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8일 한-미 통상당국은 말 많고 탈 많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의 원칙적 합의를 선언했다. 하지만 위대한 협상결과라던 트럼프는 다음날 북핵문제 타결 때까지 서명을 보류하겠다고 돌변했다.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4월2일 사실상 협상종료를 시사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셈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협상결과에 대한 평가는 주로 각론의 손익계산에 맞춰져 있다. 행여 디테일에 숨어있을 악마를 찾아내려면 미시적 접근이 필요하나 협상결과 전체를 조망하는 거시적 접근도 중요하다. 한-미 에프티에이의 어제를 반추해 오늘을 살피고 내일을 대비하는 맥락에서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한 이유다.
어제_미국과의 CHORUS를 꿈꾸다.
2003년 공식화된 우리 정부의 ‘에프티에이 추진 로드맵’은 수출시장 선점효과 최대화를 위해 거대·선진경제권과의 에프티에이를 중시했다. 그 화룡점정이 한-미 에프티에이 발효다. 정부는 당시 이를 동음이어인 합창(chorus)에 빗대 ‘KORUS(KORea-US FTA)’라 칭하며 양국간 조화와 협력의 토대 구축을 성과로 내세웠다. 추진 의의로 세계 최대시장의 안정적 확보(관세 등 거래비용의 감소, 통상마찰 완화), 생산·고용·교역 및 외국인직접투자 증대, 경제사회 시스템 선진화의 계기 등을 꼽았다.
오늘_미국을 위한 CHORUS가 되다
이제는 KORUS의 추진 의의 가운데 첫 손에 꼽은 세계 최대시장의 안정적 확보는 거론하기가 무색해졌다. KORUS 효과라고 보기도 힘든 대미 무역흑자를 빌미로 트럼프는 이를 끔찍한 재앙으로 치부하고, 우리를 재협상에 끌어들였다. 이 과정에서 KORUS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골치 아픈 문제가 돼 버렸다. 그렇다면 협상 테이블에 끌려나온 우리는 오늘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협상의 최대 목표였어야 했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위해 필수적인 미국법 개정에 필요한 무역촉진권한(TPA)도 없이 협상장에 나왔다. 이 때문에 협상팀에 트럼프의 무역구제 남발과 억지춘향식 재협상 요구에 국제법적 구속력을 지닌 단단한 잠금장치를 이번 협상에서 채웠는지 물어야 한다.
혹자는 미국이라는 ‘슈퍼 파워’ 앞에서 비현실적인 얘기 말라고 일축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질문을 던진다. 거대 선진경제의 시장 선점이라는 목표에 도달하기도 전에 거대 선진경제를 상대하면서 우리 협상력의 비대칭성을 드러냈다. 따라서 협상팀이 슈퍼 파워와의 협상이 안고 있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나마 평평하게 만들기 위해 어떤 전략을 구사했는지 물어야 한다. 지금도 협상타결 후 트럼프의 폭탄선언으로 KORUS의 예측 가능성과 제도적 안정성은 수직으로 떨어졌고, 향후에도 불안요소가 될 것이다.
코러스(Chorus)는 합창뿐 아니라 메인 보컬 뒤에서 허밍을 넣는 보컬도 뜻한다. 이번 결과만 보면 미국과 나란히 합창한 게 아니라 휘황찬란한 조명 아래 현란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미국 뒤에서 그저 허밍만 해준 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내일_상생의 KORUS를 위하여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북한의 비핵화를 목표로 남북은 물론 북-미 정상회담이 개최될 예정이고, 중국은 발빠른 북-중 정상회담으로 응수했다. 급기야 중국은 사드보복 철회로 한국 끌어안기에 나섰다. 이런 와중에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를 가장한 ‘트럼프 우선주의’로 무차별 무역전쟁을 일으키며 국제무대에서 공공의 적이 되었다.
정부는 ‘트럼프 우선주의’에 맞서 통상교섭본부에만 의존할 게 아니라 산업·통상·금융·외교안보를 아우르는 유관 부처간 체계적·유기적인 대응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상대는 축구며 야구며 가릴 것 없이 십자포화를 쏘는데 축구 선수에게 야구 얘기 말라 할 계제가 아니다. 국회는 당장 ‘통상조약의 체결절차 및 이행에 관한 법률(통상절차법)’에 근거해 협상결과를 보고받고 위 질문을 따져 물어 냉정한 손익계산에 나서야 한다. 국내 보완대책도 강구해야 한다. 대외적으로는 실효성 있는 국제공조 가능성을 면밀히 타진해야 할 것이다. 우리도 아직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김양희 대구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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