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발행시장에서 ‘큰 손’인 은행·보험·기금·증권·자산운용사의 채권 매입 수요가 말라붙고 있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달러 강세를 활용한 외국인과 높은 금리 수익을 좇는 개인 투자자들이 채권 유통시장에 몰려들면서 자금시장 경색 해소에 도움이 될지 주목된다. 최근 외국인과 개인의 채권 투자는 국공채는 물론 은행채 쪽까지 확대되고 있다.
올해 국내 채권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원화채권 잔고는 지난 20일 기준으로 연초 대비 14조4640억원 증가했다. 늘어난 잔고 중 외국인이 국내 채권시장에서 주로 담아온 국고채와 통화안정채권이 차지하는 비율은 57%(8조2600억원)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잔고 증가분에서 국고채와 통안채가 차지했던 비중(82%)에 견줘 크게 줄었다. 반면 은행채가 차지한 비중은 33%(4조7410억원)로 집계돼 전년동기(17%)보다 높아졌다. 또 지난해에는 거의 투자가 이뤄지지 않았던 회사채 및 여신전문금융채(카드·캐피털 등)의 투자 비중도 올해는 3%(4580억원) 수준으로 집계됐다. 국가 보증이 제공되는 국공채 위주로만 투자해온 외국인이 올해는 달러 강세를 활용해 은행채를 비롯해 여전채 및 회사채 쪽까지 투자 대상을 다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올해 잔고 증가분 자체는 지난해 같은 기간(60조240억원)보다 감소했다.
증권가는 외국인들이 은행채 중에서도 주로 산업·기업·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이 발행한 특수은행채를 주로 매수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임재균 케이비(KB)증권 연구원은 “은행채는 정부 신용등급과 거의 유사하고, 최악의 상황에도 정부가 보증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은행채 금리가 크게 오르고 가격메리트가 생기자, 수익률에서 국고채보다 은행채가 좋은데 리스크는 큰 차이가 없으니 매수에 나선 것”으로 설명했다. 기준금리 인상과 채권시장 경색에 시장에서 거래되는 채권가격은 하락(채권금리 상승)하고, 채권발행금리도 높아져 채권투자 유통수익률은 높아지고 있다. 이런 높은 금리를 나중에 또 볼 수 있겠느냐는 생각에 외국인 투자자들의 수요가 늘어난 것이라는 얘기다.
시장 관계자들은 현재 크레딧 시장(국채 제외 모든 채권) 경색 문제는 기업들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이 나빠서가 아니라 채권을 살 주체가 없기 때문인데, 외국인이 원화채권 투자 대상을 다양화하면 수급 측면에서 좋은 일이라고 해석한다. 지난 10월 기준으로 외국인의 원화채권 보유잔고는 231조3787억원이고, 올들어 순매수 규모는 65조원이다.
금리 상승과 증시 불안으로 채권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개인의 채권 순매수도 급증하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올들어 10월까지 채권 장외시장에서 개인투자자의 순매수 규모는 17조2681억원 어치로, 이미 지난해 연간(4조5412억원) 규모의 약 4배에 달한다. 시장금리가 고점 근처에 왔을 때 채권을 사면 쿠폰금리(발행 표면금리)도 높고, 가격도 싸게 살 수 있으며, 향후 금리 하락(채권 가격 상승)기가 오면 보유채권을 팔아 차익도 기대할 수 있다.
채권 상장지수펀드(ETF)에도 돈이 몰리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국내채권 관련 이티에프 59개 종목의 월평균 시가총액은 11월 18일 기준 151조6998억원이다. 지난 1월 월평균 시가총액(47개 종목 97조2831억원)보다 50% 이상 늘었다. 종목별로 보면 손실 가능성이 낮은 초단기 채권투자에 집어넣는 ‘파킹통장’ 활용형이 인기를 끌면서 양도성예금증서(CD) 금리와 한국무위험지표금리(KOFR) 금리를 추종하도록 설계된 이티에프의 시총이 크게 늘었다. 양도성예금증서 91일물 금리를 기초지수로 하는 ‘TIGER CD금리투자KIS’ 시가총액은 월평균 시가총액이 1월 2568억원에서 이달 1조7556억원으로 증가했고, 지난 4월 출시된 ‘KODEX KOFR금리액티브’ 시가총액은 출시 당시 2천억원에서 3조1361억원으로 급증했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 담당자는 “양쪽에 바벨을 끼듯이 한쪽으로는 현금 대피 용도로 단기채권에 투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경기 악화와 금리 하락에 베팅하며 국고채 10년물, 30년물을 기초지수로 하는 장기채권 이티에프에도 투자하는 형태가 눈에 띈다”고 말했다.
조계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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