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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일반

근로소득 700만명 면세…공제 줄이면 자연스레 ‘보편증세’

등록 2021-06-08 04:59수정 2021-06-08 07:21

[한겨레33살 프로젝트] 자산불평등, 조세정의가 답이다 ③
‘최고세율’ 콕 찍어 올렸지만
조세부담률 20% OECD국 하위권
‘핀셋증세’ 넘어 ‘보편증세’로
1917만명 중 37%나 과세미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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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불평등 해소를 외치며 임기 초부터 최저임금 인상,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기초연금 확대 등 각종 정책적 노력을 펼쳤다. 하지만 임기 중 부동산 가격이 치솟으면서 이런 노력은 사실상 무력화됐다. 현 정부 첫 청와대 경제수석을 맡은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신임 원장은 최근 한 심포지엄에서 “소득분배 문제를 근로소득으로 너무 협소하게 잡아 자산 격차가 빠졌는데, 초기 문제 설정에 아쉬움이 많다”며 “지속적으로 악화되는 소득분배를 정책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 사실 자신은 없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날로 확대되는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선 정부의 조세수입과 복지예산 지출을 통한 적극적 재분배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평등 해소를 정책 순위 맨 앞에 둔 문재인 정부에서마저 ‘증세 주장’은 설 자리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는 참여정부 당시 ‘종합부동산세 폭탄론’으로 정권을 잃었다는 트라우마가 강하기도 했고, 노동시장을 개혁해 1차 소득분배만 개선해도 양극화를 완화할 수 있다고 봤던 것 같다. 다양한 정책을 폈지만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데다, 부동산 격차까지 심각해지면서 상황이 급격히 나빠졌다.” 문재인 정부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을 역임한 정세은 충남대 교수(경제학)는 현 정부 4년을 이렇게 요약했다.

■ ‘보편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다

2019년 기준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1%. 전년보다 0.1%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2014년 17.1%이던 조세부담률이 5년 새 3%포인트 늘면서 최하위권을 벗어나긴 했으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인 24.9%(2018년 기준)를 밑돈다. 덴마크(46.3%), 스웨덴(33.7%), 핀란드(30.4%) 등 서구의 대표적인 복지국가와 견주면 아직 갈 길이 멀다. 2015년 4월 유승민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고 일갈했을 때 ‘명연설’이라 화답했던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은 정작 정권을 잡은 뒤엔 실질적 증세에 나서지 않았다.

물론 증세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취임 뒤 첫 세제 개편에서 소득세 최고세율을 40%에서 42%로, 지난해엔 다시 45%로 올렸다. 법인세도 2018년부터 과표 3천억원 초과 구간을 신설하며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렸다. 소수에 적용되는 최고세율만 콕 찍어 올리는 ‘핀셋 증세’에 나선 것이다. 이에 대해 김학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애초 자산 과세를 강화하겠다는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며 “오히려 법 개정으로 이미 시행하기로 한 대주주(한 종목당 3억원 이상) 기준마저도 물러나면서 금융자산에 대한 과세 강화는 하지 못했고, 오히려 ‘떼를 쓰면 된다’는 느낌마저 줬다”고 평가했다.

무엇보다 불평등 완화를 위한 복지 지출 수요를 ‘핀셋 증세’만으로는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12.2%(2019년 기준)에 불과한 한국의 공공사회복지지출을 오이시디 평균(20%)까지 끌어올리려면 ‘보편증세’가 필수적 과제라는 얘기다. 문제는 최고세율을 적용하는 기준선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고세율을 적용받는 소득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최고세율 착시현상’을 부르기 쉽다. 우리나라에서 소득세 최고세율 45%를 적용받으려면 과세표준 10억원 이상으로, 여기에 각종 공제까지 고려하면 실제론 이보다 훨씬 많은 소득을 거둬야 한다. 과세표준만으로도 상시노동자 평균 소득의 22배에 이른다. 이에 반해 스웨덴의 소득세 최고세율(52%) 과표 기준은 연 소득 50만9300크로나(약 6846만원)로, 스웨덴 민간부문 노동자 평균소득의 1.2배를 조금 넘는다. 설령 우리나라의 명목 소득세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 한들 실제로 거둬들이는 세입은 적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최고세율만 올리는 핀셋 증세는 정치적인 효과를 거둘 수는 있을지언정 실제 세입은 적다”며 “실제 이 세율을 적용받는 과세 대상이 늘어나도록 과세표준을 조정해서 보편증세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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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증세 여력이 없다? 증세는 의지다

적극적인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기 위한 재원 마련 방안은 여러가지다. 중복된 예산이나 낭비되는 예산을 줄이는 지출 구조조정이 첫손에 꼽힌다. 정세은 교수는 “부처 칸막이 탓에 낭비되고 있는 중복 예산을 줄이는 것도 증세만큼이나 중요하다”며 “아예 정부 차원의 특위를 구성해 중복·낭비 예산을 체계적이고 과감하게 줄이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공제·세액공제·세액감면 등 각종 ‘조세 지출’을 축소하는 것도 실질적인 증세 효과를 거두는 방법이다. 2020년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9년 기준 연말정산을 신고한 노동자 1917만명 가운데 과세미달자는 36.8%에 이른다. 2014년 면세자 비중이 48.1%까지 치솟은 뒤로 감소세를 보이긴 하지만, 여전히 주요국과 견주면 상당히 높다. 역진적이거나 비효율적인 조세 지출이 많은 탓이다.

‘보편증세’를 꾀할 대표적 세목으로 부가가치세를 꼽는 목소리도 많다. 한국의 부가가치세율(10%)은 오이시디 34개국 가운데 32위로 상당히 낮은 편이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가세 인상은 가성비가 좋고 조세 저항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유럽 등에 비해 세율이 낮아 인상 여력도 충분하다”며 “전통적으로 부가세 인상은 역진적이라는 비판이 많지만, 영세율을 적용하는 품목을 늘리는 등 기술적인 해소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부가세율은 올리되 역진성 해소 장치를 강화하자는 얘기다. 실제로 영국·독일·프랑스 등 유럽의 경우 품목·지역·과세 대상 매출액 등에 따라 세율을 달리 적용해 역진성을 해소하고 있다.

증세에 대한 국민적 동의를 얻어내려면 더 구체적인 조세개혁안과 복지 확대 계획이 필요하다. ‘무엇을 위해’ 증세가 필요하고, 얼마만큼 걷어, 누구에게 혜택이 가는지 명쾌하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의료·간병·복지·연금 등 사회보장비에 활용하는 조건으로 소비세 인상을 끌어낸 일본이 대표적 사례다.

전문가들은 더 늦기 전에 증세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학수 연구위원은 “증세는 올해 법을 개정해서 다음해 소득에 대해 그다음해에 과세를 하기 때문에 2년 이상이 걸린다”며 “증세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어떤 부분에서 어떤 방식으로 할지 논의를 시작해, 새 정부 인수위에서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방향을 정해 법 개정 작업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고령화·저출산은 물론 불평등 완화를 위한 재정 여력 확보를 위해 증세가 필요하지만, 정치인들의 의지가 없어 보이고 대선도 앞둬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류덕현 중앙대 교수(경제학)는 “증세는 부담이 큰 이슈인 만큼 각 정치세력이 명운을 걸고 제안해야 할 내용”이라며 “근본적인 조세개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설득력 있는 증세안을 내놔야 한다”고 제안했다. <끝>

이지혜 이정훈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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