(제현주 역. 2011.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북돋움).

— Schiff, Maurice and L. Alan Winters(2003). Regional Integration and Development. World Bank.

— Stiglitz, Joseph E. et. al.(2015). Rewriting the Rules of the American Economy: An Agenda for Growth and Shared Prosperity. A Roosevelt Institute book. W.W. norton & Company(김홍식 역. 2018. 『경제규칙 다시 쓰기』 열린책들).

— WTO(2012). “The WTO and preferential trade agreements: From co-existence to coherence”. World Trade Report 2011.

— 김양희(2015). “한․미 FTA에 따른 한국의 제도변화에 관한 시론적 고찰”. 『동향과 전망』 93호. 한국사회과학연구소/박영률출판사.

— 김양희(2017a). “한․미 FTA 계기 국내 자동차세 개정에 대한 연구”. 『한일경상논집』 제75권.

— 김양희(2017b). “문재인 정부 대외경제정책의 현안과 정책 과제” 『동향과 전망』 101호. 한국사회과학연구소/박영률출판사.

— 김양희(2018) “FTA 계기 국내 제도변화 연구를 위한 시론 –한미 FTA 및 한EU FTA를 중심으로”. 한국유럽학회 학술대회 발표문(2018. 6. 22).

— 김영귀․금혜윤․유새별․김양희․김한성(2014). 『한국의 FTA 10년 평가와 향후 정책방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전병유·정준호(2016). “자산과 소득불평등의 총수요효과와 성장체제” 『사회과학연구』 55집 제1호.

— 정준호·전병유·정세은(2017). “한국의 경제적 개방의 불평등 효과” 『무역연구』 제13권 제3호.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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