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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속 빈 강정’ 한-미 FTA 공청회 유감

등록 2017-11-15 10:33수정 2017-11-15 11:23

Weconomy | 김양희의 경제통합 풀어보기
그래픽_장은영
그래픽_장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지난 10~11일 양일간 실시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폐지 관련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한-미 FTA 협의과정 중 미국의 과도한 요구가 있을 경우 ‘한-미 FTA 폐지’에 찬성한다는 의견이 53.1%로, 폐지 반대 의견(40.4%)을 13%포인트 정도 앞선다. 그런데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정치성향에 따라, 세대에 따라 찬반이 갈린다. 마냥 미국에 끌려갈 필요는 없다는 것이 과반이 넘는 국민의 뜻이지만, 그렇다고 섣불리 한-미 FTA 폐기를 뽑아들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만큼 이 사안도 신고리원전 5·6호 건설 재개 여부와 같이 다양한 공론의 장을 마련해 신중히 판단해야 할 사안임을 시사한다.

이런 여론지형을 감안하면, 지난 10일 열린 한-미 FTA 개정협상을 위한 공청회 파행은 앞으로의 파란을 예고한다. 공청회는 농축산업계 종사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예정된 종합토론은 시작도 못하고 중단됐다. 그럼에도 산업부는 당일 보도자료를 내어 공청회를 개최한 것으로 간주하고 다음 절차인 국회보고를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공청회를 저지한 농민단체나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그리고 조배숙 의원(국민의당)실 등은 통상절차법 제7조(공청회의 개최-산업통상자원부는 통상조약체결 계획을 수립하기에 앞서 이해관계자와 전문가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를 개최하여야 한다)를 근거로, 의견 수렴 없는 공청회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공청회 성사 여부를 둘러싸고 팽팽히 대립하고 있다.

필자는 공청회 개최의 효력 여부를 둘러싼 법리적 공방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

먼저, 공청회가 정해진 일정대로 마쳤더라도, 과연 국민소통을 중시하는 현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 묻고 싶다.

산업부가 내놓은 공청회 자료는 형편없었다. 산업부의 ‘한-미 FTA 개정 관련 추진 경과’ 자료의 본문은 5쪽 뿐이며 그조차 포털사이트서 검색하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정보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작성한 ‘한-미 FTA 개정의 경제적 타당성 검토’ 자료도 12쪽이지만, 유의미한 정보는 3쪽에 불과하다. 더욱이 결론은 농산품을 제외한 공산품의 미양허품목 개방시 미미하나마 전체 GDP가 0.0004~0.0007% 증가한다는 것이었다. 결론대로라면 속히 추가 개방하자고 트럼프를 졸라야 한다. 정작 국민이 가장 궁금해 하는 한-미 FTA 개정이 우리에게 미칠 부작용이나 추가 피해 정도 등을 살펴볼 수 있는 내용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자료집에는 종합토론 세션에 나설 토론자들 명단만 보일 뿐 이들이 3일 전에 제출한 토론문도 담기지 않았다. 더욱이 토론자들은 발제문도 못 본 채 자료를 제출해야했다. 이를 우리 쪽 협상 전략 노출을 피하기위해 불가피했다고 밝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해관계자나 전문가들의 의견을 접할 수 있는, 그야말로 공청회의 취지를 살리고자 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러한 정부 행태는 그간 국민의 알 권리를 경시하고 가리기에만 급급해 온 지난 정부의 ‘적폐’가 새 정부 들어서도 별반 청산되지 않았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은 나프타 협상을 앞두고 지난 7월 홈페이지에 깨알같은 글씨로 장장 18쪽에 나프타 협상목표와 22개 분야별 상세한 개정목표를 공개했다. 정부 말대로라면 미국 정부는 자국 협상전략을 드러내는 어설픈 짓을 한 셈이다. 한-미 FTA 협상과정에서 미국의 선진적인 제도를 적극 도입하자고 강력히 주장하던 정부가 정작 이런 선진적인 제도는 왜 본받지 않는가.

둘째, 공청회는 한-미 FTA 개정협상의 타당성을 검토하는 자리인가, 개정협상을 추인하는 자리인가? 공청회가 농축산업계에 의해 저지됐다고 마치 이들만 한-미 FTA로 손해를 봤다고 오인해서는 안된다. 정부가 한-미 FTA가 양국에 이익을 가져다주었다고 주장하면서도 미국의 추가적인 요구에 응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이를 마냥 거부할 수 있는 강대국이 아님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래서 고가의 무기를 위시한 미국산 제품 구매 및 투자 프로젝트도 약속하며 트럼프 달래기에 나선 것 아닌가. 이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이익의 균형점을 만든 셈이다.

그런데도 공청회 직전의 한·미 정상회담 공동언론 발표문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는 현실적으로 추가 요구를 내줘야 하는 개정협상을 기정사실화하고 조속히 응하겠다고 밝혔다. 방미때 수조원의 투자와 제품 구매를 밝혔고, 미국 무기 구매까지 밝히면서 새 균형점을 맞춘 현 시점에서 미국이 원한다고 개정협상을 기정사실화해서는 안된다. 우선 공청회에서, 그리고 국회보고 자리에서 개정 필요성이 있는지부터 충분히 검증해야 한다. 국민의 53.1%가 미국이 무리한 요구를 할 경우 한-미 FTA 폐기를 원한다는 점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로버트 퍼트남 하버드대 교수는 국제협상이 대외협상과 대내협상의 ‘양면게임(Two level game theory)’으로 이뤄진다고 했다. 대외협상을 위해 대내협상에도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다. ‘촛불 정부’는 미국과의 협상에서 최대한 많이 얻는 것 못지않게 대국민 소통에 힘써 협상을 일임하는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어야 한다. 행여 정부가 미국요구에 이끌려 속전속결로 개정협상 테이블에 앉으려고 한다는 인상을 줘서는 안될 것이다. 현 정부 앞에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안되는 개혁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 와중에 어설픈 대외협상으로 인해 정부의 개혁지지 세력의 이반을 자초하는 일이 없도록 노무현 정부 당시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이다.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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