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conomy | 김양희의 경제통합 풀어보기
그래픽_김승미
Stiglitz(2015)의 정의에 따르면 ‘규칙(rules)’은 경제의 작동구조를 결정하는 모든 정부규제와 법의 체계 그리고 사회규범을 포괄한다. 규칙에는 재산권과 계약의 이행을 비롯하여, 기업의 설립과 행동과 책임, 노사관계, 금융시장에서 적용되는 의무와 보호에 영향을 미치는 규칙들이 들어간다. 또한 공공 정책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세금과 공적 지출, 통화정책 등을 관장하는 규칙과 제도도 포함된다. 나아가 사회적, 경제적 기회로부터 여성과 유색인종과 같은 특정집단이나 계층을 체계적으로 배제해 차별의 구조적 토대를 생성하는 성문화된 혹은 그렇지 않은 규칙도 들어간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규칙을 제도 혹은 규제로 간주하고 혼용하기로 한다.
한EU FTA 협정문
FTA를 통한 제도개혁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Helble et al(2007)는 제도 선진화의 핵심인 ‘제도 투명성’을 ‘예측가능성(predictability)’과 ‘단순성(simplification)’로 간주하고, 아태지역 내에서 제도 투명성 제고에 따른 무역환경 개선이 역내 양자간 무역을 촉진하였는데 그 성과는 차별화 제품에서 두드러진다고 분석한다. 나아가 APEC내 RTA를 통한 제도의 투명성 개선으로 역내무역이 1,480억 달러(총무역의 7.5%) 증가했다고 추산한다. 반면 Rodric(2007)은 개도국 정부가 외국시장에의 접근성을 보장받고자 외국 법률과 기준을 수입하는데 열중하나 이는 개도국 개발의 우선순위를 고려하지 않을 뿐 아니라 비합리적인 이익을 요구하는 선진국내 이익집단을 위한 것 뿐이라고 일갈한다. Stiglitz(2016)는 심화통합과 같은 FTA는 ‘무역의 자유화’가 아니라 ‘무역의 관리’가 본질이라며 ‘특허권자와 투자자의 과도한 보호’라는 미국식 경제규칙을 FTA를 통해 수출해선 안된다고 경고한다. Viner로 상징되는 RTA 연구는 무역·투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량적 분석이 넘쳐나는 반면 이를 제도적 맥락에서 접근하는 연구는 미진하다는 Baldwin(2011)의 지적은 국내 학계에도 딱 들어맞는다. 한미 FTA 체결 당시 규제개혁을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거셌으나 정작 현 시점에서 관련 연구는 논란이 컸던 약사법 개정 정도에 한정된다. 이는 제도개혁 분야는 광범위하고 개혁성과는 한참 후에나 드러나는데 분과학문간 칸막이가 높고 장기공동연구는 상당한 발품을 팔아야 하는 점에 기인한다. 세계는 지금 노동배제적 기술진보와 개방이 야기한 불평등의 대가를 톡톡히 치루고 있다. 글로벌 경제에 깊숙이 편입되어 있는 한국에도 경고등이 켜졌으나 그렇다고 이제와서 빗장을 걸어 잠글 수도 없다. 한편 촛불정부에 부여된 시대정신은 다름 아닌 개혁이다. 특히, 그것을 소득주도성장이라 명명할지 포용적 성장이라 명명할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날로 심각해지는 불평등의 완화 필요성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과연 불평등을 야기한 한 원인인 개방이 다시 그 결과를 완화시킨다는 일견 모순된 일은 어떻게 가능할까. 전병유·정준호(2016)는 한국의 임금상승이 소비증대를 초래하는 경로보다 노동절약적 투자와 이를 통한 수출증가의 경로를 따른다고 본다. 정준호·전병유·정세은(2017)은 한국에서 외환위기 이후 상품무역 자유화는 소득분배를 완화시켰으나 금융자유화와 외국인직접투자 확대는 이를 악화시켰다고 한다. 이상의 연구는 우리가 개방을 백안시할 게 아니라 어떤 개방인가에 주목할 필요성을 시사한다. 그래서 말이다. 한국이 개방의 총화인 FTA를 통해 추진한 대대적인 제도개혁의 긴 여정이 지금 어디쯤 와 있는지 묻는 것은 학술적 차원을 넘어 중요한 정책적 함의를 지닌다. 제도개혁이 규제강화든 규제완화든 길을 잃은 듯 갈팡질팡하는 지금 이 때, 개방을 거부할 수 없는 이 나라에서 6년 전 시도한 FTA를 통한 대대적인 제도개혁 실험이 혁신성장을 제대로 촉진하고 있는지, 불평등 완화와 어깃장을 놓고 있진 않은지 살피고 앞으로 어느 길로 갈지 묻는 일은 족히 유의미하고 시의적절하다.
참고문헌
— Baldwin, Richard(2011). “21st Century Regionalism: Filling the gap between 21st century trade and 20th century trade rules”. WTO working paper ERSD.
— Helble, Matthias, Ben Shepherd and John S. Wilson(2007). Transparency and Trade Facilitation in the Asia Pacific – Estimating the Gains From Reform. World Bank.
— Horn, Mavroidis, P. C. and Sapir, A(2010). "Beyond the WTO? an anatomy of EU and US preferential trade agreements". The World Economy 33(11).
— Rodric, Dani(2007). One Economics, Many Recipes: Globalization, Institutions and Economic Growth. Princeton University Press(제현주 역. 2011. 『더 나은 세계화를 말하다』 북돋움).
— Schiff, Maurice and L. Alan Winters(2003). Regional Integration and Development. World Bank.
— Stiglitz, Joseph E. et. al.(2015). Rewriting the Rules of the American Economy: An Agenda for Growth and Shared Prosperity. A Roosevelt Institute book. W.W. norton & Company(김홍식 역. 2018. 『경제규칙 다시 쓰기』 열린책들).
— WTO(2012). “The WTO and preferential trade agreements: From co-existence to coherence”. World Trade Report 2011.
— 김양희(2015). “한․미 FTA에 따른 한국의 제도변화에 관한 시론적 고찰”. 『동향과 전망』 93호. 한국사회과학연구소/박영률출판사.
— 김양희(2017a). “한․미 FTA 계기 국내 자동차세 개정에 대한 연구”. 『한일경상논집』 제75권.
— 김양희(2017b). “문재인 정부 대외경제정책의 현안과 정책 과제” 『동향과 전망』 101호. 한국사회과학연구소/박영률출판사.
— 김양희(2018) “FTA 계기 국내 제도변화 연구를 위한 시론 –한미 FTA 및 한EU FTA를 중심으로”. 한국유럽학회 학술대회 발표문(2018. 6. 22).
— 김영귀․금혜윤․유새별․김양희․김한성(2014). 『한국의 FTA 10년 평가와 향후 정책방향』. 대외경제정책연구원.
— 전병유·정준호(2016). “자산과 소득불평등의 총수요효과와 성장체제” 『사회과학연구』 55집 제1호.
— 정준호·전병유·정세은(2017). “한국의 경제적 개방의 불평등 효과” 『무역연구』 제13권 제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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