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의 위기 징후는 왜 금융당국의 감시망에 포착되지 않은 걸까.
실리콘밸리뱅크의 갑작스러운 파산 사태로 시장이 충격에 빠졌다. 특히 시장은 물론 미국 금융당국도 이 사태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불안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도입됐던 은행 건전성 규제가 이후 다시 완화된 영향으로, 앞으로도 언제든지 사각지대에서 예고되지 않은 리스크가 터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3일
실리콘밸리뱅크 파이낸셜그룹의 지난해 연간 보고서(10-K)를 보면, 회사는 “2022년 말 회사의 총 자산은 2118억달러”라며 “2500억달러 미만이기 때문에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과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 규제는 은행이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유동성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쌓아두게 하는 내용이다. 실리콘밸리뱅크는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탓에 이런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사각지대에 있었던 것이다.
실리콘밸리뱅크는 같은 이유로
올해 스트레스 테스트도 피해갔다. 스트레스 테스트는 금융기관들이 가상의 위기 시나리오를 견딜 수 있는지 측정하는 것으로, 미국에서는 연방준비제도가 자산이 2500억달러 이상인 은행들을 대상으로 매년 실시한다. 이보다 규모가 작은 은행은 격년으로 테스트 대상이 되거나 아예 면제된다. 연준은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세부적인 건전성 규제 기준을 조정하기도 한다.
트럼프 정부 때 이뤄진 금융규제 완화의 맹점이 이번에 드러난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은행 건전성 규제의 통상적인 자산 기준은 원래 500억달러였다. 지금의 실리콘밸리뱅크 같은 은행들도 모두 포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후 중소규모 은행들은 규제 완화를 위해 수년에 걸쳐 의회에서 로비 활동을 펼쳤다. 이 안건이 의회에서 논의됐던 2015년 한 해
실리콘밸리뱅크가 로비에 쓴 금액도 15만달러였다. 이후 금융규제 완화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이는 급물살을 탔다. 중소기업 대출을 늘려 경제를 살린다는 취지였다. 결국
2018년에 해당 기준을 자산 500억달러에서 2500억달러 이상으로 상향 조정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이번 파산 사태가 사전에 감시망에 걸리지 않은 채 예고 없이 들이닥친 배경이다. 특히 실리콘밸리뱅크의 파산은 감시망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예견이 가능했다는 점에서 비판이 많다. 실리콘밸리뱅크는 저금리 시절에 장기물 채권을 대규모 사들인 탓에, 채권 가격이 떨어지는 고금리 국면에는 시가평가 손실에 더 많이 노출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런 취약성은 지난해 더욱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밸리뱅크가 보유한 채권의 가중평균 만기는 2021년 말 4.0년에서 지난해 말 5.7년으로 오히려 더 길어졌다.
결국 이번 사태로 금융시장이 불안에 빠질 가능성은 더욱 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날 낸 보고서에서 “(시장은) 실리콘밸리뱅크 사태를 전혀 예견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존의 판단 방식을 신뢰할 수 없다(고 볼 것)”이라며 “시장은 이를 파열음의 전조로 인식하고 있으며 일단 유사한 은행을 찾아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안전자산 선호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이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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