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재성 ‘재러 한국 중소기업협의회’ 사무국장. 사진 허재성 국장 제공
“한동안 물건이 없어 못 판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물건을 갖고 와도 송금을 해줄 수 없으니. 회원사들 모두 ‘스톱’(업무 중단)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7일(모스크바 현지시각) 전화기를 타고 들어온 허재성(38) ‘재러 한국 중소기업협의회’ 사무국장의 목소리에선 걱정과 한숨이 가득 묻어났다. “전쟁 전, 그러니까 2주 전까지만 해도 1달러에 73, 75루블 하다가 지금은 105루블까지 올라 다들 물품 대금(달러 베이스)을 보내줄 수 없는 곤란한 상황을 맞고 있습니다.”
러시아에 진출한 한인 기업 모임인 재러 한국중기협의회 회원사는 30개 가량 된다고 한다. 모스크바를 중심으로 러시아에서 대개 무역·물류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주로 개인 사업체 형식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러 제재 강화로 이들 업체 또한 극심한 어려움에 빠져들었다. 당장의 곤란은 현지 통화인 루블화의 가치 폭락(환율 폭등)에서 비롯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전쟁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만 해도 (1달러 70루블대에서) 5~10루블 정도 올랐다가 갑자기 100루블대로 치솟았습니다. 달러를 살 때는 120루블까지 줘야 합니다. 여기 회원사 중에는 화장품이나 식품을 한국에서 들여와 판매하는 업체들이 많은데, 환차손이 너무 커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전쟁 전인 2월20일께 1달러에 75루블 수준의 환율 조건에서 한국의 물건을 1달러어치 주문할 때 러시아 현지 바이어한테는 대개 20% 마진을 붙여 85루블에 판매하는 정도 조건이었다고 한다. 바이어한테는 조건대로 85루블을 받고 물건을 넘겨야 하는데, 한국으로 보낼 1달러를 구하려면 120루블을 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환율이 실질적으로는 두 배 가량으로 폭등한 셈이다.
현지 한인 운영 업체들이 거래하는 물품으론 화장품·식품이 많고 광통신 관련 물품, 의료기기, 전자제품을 취급하는 회사들도 있다. 코로나19 대유행 사태 뒤부터 가뜩이나 모임이 줄고 사업이 위축돼 있던 분위기였는데, 우크라이나 사태는 여기에 직격탄을 안긴 셈이 됐다고 허 국장은 전했다. 대부분 개인 자영업 형식으로 러시아 현지에 법인을 둔 경우여서 한국의 정책적 지원을 받을 처지도 못 된다.
허 국장 본인은 협의회 사무국 일을 보는 것과 함께 항공화물을 비롯한 복합물류 회사인 한국 본사에서 파견한 주재원으로 일하고 있다. 주요 바이어는 엘지(LG)전자와, 러시아에 진출한 한국 중소기업들이다. 엘지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루사에 현지공장을 두고 냉장고·세탁기·텔레비전 등을 만들고 있다. 허 국장 회사는 한국이나 중국·인도네시아에서 부품을 들여와 이 공장으로 보내고 있다. 그 또한 환차손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했다.
“(지난달) 28일에 송금해보니 35% 정도 손해였습니다. 여기에 ‘스위프트’(국제금융결제망) 금융 제재까지 하면 송금을 아예 할 수 없다고 하니.” 물류 자체가 점점 끊기는 데 따른 곤란도 크다고 했다. 그는 “항공편은 러시아 화물기만 뜨고 있을 뿐 거의 다 끊겨 있고, 배도 못들어오고 있어, 업무를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영배 선임기자
kimyb@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