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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금융·증권

[현장리포트] 한은 총재 ‘입’이 달라졌다 / 김성재

등록 2006-04-10 10:32수정 2006-04-10 11:17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첫 주재하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7일 오전 한국은행 본관에서 취임 후 첫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첫 주재하는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7일 오전 한국은행 본관에서 취임 후 첫 금융통화위원회 정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빠르고 간결한 답변…‘이성태 스타일’ 실현 관심
지난 7일 오전 한국은행 기자실은 내·외신 기자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성태 한은 총재가 취임 후 처음 주재하는 금융통화위원회에서 4월 콜금리목표치를 올릴지, 동결할지 관심이 쏠렸다. 이날 금통위는 일찌감치 연 4.0% 동결을 발표했다. 기자들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은 금통위의 금리동결 결정보다는 첫 기자브리핑에 나선 이 총재의 ‘입’에 눈과 귀를 집중했다.

“부동산값 움직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실물경제가 좋아지고 있어 그동안 유지한 금융완화 정도를 조정하겠다는 정책기조에 변함이 없다”

이 총재의 모두발언과 기자들과의 질의·응답은 20여분 만에 끝났다. “앞으로 금리정책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단기적으로 바꿔가야 할 때”라는 전임 박승 총재의 정책방향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취지였다. 최근 급락하는 원-달러 환율, 부동산 시장, 미국과의 금리격차 등에 관한 질문에 취임 한 주를 맞는 이 총재의 대답은 빠르고 간결했다. 박승 전 총재의 느리고 다소 장황한 어투와는 사뭇 달랐다.

‘데뷔’ 발언 해석 제각각

“환율은 정말 예측하기 어렵다”“한은은 시장 안정에 관심이 있다”는 식의 원론적인 말만 되풀이했다. 한 기자가 “만약 환율이…”라며 질문을 던지자 “‘만약’이라는 가정하의 질문에는 말려들고 싶지 않다”며 노련하게 대답을 피해갔다.

기자들은 그의 ‘데뷔’ 발언을 놓고 머리를 싸맸다. “한줄의 기사거리도 주지 않았다”“시장에 분명한 시그널(신호)을 던졌다”“입조심하는 모습이 뚜렷했다…” 등, 이 총재의 첫 기자회견 멘트에 대한 기자들의 반응은 일치하지 않았다. “불확실성의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통화정책에서) 과감한 결정을 내리겠다”던 그의 취임일성의 의미도 다시 도마위에 올랐다.

지난달 초 <한겨레>가 경제전문가 20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차기 한은 총재에게 필요한 덕목’을 묻는 질문에 시장 친화력과 전문성 등이 가장 많이 지목됐다. 한은 안팎에서는 이 총재의 전문성을 인정하는 데 별로 이견이 없다. 40년 가까이 한은맨으로 일해오는 동안 그가 거친 주요 부서는 조사부·자금부 등 중앙은행의 핵심 부서였다. 한은 직원들은 그를 ‘걸어다니는 컴퓨터’라고도 부른다. 부하직원들의 보고를 받거나 토론을 할 때 대본없이 주요 통계수치를 줄줄 외고 다닌다는 데서 나온 별명이다. 부산상고 졸업 뒤 서울대 상대를 수석 입학하고 한은 입행 당시 성적도 1등이었다는 소문이다. 말하자면 ‘천재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요직 두루 거친 ‘걸어다니는 컴퓨터’

그는 취임사에서 “통화정책의 성공 열쇠는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동안 시장이 박 전 총재에 대해 가졌던 아쉬움을 상기하면, 그가 특별히 ‘시장과의 커뮤니케이션’에 방점을 찍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과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독특하고 화려한 화술에 우리 시장이 매력과 부러움을 느꼈던 것도 같은 이유다. 아직 이 총재의 입이 어떤 화술을 구사할 지 단정지을 수 없지만, 그가 적어도 ‘가벼운 입’ 때문에 시장의 실망과 비난을 받지는 않을 것이란 예측이다. 부총재 시절 전임 박 총재의 말실수 파문을 지켜보며 충분한 학습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다. 내정 사실을 통보받은 지난달 23일 기자들의 성화에 못이겨 ‘마지못해’ 기자실을 찾았다가 단 5분 만에 “아직은 할 말 없다”며 돌아가 기자들을 허탈하게 만든 것이 위장술은 아닐 것이라는 분석이다.

취임 전 그에 대한 인상평가는 대개 ‘꼿꼿한 선비형’이었다. 원칙에 어긋나면 거부한다는 것이다. 지난 1990년대 초 “투신사에 대한 한은 특융은 불합리하다”며 끝내 서명을 거부했다는 일화도 있다. 1998년 한은 독립성 강화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1차 한은법 개정에도 적극적인 역할을 했고, 2003년 2차 한은법 개정 당시에는 국회 소위원회에서 “정부가 금통위원들에게 부당한 외압을 행사한 적이 있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적도 있다. 내부 인사에 있어서 그는 다른 총재 후보들에 비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은 노조가 직원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그는 단연 차기 총재 후보 1위로 꼽혔다.

금융전문가들, 통화정책 일관성 기대

이런 점 때문에 시장과 언론은 이 총재를 ‘매파’로 분류해 왔다.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해서도 비교적 소신을 보여왔고, 통화정책에 있어서도 그의 취임일성대로 ‘과감한 결정’을 내릴 것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지난주 새로 합류한 2명의 금융통화위원도 이 총재의 소신있고 과감한 통화정책 방향에 힘을 실어 줄 것으로 보인다. 새 부총재에 이승일 전 한은 부총재보가, 다른 1명의 금통위원 자리에도 한은 부총재를 지낸 심훈 전 부산은행장이 임명됐다. 7명의 금통위원 중 한은 출신은 예전보다 한명 늘어나 절반에 가까운 3명에 이르게 됐다.

시장은 새 중앙은행 총재의 스타일·정책방향에 대한 탐색과 적응 기간을 갖고 있지만, 아직 큰 불만은 없어 보인다. 박성진 삼성투신운용 채권팀장은 지난 3월 말 당시 이성태 부총재의 총재 내정 소식에 대해 “무리 없는 결정”이라고 말했고, 이지현 에스케이(SK)증권 투자전략팀장은 “4월 금통위에서 얻은 것은 통화정책의 일관성에 대한 신뢰”라고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신용상 한국금융연구원 거시경제팀장도 “이 총재의 스타일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며 일단 기대감을 표시했다.

김성재 기자
김성재 기자
이 부총재는 “한은은 금리정책을 통한 물가안정이 가장 중요한 목표지만 부동산 문제에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 앞으로 경제 전반에 걸친 한은의 역할과 위상 바로 세우기에도 고삐를 죄겠다는 뜻을 비쳤다. 그린스펀과 버냉키의 관계처럼, 아직은 이 총재가 박 전 총재의 통화정책 방향에서 크게 벗어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있지만, 앞으로 선제적 금리인상을 통해 중앙은행 고유의 임무를 얼마나 충실히 수행할지 시장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겨레> 김성재 기자 seong6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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