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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USMCA는 미국 ‘TPP 양자화’ 전략의 승리

등록 2018-11-01 16:09수정 2018-11-01 16:23

Weconomy | 김양희의 경제통합 풀어보기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USMCA.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US-Mexico-Canada Agreement)을 뜻하는 NAFTA(북미자유무역협정)의 새 이름이다. 명칭이 워낙 길고 독특해 <워싱턴 포스트>의 경제전문 블로그 <웡크블로그 Wonkblog>에는 이를 여타 FTA 명칭과 비교분석하는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세계 FTA 명칭 중 USMCA는 태평양 동맹(Pacific Alliance)과 CIS FTA 다음으로 많은 무려 5개 음절인데다 모음이 마지막에 하나뿐이라 발음도 어렵다. 대체 누가 작명했을까? 물론 트럼프다. 애초 그는 미국해병대(US Marine Corps)에 존경의 뜻을 담아 USMC만 원했으나 A를 추가하는데까진 양보했다. 그래봐야 북미(NA)가 미국(US)으로 바뀐 것은 변함없고, 이보다 더 미국우선주의를 잘 드러내는 명칭이 어디 있겠는가.

트럼프의 핵심 대선공약이던 NAFTA 재협상이 1년 여 만에 일단락되었다. 미국은 멕시코와 8월에 합의에 도달한 뒤 협상 마감시한을 몇 시간 남기고 캐나다와도 극적으로 타결했다. 트럼프는 낡은 협정을 21세기형 무역협정으로 현대화(modernization)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예사롭지 않은 명칭에서부터 NAFTA와의 차별성을 부각시켜 11월 6일의 중간선거에서 이를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우려는 그의 의도가 빤히 보인다. 종래의 경제통합이론을 새로 써도 될 만큼 USMCA는 고약하게 독특하다. USMCA는 북미 3국만이 아니라 종래의 세계무역질서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필자는 ‘TPP의 양자화(bilateralization of the TPP)’란 관점에서 USMCA를 살펴보고, 우리의 선택지를 모색해 본다.

1. USMCA = NAFTA + TPP + α

USMCA는 형식면에서 NAFTA를 기본(template)으로 한다. 그러나 전자는 후자의 22개 챕터보다 훨씬 많은 34개 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2/3 이상이 놀랍게도 트럼프가 취임 직후 제일 먼저 파기한 TPP(30개 챕터)와 유사하다. 내용면에서도 USMCA의 주요 내용을 기존 협정의 통합수준과 대비해 보면 완화, 강화(기존재 규정), 강화(신설 규정)의 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기존 협정이란 NAFTA만이 아니라 TPP나, 이후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TPP 11개국이 타결한 CPTPP도 숨어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TPP는 죽지 않았다. 오히려 USMCA로 부활했다.

USMCA 주요 내용의 통합수준을 기존협정과 비교하여 유형화하면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는 데 이렇게 하면 그 아래 숨어 있던 TPP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첫째는 통합수준 완화다. 미국은 투자 챕터의 투자자-국가분쟁중재 메카니즘(ISDS)을 캐나다에서는 폐기하고, 멕시코에는 에너지와 정보통신, SOC 등에만 적용하기로 했다. 이는 자국의 정책주권 훼손 우려의 발로라기보다는, 트럼프나 라이트하이저 미무역대표부(USTR) 대표가 공공연히 강조했듯이, 멕시코의 해외투자 보호수준을 ‘완화’해 자국 기업의 고용수출을 막겠다는 미국우선주의의 결과물이다. 미국 산업계는 ‘나쁜 선례’를 만들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둘째는 통합수준 강화다. 자동차의 역내부가가치 충족요건 상향조정, 캐나다 유제품 시장 개방, 지식재산권 보호, 금융 서비스, 노동, 환경 등은 과도한 개방수준으로 인해 NAFTA는 물론, TPP에서도 개도국이 반발해 결국 CPTPP에서 동결된 것이 USMCA에서 부활하거나 강화되었다.

※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세번째도 통합수준 강화인데, 자동차원산지규정의 노동부가가치, 국유기업, 디지털무역, 일몰조항, 환율정책, 비시장경제(non-market economy) 등은 신설 규범이다(국유기업만 TPP에 있음). 바로 이 조항들이 USMCA를 가장 독특한 협정으로 만든다. 트럼프가 FTA 교과서를 새로 쓰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부가가치, 환율정책, 비시장경제는 WTO에선 상상조차 못하고, TPP에도 없는 기상천외한 것들이다. 예컨대, 자동차 원산지규정에서는 자동차부품의 40~45%를 시급 16달러 이상 노동자가 생산해야 한다는 ‘노동부가가치(labor Value Content)’ 기준을 도입했다. 그러나 캐나다와 미국 자동차 산업의 평균시급은 20달러가 넘는 반면 멕시코는 3.4달러(부품)~7.3달러(조립)에 불과하다(2017년 기준). 이를 통해 미국이 노리는 것은 멕시코의 임금주도성장이 아니라, 세계 자동차기업의 미국회귀(reshoring)다. 디지털무역, 국유기업, 환율정책 및 비시장경제 조항은 역외국인 중국 봉쇄를 위한 것이다. 특히 32.10조의 비시장경제 조항은 세 나라 가운데 한 곳이 비시장경제와 FTA를 맺을 경우 나머지 나라는 USMCA를 폐기하고 양자 FTA를 맺을 수 있다고 규정한다. 물론 이 때 비시장경제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역외국의 고립을 목표로 관세동맹보다 통합수준이 낮은 FTA에서 FTA 상대국의 조약권을 제어하는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든 횡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2. USMCA = TPP의 양자화

USMCA의 의의는 일차적으로 역내국에게 트럼프발 불확실성의 제거를 뜻한다. 이를 방증하듯 협상타결 소식에 시장은 다우지수의 약 200 포인트 상승으로 화답했다. 반면 역외국에게 USMCA는 미국의 새로운 무역질서 주도를 위한 템플릿의 출현이다. 그런데 이것이야 말로 당초 미국의 TPP 목표였다. 이에 필자는 USMCA를 미국의 ‘TPP의 양자화’ 전략의 승리라고 명하고 싶다. 즉 트럼프는 TPP 체결이 힘들어지자 양자간 FTA로 우회하는 플랜B를 가동한 것이다. 미국은 처음에 TPP를 매개로 자국 강점분야의 무역규범을 선점하고 급부상하는 중국을 공동견제하려 했으나 여타 참여국의 반발로 여의치 않자 TPP를 탈퇴하되 이들을 일대일로 상대해 본래 목적을 이루는 ‘신의 한 수’를 뒀다. USMCA는 외형상 3자간(trilateral) 협정이나, 미국은 캐나다 및 멕시코와 양자간 협상을 기본으로 삼았다.

이 전략을 구사할 수 있는 나라는 아직 미국뿐이다. 미국은 그간 거대한 자국시장을 지렛대로 FTA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해 만만한 상대국간의 자유화 경쟁을 유도하는 ‘경쟁적 자유화(competitive liberalization)’ 전략을 십분 활용해 왔다. 한발 더 나아가 트럼프는 이를 위한 비장의 무기로 해묵은 무역확장법 232조(무역이 미국안보에 위협을 가한다고 판단할 경우 의회와의 협의 없이도 폭넓은 관세 부과권한을 대통령에게 부여한 법)에 기반한 고관세 카드를 꺼내 들었다. 캐나다는 미국의 안보동맹에게 철강과 알루미늄에 이어 자동차에도 232조를 들이댄 미국에 USMCA에 합의하는 대신 232조 적용에서 배제해 줄 것을 원했으나 좌절됐다. 다만 232조 적용시 자동차(캐나다와 멕시코 각각 260만 대)와 자동차부품(캐나다 324만 달러, 멕시코 1,080만 달러)이 무관세 쿼터를 받는 부속서(side letters)로 만족해야 했다.

USMCA의 출현은 다자주의의 앞날에도 먹구름을 드리운다. 이미 WTO의 다자주의에 기반한 무역자유화는 기능부전에 빠진 지 오래나 그나마 회원국간 무역분쟁 해결에서는 WTO가 그나마 역할을 수행해 왔으나 이 또한 위기에 처했다. 미국의 일방주의적 무역구제 남발에 제동을 걸어 온 WTO의 분쟁해결이 거슬렸던 트럼프가 노골적으로 WTO 무력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즉 미국이 2심제인 WTO 분쟁해결의 상소심을 담당하는 총 7명의 상소위원 중 임기만료된 4명의 후임 지명을 거부함에 따라 2018년 10월 현재 3명만 남아있다. 이대로라면 2020년에는 상소위원이 한 명도 남지 않게 된다. TPP의 양자화는 명백하게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의 완결판이며 WTO 다자주의와 상치된다.

USMCA는 다만 양자주의 세계에서는 아직 미국이 건재함을 만방에 알렸다. 미국은 향후 USMCA를 일본, EU 등 자국과의 FTA를 원하는 무역상대국과의 일대일 양자 협상에도 적용시켜 중국견제에 나설 전망이다. 그러나 앞으로도 이 전략이 진가를 발휘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미국이 세계 GDP에서 점하는 비중이 점차 감소 중이기 때문이다. 지난 15년간 미국의 세계 자동차 및 트럭 시장 점유율은 절반으로 줄었다. 그래서 내리막길에 접어든 패자(?者)는 오르막길의 새로운 패자를 견제하려는 심리를 심히 난폭하게 드러냈는지 모른다. 미국의 조바심이 읽혀지는 대목이다.

3. 우리의 선택은?

한국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USMCA 타결 전에 한-미 FTA가 타결된 것에 안도의 한 숨을 내쉬어야할까. 다만, 한-미 FTA 개정협상은 미국이 무역촉진권한(TPA) 없이 시작했기 때문에 자국의 국내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은 건드릴 수 없다는 한계로 인해 대폭 개정이 힘들었다. 그럼에도 만일 USMCA 이후에도 한미 FTA 협상이 이어졌다면 미국이 USMCA 중 일부를 우리에게도 요구했을 가능성이 제로라고 장담하기 힘들다. 그래서 속히 우리가 한미 FTA 비준에 나서는 것이 차선일지도 모른다.

결국 앞으로가 문제다. 한-미 FTA 개정 협상 이전부터 논란이 일었던 데이터의 국외이동이나 현지저장에 관한 내용이 핵심인 금융서비스, 이번 개정협상 때 포함 여부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던 환율조항, 아직 우리에겐 없는 디지털 무역 등에서 언제 어떻게 무기력하게 내줘야 할지 모른다. 게다가 트럼프가 중간선거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연임에 성공할 가능성도 낮지 않다. 그러니, 지구전이다. 정부와 국회에서 한-미 FTA 비준, 그 너머를 대비해 이제부터 숙의를 시작해야 한다.

※ 이 글은 <함께 하는 FTA> 11월호의 기고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다.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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