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쇼크로 코스피가 6일 3거래일째 급락세를 면치 못했다. 한국거래소 제공
세계 금융시장에 공포가 엄습하면서 주식 등 위험자산 가격이 동반 급락하고 있다. 글로벌 자금이 국채 등 안전자산으로 일시 대피하는 조짐이 보이지만 금리가 추가 상승할 것이란 예상이 많아 당분간 부동자금의 이동이 급변하며 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6일 국내 증시는 미국 증시 폭락 여파로 하락세를 이어갔다. 홍콩과 일본 증시가 4~5% 급락하는 등 아시아 시장도 약세를 면치 못했다. 앞서 5일(현지시각)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4.6%(1175.21) 폭락한 24345.75로 장을 마감했다. 단순 하락폭으로는 역대 최대이고, 하락률로는 2011년 8월 이후 최고치다. 런던증시가 지난해 4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하는 등 유럽 주요 증시도 대부분 큰 폭으로 하락했다.
이날 뉴욕증시에서는 순간적으로 지수가 급락하는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 현상도 발생했다. 1% 안팎의 하락세를 이어가던 뉴욕증시는 오후 3시 무렵 갑자기 추락하기 시작했다. 같은 시각 증시의 변동성 위험을 가리키는 이른바 공포지수(VIX)가 30을 넘어서면서 다우지수는 단 10분 만에 3.5% 급락했다. 현지 전문가들은 사람이 아닌 기계가 자동으로 매도하도록 설계돼 있는 프로그램 매도 물량이 대량으로 쏟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공포가 시장을 압도하는 급락장에서 드물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날 공포지수는 17.3에서 37.3으로 하루 만에 115%나 급등해 1990년 지수 산출 이후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그리스의 구제금융을 사흘 앞둔 2010년 5월6일에도 다우지수는 36분 만에 998.5(9%) 추락한 바 있다. 이러한 공포장세는 금리 급등과 인플레이션 우려, 높은 주가 부담과 불확실한 통화정책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리면서 폭발한 것으로 풀이된다.
위험자산 기피 현상으로 주식시장에서는 자금 이탈 우려가 커지고 있다. 월가에서는 앞으로 주가가 3% 이상의 추가 하락이 지속되면 안전자산으로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후 채권에서 주식으로 이동했던 글로벌 투자자금 흐름이 대전환의 길목에 맞닥뜨린 셈이다.
이미 고위험 자산에서는 자금이 빠져나가고 있다. 5일 <블룸버그>는 신흥국 채권과 투기등급(하이일드) 채권에 투자하는 펀드에서 지난주 31억달러의 자금이 유출됐다고 전했다. 이들 자금의 상당 부분은 단기채 펀드로 갈아탔다. 인플레이션과 금리인상을 우려하는 투자자들의 자금이 단기 부동화하고 있는 것이다. 자금 유출의 다음 차례로는 신흥국 증시가 지목됐다.
증시 폭락의 방아쇠를 당겼던 미국의 국채 금리는 5일(현지시각) 되레 하락(채권가격 상승)으로 방향을 틀었다. 유럽 국채시장에서도 독일 10년 만기 국채 등 대부분의 금리가 하락했다. 글로벌 자금이 최우선 안전자산인 국채를 임시 피난처로 삼은 덕분이다.
외환시장에서도 대표적인 안전 통화인 엔화 가치가 1% 가까이 올랐고, 미국 달러화도 수요가 몰리며 반등세를 이어갔다. 반면 위험통화로 분류되는 유로화 가치는 내렸다. 달러의 강세 전환으로 위험자산인 원유 등 원자재 가격은 전반적으로 약세를 보였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은 2% 하락했다. 반면 안전자산인 금은 거래소별로 차이는 있지만 비교적 탄탄한 흐름을 보였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금 선물 가격은 온스당 0.04% 올랐다.
일각에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9년째 이어진 ‘강세장’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증시가 거품 단계에 진입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과열을 식히는 성격이 강하지만 주가가 고점에서 20% 떨어지면 약세장에 들어섰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시장 금리는 갑자기 오른 게 아니라 지난해 가을부터 상승세를 이어왔다. 당시에는 주가도 함께 올랐다. 김일구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이번 주가 폭락과 관련해 “지금은 투자자들이 기업이익이 증가할 것이라는 데 자신이 없거나 주식시장에 거품이 끼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