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민정수석실 감찰반이 지난 2월 중순부터 4개월 동안 금융감독원에 대한 감찰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감찰의 적절성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입구. 연합뉴스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금융감독원 감찰 내용은 물론 감찰 실시 여부조차 밝히지 않고 있어 감찰에 착수한 배경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그러나 감찰 배경이 무엇이었든 간에 4개월에 걸친 이례적인 감찰은 금감원의 은행권에 대한 장악력을 크게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금감원과 윤석헌 금감원장의 권위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 은행들이 노골적으로 ‘반기’를 드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 대구은행은 금감원 분쟁조정위원회(분조위)가 지난해 12월 키코(KIKO) 피해 기업 4곳에 255억원을 배상하라는 조정 결정을 내린 데 대해 수용 여부를 다섯차례나 연기하며 눈치를 보다가 지난 5일 수용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신한은행이 이날 아침 이사회를 열어 불수용을 결정했고, 하나·대구은행이 그 뒤를 따랐다. 이에 따라 배상 권고를 받은 6개 은행 중 우리은행을 제외한 모든 은행이 분조위 조정을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 분조위 조정은 법적인 강제력이 없어 은행이 불수용하면 그대로 끝난다. 금감원 내부에선 금감원의 힘이 빠졌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특히 10년 넘게 끌어온 키코 분쟁 해결은 여당의 공약사항이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7년 9월 키코 사태를 ‘금융권 3대 적폐’ 중 하나로 규정하고 재조사 추진 뜻을 밝힌 바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언론들에서 키코 재조사를 윤 원장의 소신에 따른 것으로만 규정하는데 사실은 여당에서 추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 금융그룹 경영진의 금감원 제재에 대한 법적 소송도 이어지고 있다.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당시 우리은행장)이 올해 3월 디엘에프(DLF) 제재에 반발하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데 이어,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부회장(당시 하나은행장)도 이달 초 행정소송에 나섰다.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 제재를 받은 은행장들은 사퇴하는 게 그동안 금융권의 관행이었다. 소송을 제기하더라도 일단 사퇴를 한 뒤에 명예회복을 위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현직에 있으면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는 없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민정수석실의 금감원 감찰 사실이 알려지면서 확대재생산됐다는 점이다. 은행권은 정부 규제가 강하다는 특성상 정권의 ‘눈치’를 많이 보는 곳인데, 정권 핵심부에서 감찰에 들어가니 너도나도 ‘반기’를 드는 양상이 나타난 것으로 분석된다.
윤석헌 금감원장은 학자 출신으로 관료가 아닌 사실상 첫 민간 출신 금감원장이다. 2018년 5월 취임 이후 종합검사를 부활한 데 이어 키코 배상 권고, 금융소비자보호처 확대 등 소비자 보호 강화를 기치로 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지나치게 ‘강성’이라는 불만도 나온다.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청와대가 금융 적폐를 척결하라며 개혁적 인사를 수장으로 보내놓고 뒤에서 흔든 이상한 모양새가 됐다”고 말했다.
윤 원장 유임 결정이 나오긴 했지만, 금감원의 검사 라인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됐다는 게 내부 관계자들의 얘기다. 한 관계자는 “은행의 주주와 이사회가 금융그룹 회장을 견제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금감원마저 무력화시키면 민간의 금융권력을 견제할 길은 없어진다”고 말했다.
직무범위를 벗어난 감찰이라는 논란에 대해, 청와대 내부에선 ‘적법한 감찰인데 논란이 되는 것이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적법한 차원에서 이뤄진 감찰로 알고 있다. 윤 원장을 겨냥한 감찰이라는 주장에 대해 동의할 수 없다”며 “금융권에서 이 사안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이들이 애꿎은 청와대를 걸고 넘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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