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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미궁 속 한미 FTA 개정협상의 미국내 절차

등록 2018-01-17 14:32수정 2018-01-25 14:31

Weconomy | 김양희의 경제통합 풀어보기
그래픽_김지야
그래픽_김지야

2018년 1월 5일 한미 FTA 개정협상이 미국에서 개최되었다. 첫 협상은 예상대로 상호 탐색전으로 끝났고 2차부터 본격적인 협상이 예상되므로 아직 최종 결과를 예단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 전망을 힘들게 하는 요소는 비단 이뿐 아니다. 1차 협상결과에 대한 양측의 자료나 언론 보도만으로는 정작 협상 전망 도출에 필요한 한 가지가 여전히 미궁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는 다름 아닌 미국의 통상협정 절차에 관한 것이다.

먼저 우리가 알고 있는 일곱 가지 팩트를 확인해 보자.

1. TPA 절차를 거치지 않은 협상: 미국측은 2011년 한미 FTA 발효 당시와 달리 오는 6월말 만료되는 무역촉진권한(TPA) 절차를 거치지 않고 이번 협상 추진

2. 부분개정 전망: 이번 협상을 우리측은 개정협상, 미국측은 수정(modifications) 및 개정(amendments) 협상이라 부르고 양측은 전면개정보다 부분개정을 전망하나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전면개정 가능성도 언급

3. 미국측 관심사: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시장개방, 비관세장벽 해소 등 자동차 관련 모든 것

4. 우리측 관심사: 무역구제 남용 방지, 투자자-국가분쟁중재(ISDS) 메카니즘 조항 개선 등

5. 우리측 전략: 미국측 개정수요에 상응하는 우리측 개정수요를 발굴·제시하여 미국측의 개정범위의 축소·완화를 유도

6. 협상 난항 전망: 양측 모두 향후 이번 협상이 난항될 것으로 전망

7. 나프타 재협상 난항 중: 미국측은 NAFTA 재협상을 TPA하에 추진 중이나 최근 캐나다 당국자는 미국의 NAFTA 폐기를 확신한다고 언급할 정도로 난항 중

이어서 미국의 TPA 제도를 살펴보고 그 특성에 비추어 미국과 우리의 협상전략의 행간을 읽어본다. 이를 토대로 우리의 한미 FTA 개정협상 결과를 전망하고 협상전략을 점검해 보자.

1. 미국의 통상협정 체결 유형

한국은 통상협정이 국회 비준동의를 얻으면 그것이 바로 국내법과 동등한 효력을 얻게 된다. 이에 비해 미국은 그것이 그대로 국내법이 되는 게 아니라 의회에서 이를 국내법에 맞추는 소위 이행법(implementing bill)을 통과해야 한다. 이러한 국제법과 국내법의 이원론 체계로 인해 미국에서는 통상협정의 체결 및 이행 주체를 둘러싸고 오랫동안 의회와 행정부간 역할분담이 논란이 되어 왔다. 이는 미국 독립직후 연방체제가 자리 잡지 않은 상황에서 각 주(州)가 대외무역보다 주간무역에 더 관심이 있을 당시 통상조약 체결권한이 대통령이 아닌 주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에 부여되었던 역사적 배경에도 기인한다(입법조사처, 2017: 12p).

이렇듯 미국 통상협정은 의회와 행정부간 권한배분 방식, 그에 따른 협정의 국내법적 지위, 의회절차 여하에 따라 크게 ‘조약(treaty)’과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으로 나뉜다. 후자는 다시 ‘의회-행정협정(congressional-executive agreement)’, ‘(순수)행정협정(presidential executive agreement)’, ‘조약부속 행정협정(treaty executive agreement)’로 세분되어 모두 네 가지로 유형화된다(김호철, 2008). 이 나열 순서는 의회의 권한 크기순으로 행정부의 권한은 딱 그에 반비례한다.

미국의 통상협정 체결 유형
출처: 김호철(2008)을 토대로 작성(※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중 ‘조약’은 연방헌법 2조에 의해 대통령이 체결하면 의회의 입법 절차를 거쳐야 하는 통상협정으로 국내에서 최고법 지위를 얻는다. 단 상원 2/3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하며 자동으로 국내법이 되지 못하는 비자기집행조약(non-self-executing treaty)의 경우는 하원에서 이행법도 통과해야 한다. 이런 연유로 상원 동의절차가 지연되거나 부결될 수 있고, 하원이 이행법률을 처리하지 않기도 했다. 그럼에도 행정부가 의회 고유의 입법권한을 침해할 수 없어 통상협정 체결이 더디어 지는 문제가 야기되었다. 반면 행정협정 중 ‘(순수)행정협정’은 의회개입 없이 대통령 고유권한으로 체결하는 것이라서 대통령에게 어느 정도 협정 체결 및 이행 권한이 위임되는가를 둘러싸고 의회의 불만이 제기되었다. ‘조약부속행정협정’은 말 그대로 조약이 이행관련 세부사항을 행정협정으로 위임한 것으로 이는 의회와 무관하게 행정부가 이행하면 되는 것으로 별 논란의 소지가 없다.

이상과 같은 특성으로 인해 행정부는 ‘조약’의 더딘 절차에, 의회는 ‘행정협정’의 대통령 권한에 각기 불만이 생겼다. 이에 양자의 요구를 절충한 의회와 행정부간 타협안인 ‘의회행정협정’ 이 만들어졌다. 즉 TPA하에서는 의회의 이행 절차가 일반적인 입법절차와 동일하게 하원과 상원 각각에서 1/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하나 그 대신 의회가 나머지 절차는 신속히 추진하는 방식으로 행정부와 통상협정을 둘러싸고 권력을 나누게 된다.

2. 의회-행정협정, TPA의 역사적 기원과 작동 메카니즘

미국 의회는 연방헌법 1조 8절에 의거한 대외무역의 규제권한을 갖는 반면 대통령은 헌법 2조에 의거한 독점적인 협상권한을 갖는다(CRS, 2017). 얼핏 매우 모호한 역할분담인데, 이는 국제조약이 국내법의 실질적인 변화를 초래할 경우 좀 더 명쾌해 진다. 즉 미국에서는 조약이 자동으로 국내법 지위를 얻는 자기집행조약(self-executing treaty)과 그렇지 않은 비자기집행조약(non-self-executing treaty)으로 구분되며 후자의 경우, 의회가 대통령의 협상결과를 반영하여 기존 국내법을 개정해야 비로소 자기집행이 가능한 국내법이 되는데 이를 이행 절차라고 한다. 즉 협상은 행정부가 하되, 그 결과물의 국내법으로의 이행인 규제권한은 의회가 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1934년 미국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한시적으로 권한을 위임받아 호혜무역협정법(Reciprocal Trade Agreement Act of 1934)을 발효하기 전까지 150년간 대외무역의 관세율을 제정하는 것은 미 의회의 역할이었다. 이후 행정부에 위임한 관세율 부과 관련 협상권은 수차례 연장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따라서 오늘날 관세협정 체결 및 이행 권한은 대통령령만으로도 가능하게 되었다.

1960년대에 접어들어 상품 관세율이 과거에 비해 낮아지고 서비스와 투자시장 자유화도 확대됨에 따라 무역자유화를 저해하는 무역장벽도 관세장벽뿐 아니라 비관세장벽으로 외연이 확대되는 통상환경의 변화를 맞게 된다. 배경으로 의회도 이전 대통령에 위임했던 협상권한의 대상을 후자에까지 확장하게 된다. 이는 비관세장벽이라는 기존 국내법의 철폐와 개정을 수반하는 커다란 변화를 뜻한다. 의회는 따라서 자신의 권한을 관세법 제정에서 이행법 체결로 변용시키게 된다. 그러나 이 이행 과정에서 행정부가 애써 만든 협상결과를 의회가 바꾸거나 비준동의 절차를 지연시키는 일들이 발생한다. 아울러 상하원 중 한 곳이 개정하면 나머지 한 곳에서 이를 개정 이전과 대조하며 수정하는 만만치 않은 일도 생기다 보니 왕왕 통상협상이 지체되게 된다. 결국 이 문제를 풀고자 1974년에 의회의 이행법 제정과정에서 행정부의 협상내용을 개정하지 않는 ‘신속협상권(Fast Track Authority)’ 도입을 골자로 하는 무역법(Trade Act of 1974)을 통과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1975년 1월 1일 처음 발효되었고 이후 1979년, 1988년, 2002년, 2015년에 4차례 연장되어 오늘에 이른다(1993년 단기 연장 1회). 이를 오늘날과 같이 ‘무역촉진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으로 개명한 것은 2002년의 일이다. 현 TPA–2015는 2018년 7월 1일 만료된다. 만일 대통령이 연장을 원하면 동년 4월 1일까지 연장요청을 해 의회를 통과하면 2021년까지 연장된다.

1979년 이래 TPA 하에서 미국은 14건의 지역무역협정, 1건의 다자무역협정(WTO 우루과이 라운드) 등을 체결하였다. 미국의 양자간 FTA 중 이를 거치지 않은 유일한 FTA가 요르단과 맺은 것으로 이는 미국의 대외무역에서 점하는 비중이 적고 논란의 소지가 적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미국이 체결한 주요 통상협정은 미-요르단 FTA를 제외하고 모두 TPA에 따른 것이다.

한편 미국은 발효된 FTA를 개정한 적이 있을까? 있다. 페루와의 무역촉진협정, 콜롬비아와의 FTA 체결 이후 미국은 노동(페루), 환경(콜롬비아) 조항 강화를 목적으로 재협상에 임해 개정의정서 형태로 의회 승인을 받은 적이 있다(입법조사처, 2017, 21p). 1994년 NAFTA 협상 발효 당시에는 이에 반발하는 의회에 승인조건으로 노동과 환경에 대한 부속협정(side agreement) 체결을 약속하여 각각 1994년 별도로 발효했으나 이는 FTA와 별개조약 형태로 간주되어 의회 승인을 받지 않았다(입법조사처, 2017: 22~23pp). 즉 기발효 FTA를 개정한 적은 있으되 경제적으로 중요도가 떨어지거나 부속협정에 한해 개정했을 뿐이다.

이처럼 TPA는 미국 행정부와 의회간 통상협정의 입법 관할권을 둘러싼 타협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TPA에서 의회와 행정부간 권력분립을 둘러싸고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TPA 찬성론자는 이 덕분에 미 행정부와 서명한 협상결과가 미 의회에서 개정될 것을 우려하는 통상협상 상대국을 안심시켜 신속한 협상이 가능했다고 반긴다. 반면 TPA 회의론자는 통상협정이 점차 복잡하고 포괄적인 것이 되어 이행법도 국내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므로 여타 입법절차와 같이 협상결과도 의회 권한으로 개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유념할 점은, TPA하에서도 의회는 여전히 헌법이 부여한 입법권한을 행사할 수단을 쥐고 있다는 점이다. TPA하에서 행정부는 의회에 협상개시 90일 전, 협정서명 90일 전에 각각 의회에 그 의향을 통보하며, 서명 180일 전에 무역구제법 변경 여부 등을 통보하고, 서명 60일전에 협정문 공개, 서명 통보후 30일 내에 의회에 보고서 제출 등의 의무를 지닌다. 서명 후에도 105일간, 이행법이 제출된 후에도 최대 90일간 각 단계별로 의회에 통보하고 의회와 긴밀히 협의해야 한다. 이를 전제로 비로소 의회는 일정기한 내에 행정부가 서명한 협정의 승인 또는 부결만 하고 협정문의 개정은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뿐 아니다. TPA 하에서 의회는 행정부에 협상 목표를 주문하는데 이는 TPA 연장 때마다 그 때 그 때의 통상환경 변화를 반영해 진화해 왔다. 예컨대 TPA-2015에서는 서비스 무역과 ‘글로벌 가치사슬(GVC)’에 대한 협상목표가 추가되었고 ‘전체 목표(overall objectives)’, ‘세부 목표(principal objectives)’, ‘상대국 역량강화 등(capacity building and other priorities)’의 세 가지를 제시하도록 하였다.

3. 한미 FTA 개정협상의 미국내 절차와 협상전략

지금까지 우리는 미국의 독특한 제도인 TPA의 역사적 기원 및 변천과정과 작동 메카니즘을 간략히 살펴봤다. 좀 복잡하고 난해한 내용이나 최소한 이 정도 이해해야 한미 FTA 개정협상의 전망을 도출하는데 필요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이제 2018년 시점으로 돌아와 우리 앞에 놓인 당면과제를 환기해 보자.

모두에서 언급한 일곱 개의 팩트 중 1번(TPA와 무관한 협상)과 2번(부분개정 전망)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데 이들을 맞추면 얼추 이런 그림이 그려진다. 미국이 이번 협상을 TPA 없이 하는 것은 우리뿐 아니라 미국에도, 한국경제연구소(KEI)의 선임 디렉터 트로이 스탠게론(Troy Stangarone)도 지적하듯 과거 가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된 것을 의미한다. 물론 발효된 FTA을 개정하는 것은 한국을 위시해 많은 나라들이 하는 것이라 새삼스러울 것이 없으나, 미국의 경우 TPA를 거치지 않고 경제적 파장이 큰 FTA 개정에 나서는 것은 1934년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그로 인해 여차하면 트럼프는 지난 1934년 이래 의회와 행정부간의 불안한 권력분점상태를 깨뜨려 분란을 자초할 수도 있다. 아니나 다를까 민주당 상원위원 론 와이든(Ron Wyden)은 블룸버그 1월6일자 에서 행정부가 의회를 제치고 일방적으로 한미 FTA 협상을 진행하고 있어 투명성을 떨어뜨린다고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는 또 2018년 1월 9일자 법률전문지 Law360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TPA를 거치지 않아 나프타 다음으로 규모가 큰 한미 FTA 개정협상이 ‘깜깜이 협상’이 되었다며 미 행정부가 절차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한미 FTA 개정협상을 TPA에 의거하지 않는 이유는 복합적으로 보인다. Law360는 위 기사에서 그 이유를 행정부가 한국에만 변화를 요구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러나 TPA를 밟아 협정문을 개정해봐야 실익이 별로 없다는 계산도 깔린 게 아닐까 유추해 본다. 또한 TPA 시한이 6월말이라 그 전에 NAFTA와 한미 FTA를 동시 추진하는 것은 버거워 후자의 속전속결을 원하되 여차하면 TPA에 구애받지 않고 장기전에 돌입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본다.

이보다 중요한 사실은, TPA 없는 본 협상의 전 과정에서 미국내 절차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곧 우리측 요구사항의 수위 및 범위와 동전의 양면을 이루기 때문에 향후 우리의 협상전략 수립과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에 기술한 미국의 국제협정 유형 네 가지를 상기해 보자면, 이 중 미국이 갈 수 있는 길은 의회-행정협정 즉 TPA를 제외한 세 개가 유력하다.

미국이 TPA 없는 한미 FTA 협상에 나서는 것은 지극히 협소한 협상권한을 갖고 유의미한 협상결과를 도출해야 하는 난제를 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미국이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나프타 재협상 수준의 요구조건을 한국에 내밀었다가는 오히려 공세가 아닌 수세에 처할 가능성도 내포한다. Nicole Bivens Collinson(2017: 9p)는 나프타와 한미 FTA의 미국내 절차가 상이함을 다음의 표에서 잘 보여준다. 즉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미 행정부가 이론적으로 개정 재량권은 발휘할 수 있으되 이렇게 되면 의회통과가 어려울 수 있기 때문에 실제 의회내 개정을 수반할 정도로 개정하기는 어렵다. 지난한 의회와의 길항작용 속에서 절차 지연이라는 고질적인 난제를 지닌 조약을 피하려고 지금의 TPA를 만들었는데 애써 이를 다시 겪을 유인이 지금의 트럼프 행정부에는 거의 없다. 바꿔 말하면 이번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미국이 의회통과가 필요할 정도로 자국 관련 협정문을 개정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NAFTA vs 한미FTA 개정 절차
출처: Nicole Bivens Collinson(2017), Trade Policy: NAFTA Renegotiation & FTA Developments, Nov. 9, 2017, Sandler, Travis & Rosenberg, P.A.(※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출처: Nicole Bivens Collinson(2017), Trade Policy: NAFTA Renegotiation & FTA Developments, Nov. 9, 2017, Sandler, Travis & Rosenberg, P.A.(※ 그래픽을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미 행정부가 의회를 거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1974년 의회가 위임한 관세장벽 관련 협상권한 정도 즉 미국 국내법 개정이 불필요한 한도에서의 양허일정이나 원산지규정의 ‘부분개정이나 수정(narrow change)’으로, 이런 맥락에서 미국이 이번 협상을 ‘수정 및 개정’ 협상으로 자리매김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 경우 행정협정 혹은 조약부속행정협정을 체결하는 것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팩트 3번(미국측 관심사)을 앞 두 가지 팩트와 연결해 보면, 미국이 자국 자동차산업의 대한 무역적자를 줄이기 위해 ① 협정문 개정(관련 양허일정 조정과 원산지규정 개정)을 요구하나, 이것보다는 좀 더 효과가 있을 듯한 ② 협정의 이행 강화 ③ 환경규제 등 비관세장벽 제거 ④ 무역적자 해소에 기여하는 +α(무기 강매, 에너지 판매 등)를 더 집요하게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미국이 협정문 개정 이외의 일회적·간헐적 수단을 동원해 무역적자 해소에 나선다면 이는 이후 아쉬울 때마다 재협상이 고질적으로 반복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된다. 그로 인해 협정의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을 떨어뜨려 가뜩이나 트럼프의 보호무역 횡포에 무기력한 한미 FTA의 국제조약으로서의 안정성은 더욱 저하될까 우려된다. 이러한 접근방식은 트럼프가 ‘미국우선주의(America first)’보다 ‘트럼프우선주의(Trump first)’에 기반해 자신의 이해충족에만 급급하다고 볼 경우 단기적으로는 효과를 발휘할지 모르나 위에서 언급한 위험성이 반대급부로 따를 수 있어 유념해야 한다.

4. 한미 FTA 개정협상의 국내 절차와 협상전략

한국의 경우 미국과 달리 이론적으로는 개정협상 이후 국내법 개정이 가능하다. 웬디 커틀러(Wendy Cutler) 전 USTR 부대표는 1월 5일자 뉴욕타임즈에서 TPA 없는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미국 자신은 협정문을 개정하지 않으면서 한국측에만 개정을 밀어붙일 수 있다며 트럼프 행정부를 비난했다. 이는 우리에겐 최악의 시나리오인데, 과연 미 행정부는 국내법 개정이 불필요한 부분개정만 하고 우리는 대폭적인 개정을 하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나, 현실적으로 가능하더라도 이런 부당하고 불공정한 개정은 우리 국회와 국민이 극구 막아야 한다.

4번(우리측 관심사)과 5번(우리측 전략)은 서로 밀접한 관계이나 1번, 2번과는 대척점에 있고 이는 매우 중요한 측면이다. 우리측 협상목표인 무역구제나 ISDS 개정이 미국측의 국내법 개정 없이 부분개정으로 어디까지 가능할지, TPA 부재 상태에서 통상교섭본부장이 말한 대로 전면개정이 가능할지 이 또한 의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협상이 6번(협상 난항 전망)이라는 팩트는 기술적 요인이 아니라 구조적 요인에 기인함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측이 아무리 개정수요를 발굴·제시해도 현 상황에서 미국의 협정문 개정 가능 범위는 제한적이다. 우리측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해 미측의 우리에 대한 개정범위의 축소·완화를 유도하겠다는 것인데 모든 개정이 가능한 우리는 애초부터 불리한 고지에 서있는 것은 아닌가.

만일 협정문의 실질적 변경 없이 세부사항에 대한 기술적인 수정 혹은 조정만 이루어질 경우에는 우리도 헌법상의 조약이 아닌 고시류 조약으로 분류하여 통상조약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 것인지도 불명확하다(입법조사처, 2017, 20p).

7번<나프타 재협상 난항중>은 한미 FTA의 최종 전망도 어둡게 한다. 미국이 TPA 만료기한(6월말) 90일전까지 NAFTA 재협상에 서명하지 못하면 이후 성사 가능성은 더 희박해 진다. 1월 10일자 로이터통신은 캐나다 당국이 미 행정부가 나프타 폐기를 표명할 계획인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 경우 트럼프는 한미 FTA를 희생양 삼아 이보다 훨씬 중요한 NAFTA 구하기에 나서거나 정반대로 전자라도 건지려고 지금의 요구수준을 낮출 수 있다. 문제는 이 조각들이 우리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음에도 우리의 통제 밖 변수들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7개의 팩트 조각만 맞춰보면 최종 협상결과의 얼개가 대략적이나마 보인다. 한미 FTA 개정협상에서 이변이 없는 한 미국은 속전속결로 부분개정만 원할 것이다. 그렇다면 관건은 미국이 국내법을 개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우리가 미국측의 ISDS나 무역구제 분야, 농축산업계가 갈망하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한 세이프가드 발동기준 현실화 등에서 국제법적 구속력을 지닌 불가역적인 변화를 얻을 수 있을까 이다. 협상단이 방점을 찍은 것은 미국의 바로 그 한계를 활용하여 미국의 우리에 대한 개정요구를 부분개정 범위내로 붙들어 두겠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이는 우리측 요구도 국제법적인 구속력을 지닌 명시적 개정에 이르지 못할 가능성을 내포한다. 최악의 경우 미국측 관련 조항은 부분개정에 그치고 우리와 관련된 부분은 대대적인 개정을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처럼 의문이 한 둘이 아니나 정부는 이에 대한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국내 언론도 대부분 이 점에 대해 깊이 파고들지 않는 듯하다. 그 이유가 협상전략에 해당되기 때문이기도 하나 적어도 미국의 협상 이후 절차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야 중요한 이해당사자가 과도한 기대를 하지 않을 것이며 국민의 알 권리도 충족시켜야 한다. 자칫 이 문제가 지난 노무현 정부 때와 같은 사단으로 비화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이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여야 할 입법부가 어찌된 일인지 잠잠하다. 지난 12월 15일 산업부가 개정협상을 앞두고 이를 국회에 보고할 당시 한미 FTA 개정협상이 TPA를 거치지 않았다는 매우 중대한 변화의 맥락에 대해 국회는 집요하게 묻지 않았다. 정부는 우리의 통상절차법이 규정한 대국회 보고 및 협의 책임을 성실히 수행해야 하고 국회는 행정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라는 본연의 역할을 방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통상조약법에 의거한 국회비준 과정에서 미국의 무리한 요구가 우리의 권리와 의무를 중대하게 침해한다고 판단되면 단호히 막아야 한다. 미국이 자국 의회를 건너뛰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국회가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막아내는 방패막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한다면 절차를 중시한다는 명분을 갖고 우리의 실익을 챙길 수 있다. 그게 아니라도, 미국에서처럼 헌법이 보장하는 입법권을 지키며 치열하게 자기 책무를 수행하는 입법부 본연의 모습을 기대한다.

캐나다 정부는 1월 10일 미국의 이러한 반덤핑 상계관세 부과 등의 무역제재조치 남용에 대해 WTO에 미국을 제소해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측이 온갖 요구조건을 쏟아내는 형국에 우리도 이처럼 공세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한미 FTA가 서로에게 양허의 균형을 가져 왔다는 미국만 좋은 일 시키는 말도 안되는 주장은, 더욱이 새 정부가 들어선 마당에 과감히 접어야 한다. 그것이 2차 협상 테이블에 앉는 우리 협상팀의 일성이어야 한다.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투자자-국가분쟁중재(Investor-State Dispute Settlement): 국제무역조약에서 외국 투자자가 투자유치국의 법령이나 정책 등으로 인해 이익을 침해당했을 때 투자자에게 국제법에 따라 해당국을 상대로 세계은행 산하 국제 투자 분쟁 해결 센터(International Centre for Settlement of Investment Disputes)나 유엔국제무역법위원회(United Nations Commission on International Trade Law) 등의 국제중재기관에 중재를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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