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케이비(KB)금융지주 사옥 전경. 케이비금융지주 제공
케이비(KB)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인선이 ‘관치 논란’ 없이 마무리됐다. 2008년 지주 체제 출범 이후 숱한 외풍에 시달려온 케이비금융이 지배구조를 개선한 결과다. 금융권에선 겹겹이 장치를 둬 외풍을 막은 것에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향후 경영진의 입김을 차단할 ‘내풍’도 견제해 나가는 것이 케이비금융의 남은 숙제가 될 전망이다.
양종희 케이비금융지주 차기 회장 내정자는 11일 출근길에서 기자들을 만나 “경영 승계 절차를 신뢰하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하다. 저 같은 행원 출신이 여기까지 왔다는 게 케이비금융그룹 인사의 자긍심일 것”이라고 말했다.
양 내정자는 지난 2008년 9월 케이비금융그룹이 지주 체제로 탈바꿈한 이래 탄생한 첫 행원 출신 회장이다. 또 다른 내부인사 후보였던 허인 부회장도 1998년 국민은행과 합병한 장기신용은행 출신이다. 최종 3인 중 내부인사 2명이 모두 행원 출신이었던 셈이다. 그동안 케이비 회장 자리는 임원급으로 영입됐던 금융권 인사나 정부 고위 관료 출신 등 외부 인사들이 꿰차왔다. 최종 후보 3인 중 관 출신이 없었다는 점도 이례적이다. 유일한 외부 인사였던 김병호 베트남 호찌민시개발(HD)은행 회장은 하나금융그룹에서만 30년 넘게 몸담았다.
윤종규 회장 취임 이후 마련된 지배구조가 제몫을 했다는 평가가 뒤따른다. 윤 회장은 지난 2014년 11월 취임 직후 사외이사와 회장 후보 선정 과정의 독립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 개선을 추진해왔다. 2016년 7월 마련한 경영승계규정 등에 따라 차기 회장 내·외부 후보자군을 상시 관리한다.
특히 인사 청탁 등에 취약한 외부 인사는 헤드헌팅회사 추천만 받는다. 이 후보군을 상시 관리하고 반기별로 평가해 후보마다 순위를 매기는 점이 타 지주사와의 차이점이다. 경영 승계절차가 시작되면 누적된 점수 순서대로 외부 인사 후보군에게 전화를 걸어 회장직 도전 의사를 묻고 기회를 부여한다.
내부 인사의 경우 10명 안팎의 인사를 뽑아 내부 경영 승계 프로그램을 통해 관리·교육한다. 이들은 1년에 최소 두차례 이상 이사회에 특정 경영 현안에 대해 발표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회장 후보를 결정하는 사외이사의 선임 방식도 바뀌었다. 애초 사외이사 후보추천위원회(사추위)에서 사외이사 후보에 대한 추천·평가·임명을 도맡았다가, 2015년부터는 사외이사 후보 추천은 주주와 외부기관이 맡고, 사추위는 평가와 임명을 담당하도록 했다. 2018년 2월부터는 사추위에서 대표이사가 빠지면서 사외이사로만 사추위를 구성하게 했다.
그렇다고 잡음이 없는 건 아니다. 금융권에선 양 내정자 발탁이 의외라는 뒷말도 흘러나온다. 현재 그룹에 특별한 비금융 인수합병(M&A) 현안이 없는 상황에서 은행장 출신인 허 부회장 대신 비은행권을 담당해온 양 부회장이 낙점되어서다. 객관적인 경영 능력뿐 아니라 내부 경영진들과의 관계도 이번 인선의 주된 조건이 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케이비금융의 지배구조가 타 금융사에 비해 모범적인 것은 맞지만, 사외이사 후보 추천과 연임 결정 등을 통한 경영진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독립성을 강화하려면 사외이사 연임제를 폐지하고 3년 단임제를 도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외풍을 막는 장치도 더 견고하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사들이 원하는 이들을 미리 찍어주는 경우가 있어 헤드헌팅사들의 후보군이 완전히 독립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꼬집었다.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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