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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불평등의 대유행, 치료제는 포용적 자본주의

등록 2021-01-13 04:59수정 2021-01-13 07:30

2021, 11개의 질문 ⑦ 팬데믹 이후의 경제
권범철 kartoon@hani.co.kr
권범철 kartoon@hani.co.kr

새해를 맞은 세계경제에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다. 먼저 백신이 보급되어 팬데믹(감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극복하고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이 높다. 백신 접종으로 집단면역의 형성과 함께 경제활동이 재개되면 억눌려 있던 수요가 크게 늘어나 V자 형태의 급속한 경제회복이 나타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이다. 그러나 비관론도 팽배해 있다.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세가 심각하고 백신의 보급이 더딜 수 있으며 깊은 불황에서 탈출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불황으로 정부부채뿐 아니라 기업부채와 가계부채도 크게 늘어났고 이자 지급도 어려운 좀비기업이 증가한 현실이 회복의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게다가 백신과 경제회복의 온기가 개발도상국까지 도달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며칠 전 발표된 세계은행의 경제전망은 2020년 세계경제의 성장률이 –4.3%, 2021년은 4%가 될 것이라 예측한다. 2021년에는 경제가 회복되겠지만 세계경제의 소득수준은 올해 말에도 2019년 말보다 낮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선진국 경제의 회복은 이보다 훨씬 더 느리다. 결국 성장의 궤적이 기존의 추세로 빠르게 회복되기는 어려우며 경제회복은 좌우가 뒤집어진 제곱근의 형태로 나타날 것이다. 그래도 한국 경제는 성공적인 방역으로 작년 경제성장률이 선진국 중에서 가장 작게 하락했고 제조업과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 덕분에 회복세도 견조하다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돌이켜보면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이 촉발한 경제위기는 대공황에 버금가는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러나 각국은 신속하게 돈을 풀고 대규모로 재정을 지출하여 위기를 버텨냈다. 선진국의 중앙은행은 무제한적 양적완화를 통해 장기 금리를 낮춰 재정정책을 지지했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엄청난 유동성을 공급하며 금융시장을 안정시켰다. 주목해야 할 것은 재정확장이 대세가 되었다는 점이다. 전염병에 대응하는 경제 봉쇄로 사라진 소득과 일자리를 보전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자 국가의 역할이었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2020년 선진국 정부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14.4%의 재정적자를 기록했고 정부부채도 지디피 대비 평균 약 20%포인트나 높아졌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경제학자들과 국제기구들은 적극적이고 지속적인 재정확장에 찬성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불어나는 나랏빚을 걱정하여 도입된 긴축정책이 선진국의 경제회복을 가로막았다. 지난 위기에서 얻은 교훈을 기초로 이번에는 재정정책과 통화정책의 양 날개가 경제의 붕괴를 막았다.

바야흐로 긴축의 시대가 끝나고 재정확장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거시경제학도 크게 변했다. 지난 수십년 동안 통화정책이 경기안정의 주된 수단이었지만 이제 재정정책의 중요성이 조명받고 있다. 제로금리 아래서는 통화정책보다 필요한 곳에 재정을 지출하는 재정정책이 더 효과적이며, 국채금리가 경제성장률보다 낮으니 국가채무비율 상승에 대한 우려도 작아졌다. 또한 불황이 경제에 남긴 깊은 상처가 잠재국내총생산을 하락시키는 ‘이력효과’가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불황은 실업을 장기화하고 기업의 신기술 투자를 위축시켜 생산성 상승에도 악영향을 미치므로 장기적으로 경제성장을 저해한다. 따라서 불황을 막기 위한 재정확장이 성장을 촉진하고 나아가 재정에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물론 뿌리 깊은 재정건전성에 대한 집착을 극복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한국은 2020년 재정적자가 지디피의 3.2%를 기록하여 세계적으로 낮았고 국가채무비율도 선진국들 중 가장 낮은 수준인데도 나랏빚 증가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큰 현실이다.

한편 언제나 그렇듯 재난과 위기는 평등하지 않아서 팬데믹 경제위기는 불평등과 격차를 심화시켰다. 경제 봉쇄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재택근무가 불가능한 서비스업의 저소득층 노동자들과 자영업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고소득층은 별다른 타격을 받지 않았고 기술기업들은 호황을 맞았으며, 유동성 증가를 배경으로 부동산과 주식 시장은 연일 폭등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경제회복이 부자와 빈자, 실물과 금융, 그리고 기업들 사이의 격차가 확대되는 K자 모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현실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이미 작년 10월 고임금 일자리의 고용률은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었지만 저임금 일자리의 고용률은 팬데믹 이전에 비해 19%나 낮았다. 한국개발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작년 9월 현재 코로나19의 재확산이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83만개의 일자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하위계층 가구의 시장소득은 전년보다 크게 줄어들었다. 그나마 작년 2분기에는 정부의 이전지출 확대로 상·하위 가구의 소득격차가 전년보다 줄기도 했지만 3분기에는 소득분배가 악화되었다. 2018년 이후 소득 불평등이 개선되던 추세도 역전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격차의 확대와 불균등한 회복이 앞으로 지속가능한 성장을 가로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도 재난지원금과 고용안정지원금을 지급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규모와 내용에서 한계가 컸다. 당장 생존의 위협에 직면한 이들의 소득을 보전하고 불평등 악화를 막기 위해 정부는 곳간을 더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이렇게 경제에 깊은 불황과 불평등의 심화라는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것이 단지 코로나 이후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을 필두로 선진국들에서는 수십년 동안 경제성장이 정체되었고 금리와 인플레가 하락했다. 또한 노동자 세력의 약화와 정치의 보수화를 배경으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이 높아져 왔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고도 이러한 흐름은 크게 변하지 않았고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했다. 저성장과 불평등의 악순환은 외환위기 이후의 한국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높은 기대에는 미흡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이번 위기를 진정으로 불황과 불평등을 극복하고 모두가 함께 번영하는 계기로 삼는 노력이다. 이제 서구의 경제언론들도 불평등과 포퓰리즘을 낳은 경제구조를 반성하고 팬데믹을 넘어 포용적인 자본주의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자본주의의 새판을 짜는 리셋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는 이를 위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투자를 포함한 적극적인 공공투자, 기업과 부자에 대한 증세와 소득 재분배 확대 그리고 노조의 강화와 임금 인상 등을 제시한다. 담대한 계획은 아니지만 올바른 방향이다. 한국 정부도 위기로부터 회복할 때까지 재정확장을 지속하고 사회서비스 투자를 늘리며,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고 증세도 추진해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취약한 노동자들의 협상력을 강화하여 자본과 노동의 힘의 균형을 회복하고 지대와 기득권을 깨야 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열기 위한 한국판 뉴딜의 핵심도 이러한 변화가 되어야 할 것이다.

윈스턴 처칠은 ‘위기를 낭비하지 말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위기도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그냥 흘려보내지 않으려면 고삐 풀린 자본주의를 민주주의의 힘으로 제어하는 지혜로운 길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것은 물론 정치를 바꾸는 시민들의 행동에 달려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은 수많은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돌아갔으며 전염병을 이기기 위해 공동체를 생각하는 연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었다. 이 소중한 교훈이 우리가 이번 위기를 낭비하지 않고 더 나은 경제를 만들어내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이강국 리쓰메이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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