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새벽 서울 최대 인력시장인 남구로역 삼거리 일대에 모인 건설 일용직 노동자들이 일감을 구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방준호 기자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에서 일해온 심승주(가명·26)씨는 반년 가까이 구직자로 살고 있다. 전자기기에 들어가는 인쇄회로기판(PCB) 등을 만드는 공장에서 주로 파견직으로, 짧게는 석달에서 길게는 6개월씩 일해왔지만 올해 들어선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지난 몇달간 면접에서 6차례나 떨어졌다는 심씨는 “당장 생계비를 벌어야 하는 상황이어서 ‘쉽게 구해 빨리 일을 시작할 수 있는’ 파견직을 찾고 있는데, 올해는 일감 자체가 현저히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사정은 심씨만 겪고 있는 것이 아니다. 안산 지역의 한 파견업체 대표는 “올해 공단 전체에서 일자리 감소가 극심해진 상황이라 우리 업체에도 등록만 해놓고 대기하고 있는 인력이 상당하다”며 “최근 경기가 좋지 않아 3차, 4차 협력업체 가운데 폐업하는 곳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고 말했다. 쥐꼬리 같은 월급에서 돈을 더 떼지 않으려고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심씨와 같은 이들에게 실직은 그야말로 ‘무소득 상태’를 의미한다. 그는 “일러스트를 배워 좀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아 취업을 해보고 싶지만, 공부를 하고 준비하기에는 돈도 시간도 부족해서 또 급한 대로 파견직 일자리만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11일 통계청이 발표한 ‘6월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달 취업자 수는 한해 전보다 10만6천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2월 이후 5개월 연속 취업자 수가 10만명대 안팎으로 저조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10년 2월 이후 처음이다. 올해 1월까지만 해도 취업자 증가폭은 대체로 20만명대에서 40만명대를 유지했다.
이런 고용한파의 직격탄은 심씨와 같은 불안정 일자리에 종사하는 이들이 고스란히 맞고 있다. 경기가 나빠지면 가장 먼저 일자리에 타격을 받는 임시·일용직 취업자 감소가 최근 매우 가파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2~6월에 임시직과 일용직 취업자는 각각 월평균 12만1천명과 8만7천명 감소했다. 통계청은 “경기에 따른 변동성이 가장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 고용 부진이 두드러진다. 제조업 취업자 수는 지난달에도 한해 전에 견줘 12만6천명이나 감소했다. 조선·자동차·가전 등 제조업에서 구조조정과 해외생산비중 확대로 고용 위축이 지속된 영향이다. 반도체나 석유화학 등 일부 산업이 수출을 중심으로 호조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들 산업은 통상 국내 고용유발 효과가 크지 않은 산업으로 분류된다.
제조업 고용 부진도 임시직이나 영세 하청업체 직원 등이 타격을 먼저 받고 있다. <한겨레>가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2~5월 제조업 임시직은 한해 전보다 월평균 7만8천명 감소했다. 지난해만 해도 제조업 임시직 감소폭은 월평균 4만8천명 정도였다. 경기 부진으로 대기업이 생산물량을 줄이면 하청업체 등에서 해고가 쉬운 임시·일용직을 먼저 줄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빈현준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제조업 취업자 수 감소를 사업체 규모별로 보면 300인 미만, 특히 5인 미만 영세업체에서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특히 보통은 제조업 경기가 나빠지면 밀려난 노동자들이 자영업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이런 이동 경로 역시 가로막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달 직원을 두지 않은 영세 자영업자는 1년 전보다 9만명이나 줄었고 이런 추세는 상당 기간 지속되고 있는 중이다. 빈현준 과장은 “과거 조선업 구조조정 시기(2015~2016년)에는 제조업 취업자가 줄었을 때 자영업이 상대적으로 늘어 전체 취업자 수 증가폭을 유지하는 효과가 있었는데 현재는 전반적인 경기 둔화로 자영업도 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건설업을 중심으로 한 일용직 감소도 주목할 대목이다. 지난달 전체 일용직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1만7천명이 줄었는데, 건설업의 영향이 크다. 건설업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건설경기 하강 국면이 이어지면서, 제조업과 함께 고용 부진을 겪고 있는 대표적 업종이다. 지난 5월 강수 영향으로 4천명에 그쳤던 건설업 취업자 증가폭은 비의 영향이 없었던 6월에도 1만명에 그쳤다. 황인웅 기획재정부 정책기획과장은 “사회간접자본(SOC) 예산 감소로 인한 토목건설 부진에 더해 지난해 상반기까지 과열됐던 주택 건축 시장이 조정에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건설업 일용직으로 좁혀서 보면 지난 4월 한해 전보다 1만2천명 줄어들면서 감소세로 돌아선 것으로 분석됐다. 이어 5월에는 4만8천명으로 감소폭이 더 커졌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월평균 9만명 이상씩 건설 일용직이 증가했던 점을 고려하면, 현장에서 체감하는 일자리 감소는 더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6월에도 건설 일용직 감소세는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통계청 쪽 설명이다.
<한겨레> 경제활동인구조사 원자료 분석. (※누르면 크게 보입니다.)
지난 5일 새벽 서울 남구로역에 밀집한 인력사무소 여러 곳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일할 사람을 구하는 게 어려웠던 지난해와 달리 요즘은 일자리 자체가 귀해진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25년째 인력소개업을 해온 김환일(66)씨는 “지난해 이맘때에 견주면 일감이 절반 이상 줄어든 것 같다”며 “특히 나이가 많거나 기술이 없거나 한국말이 잘 통하지 않는 외국인일 경우 일감을 구하지 못해 서성대는 사람이 매일 수백명씩 나온다”고 말했다. 일자리를 찾아 나온 김동주(가명·45)씨는 “보통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때는 겨울인데 올해 겨울은 더 힘들 것 같아서 벌써부터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공사 규모가 큰 건설현장이 아니면 4대 보험 가입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실업급여 수급 조건을 채우지 못해 일감이 끊기면 그냥 손가락을 빨면서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아침 6시30분께 인력 수송을 위한 승합차들이 모두 출발한 뒤에도 일감을 못 구한 100여명은 한참 동안 남구로역 일대를 서성이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자전거를 챙기던 권정삼(가명·71)씨는 “나오기는 매일 나오는데 한달에 열흘이나 일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자식도 변변한 일자리가 없어 내가 돈을 벌어야 하는데 나이가 많아 퇴짜맞기 일쑤”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부는 전반적으로 고용이 부진한 데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임시·일용직 감소는 상용직 중심으로 고용시장이 재편되는 것이어서 부정적으로만 보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임시·일용직이 곧바로 상용직으로 이동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성재민 한국노동연구원 동향분석실장은 “일부는 상용직으로 흡수됐을 가능성도 있지만, 실업 상태로 전락하거나 제조업의 경우 파견직에서 사내 하도급으로 지위를 옮겨 하청업체 상용직이 된 경우도 상당해 보인다”고 말했다.
임시·일용직의 상당수는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고용안전망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고용악화 속에 가장 먼저 노동시장을 이탈하고 있는 임시·일용직, 영세 자영업자에 대한 특별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으며 실직 기간을 버틸 수 있게 해줄 제도들을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방준호 최하얀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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