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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실패≠시행착오…성공신화 벗고 도전 경험을 쌓자

등록 2018-01-04 10:33수정 2018-01-04 16:08

[새해기획 한 걸음 더+] ② ‘패자부활’ 기회의 사회로
국가연구개발 과제 성공률 98%
손뼉을 쳐야 할까?
실패 두려워 안주하는 건 아닐까…

일 정부, 1천여 실패사례 모아 활용
국내서도 점차 인식전환 바람
실패담 강연 ‘퍽업 나이츠’
경험 공유하는 ‘월간 실패’ 눈길

보건복지부 실패사례 학술지 추진
과기정통부, 평가 때 실패 판정안해
“실패란 개념 바꿔나가야” 목소리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실패’는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 놓이거나 사라졌다. 실패를 거듭하며 성공의 길로 갈 수 있다는 명제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돌아서서는 ‘성공 신화’를 좇는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태도다. 실패에 엄격하고 성공에 집착한 채로 산업화를 거쳤다. 문제는 아직도 거기 머물러 있다는 데 있다. 실패·성공에 대한 관점, 태도, 철학의 전환 없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았다. 그나마 조금씩 정부나 시장에서 전환의 싹이 보이고 있다. 실패의 경험을 공유하고, 실패 개념 자체를 없애거나 하는 시도가 한둘씩 시행되고 있다. 흩어지고 사라질 위기의 실패를 유용한 정보라는 보배로 꿰어가는 중이다.

국내에서 실패에 대한 관심도 부쩍 높아져 실패담 강연이 생겼다. ‘퍽업 나이츠’(Fuck-up Nights)다. 이 행사는 2014년 멕시코에서 시작된 실패 공유 네트워킹 운동이다. ‘퍽업’의 의미는 ‘개판’, ‘엉망이 되게 함’이다. 여러 차례 시도했다 개판을 만들어본 사람들이 그 경험을 나눈다. 이제까지 80개 나라, 252개 도시에서 열렸다. 퍽업 나이츠는 실패담 공유 네트워크 모임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색다른 시도도 하고 있다. 퍽업 나이츠는 실패 연구소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퍽업 나이츠 등에서 공유된 실패 사례를 문서화하고, <퍽업 북>이라는 이름으로 책도 펴냈다. 실패 연구소는 “기업과 학계, 시민이 좀더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돕는 것”을 활동 목표로 삼고 있다.

서울에서도 2016년 8월부터 2017년 7월까지 7차례 소규모로 열렸다. 강연이 주였다. 주제는 미국에서 시작된 ‘페일콘’(FailCon)과 다르게 창업과 경영 등으로만 국한되지 않는다. 연애나 공부 실패 얘기도 나눈다. 서울에서는 콘텐츠 스타트업 ‘라이프스퀘어’와 공유 사무공간 기업 ‘르호봇 비즈니스 인큐베이터’가 손잡고 운영했다. 강현진 라이프스퀘어 디렉터는 “창업가뿐만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이나 직장인들이 연사가 되기도 한다”며 “연사 구성과 콘텐츠 수준을 끌어올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내부 정비를 거쳐 상반기 중 다시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만들기’와 ‘놀이’를 주축으로 삼는 제작실험집단 ‘릴리쿰’은 <월간 실패>를 발행하고 있다. 65권 가까이 발행한 <월간 실패>에는 수년간의 실패 경험이 쌓여 있다. 누군가에게 ‘실패 매뉴얼’이 될 수 있다. 놀이에서 출발한, 대체로 쓸모없는 시도와 그 실패가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 지점이다. 릴리쿰 구성원 선윤아씨는 “실패는 대체로 감추려고 해 공동의 자산으로 삼으려는 시도가 적다. 실패의 경험이 공공 정보가 됐을 때 갖는 힘과 가치를 환기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국가연구개발사업에도 변화가 꿈틀대고 있다. 국가연구개발사업 과제 성공률은 98.1%(2011년 기준)에 이른다. 높은 성공률에 대해 한 연구자는 “꾸준히 정부 지원을 받으려면 획기적인 도전을 택하기 어렵다. 성공 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어 과제 목표를 낮춰 잡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100% 가까운 연구개발 성공률은 실패를 금기시하는 문화와 인식을 드러낸다.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있는 1~2%의 실패마저 흐지부지 사라지고 만다.

다른 나라와 기업들은 한참 앞서 실패를 모으기 시작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기업과 연구기관의 1천여개 실패 사례를 모은 ‘실패지식활용연구회’를 운영하고 있다. 실패의 원인을 비롯해 활용 방법까지 꼼꼼하게 기록해 놓아, 이를 기반으로 다른 연구개발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정부도 2000년대 초반 연구개발에 있어 ‘성실 실패’(연구 목표는 달성하지 못했어도 성실히 노력한 사실이 인정되는 경우) 개념을 도입했지만, 그 사례는 제대로 보고되고 축적되지 못했다. 뒤늦었지만 정부기관에서도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보건의료 연구개발 평가·관리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공청회를 지난해 11월22일 열었다. 개선안에는 연구개발 실패 경험을 모으고 축적하려고 별도의 학술지를 발간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김현철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연구개발(R&D)기획단장은 “연구개발에 있어서 실패를 실패라고 볼 수 없다. 그러나 실패에 대한 인식과 평가가 좋지 않다 보니 자꾸 음성화하는 경향이 있다. 실패를 양성화해 그 정보를 공유하면 다른 연구자에게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는 기회가 될 수 있고, 같은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계기로 삼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 바이오의학중앙센터에서 매년 발간하는 <바이오의학의 부정적 연구성과 저널>이 모델이 될 수 있다. 이 학술지에는 ‘기대와 다른 결과물’,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결과물’, ‘좋은 아이디어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는 결과물’ 등의 실패 경험이 실려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간할 학술지도 결과에만 집중하기보다 폭넓은 연구결과를 실을 수 있는 플랫폼으로 구상되고 있다. 김 단장은 “논문으로 발간할 수 없는 연구결과물이나 상업화에 도달하지 못한 사례, 연구 목표 또는 의도만큼 결과물 도출이 안 된 경험 등을 함께 싣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개발 평가에 ‘실패’ 개념을 아예 없애는 시도도 나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과학기술혁신본부는 지난해 12월8일 ‘창의·도전적 연구환경 조성을 위한 차별화된 과제평가체계 도입 방안’을 심의·확정해 ‘국가연구개발 과제평가 표준지침’을 개정했다. 실패나 성공 판정을 하지 않는 ‘창의도전형’ 평가유형을 새로 만든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중간평가를 받지 않고 연구성과와 의의에 대해 의견 제시를 하는 ‘정성평가’를 받는다. 과기부는 “목표달성 위주의 정량평가 방식으로 진행돼 창의적인 연구를 막는 원인 중 하나로 꼽혀왔다”고 설명했다.

구글은 8대 혁신 원칙 가운데 하나로 ‘실패를 주저하지 말라’(Never fail to fail)를 갖고 있다. 아직 우리 기업 사이에서 이러한 원칙은 두드러지지 않는다. 하지만 포스코는 2013년부터 ‘도전실패상’을 제정해 혁신적 실패를 한 연구진을 격려하는 등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포스코 관계자는 “매년 열리는 포스코 패밀리 기술 콘퍼런스 자리에서 연구진들이 제출한 혁신적 실패 사례를 공유하는 자리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실패를 시행이라는 개념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정동 서울대 교수(산업공학)는 “실패라는 말 자체가 아주 잘못된 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 중에 있는 시행의 연속으로 보면 되는 것이다. 그 시행을 하나하나 매번 실패라고 정의하면 그 행위자는 매번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나아가는 셈이다. 시행착오라는 개념도 있지만, 여기에서 ‘착오’라는 말도 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어떤 시도를 하고, 그 결과를 ‘실패’로 기록하고 평가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에서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실패는 없고, 시행이 있다는 식으로 프레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합리적이고 도전적인 ‘시도’를 하고 거기에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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