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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헤리리뷰

연료비 폭등으로 더 커진 불평등…에너지복지 사각지대 없애야

등록 2023-03-13 11:17수정 2023-03-13 11:23

최하위 계층 소득 중 연료비 비중 10%
최고 소득층은 0.8%로 불평등 더 커져

전기·가스값 폭등하자 정부 지원 2배
에너지빈곤 장기계획 없이 일시 대책

에너지복지 더 넓혀 사각지대 없애야
기후위기 대응 지원도 함께 고려해야
전국에 올겨울 최강 한파가 닥친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다세대 주택 담벼락에 달린 가스계량기.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전국에 올겨울 최강 한파가 닥친 가운데 26일 오후 서울 용산구 동자동 쪽방촌 다세대 주택 담벼락에 달린 가스계량기.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겨울철 난방비, 어려운 이웃부터 살피겠습니다’.

서울시 마포구 만리재로 큰길가에 얼마 전까지 내걸린 펼침막이다. ‘최대 59.2만원 지원’이란 빨간색 바탕에 새겨진 글귀는 치적 홍보로 비쳤다. 그 자리를 지금은 ‘죄지었으면 벌 받아야지-이재명만 더 글로리’라고 새겨진 펼침막이 차지하고 있다.

지난 1월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든 대책을 강구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지시로 당초 난방비 지원액이 두배로 늘었지만 전기와 가스 요금 폭등으로 커진 불만을 누그러뜨리기에 부족해 보인다. 되레 치솟은 에너지 가격과 정부의 즉흥적이면서도 뒤늦은 대책은 에너지 빈곤층의 문제와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요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긴 집에서 촛불을 켜고 자던 여중생이 불이나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2005년에서야 우리 사회는 에너지 빈곤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해 국민소득이 2만 달러에 육박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때 늦은 관심이었다. 대책도 더뎠다.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이 없지는 않았지만, 에너지바우처를 시작한 때가 2015년부터다. 점차 대상도 많아지고 지원액도 늘었지만 아직 제도는 엷고 빈틈은 넓다.

지난달 말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를 발표하자 지난해 4분기(10~12월) 가계 연료비 부담이 전년도 동기 대비 ‘16.4%’ 올랐다는 보도들이 쏟아졌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에너지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엘엔지(LNG)와 원유 등의 가격이 급등했고 순차적으로 연료비 인상도 예고된 수순이었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들어가 16.4%를 좀 더 자세히 뜯어보면 에너지 불평등의 단면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 수치는 모든 가구의 평균값이다.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소득 크기에 따라 가구를 줄 세워 10등분 했을 때 최하위)를 따로 떼서 봤더니 연료비가 전년도에 견줘 30% 폭등한 6만8천원(이하 월평균)을 기록했다. 증가 폭이 전체 가구 평균의 2배다. 반면 같은 기간 소득은 5.8% 늘어 68만원을 살짝 넘겼다. 껑충 뛴 난방비로 많은 가구가 힘겨워하지만 저소득 가구의 고통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최상위 10분위 가구의 연료비는 6.6% 늘어나 1분위 증가 폭의 5분의 1에 그쳤다. 이들의 소득은 1279만원이었고 연료비는 약 11만원이었다.

저소득층에서 소득보다 연료비 증가 폭이 커 소득 대비 연료비 비중도 덩달아 높아졌다. 1분위 가구의 지난해 4분기 소득 대비 연료비 비중은 10%에 이른다. 전년도의 8.1%보다 늘었다.

이에 반해 10분위는 그 비중이 지난해 0.8%대였고 전년도와 차이가 없다시피 했다.

연료 가격 상승이 저소득층에 미치는 충격이 더 크게 나타나면서 에너지불평등도 더 악화한 것이다. 에너지 가격이 치솟은 지난 1년 새 소득이 낮은 계층은 연료비를 내고 나서 식료품, 가정용품 등 다른 데 소비할 여력이 더 줄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세계적 현상이다. 네덜란드, 영국, 미국, 중국 등 4개국 연구자 12명은 지난 1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너지>에 실은 ‘글로벌에너지 가격위기가 가계에 미치는 부담’이란 논문에서 조사 대상 116개 나라에서 적게는 1억6600만명 많게는 5억3800만명이 에너지빈곤층(에너지 비용이 가계 총지출의 10% 초과)으로 전락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뒤 이들 나라의 가정용 에너지 비용이 최소 62.6% 최대 112.9% 오른 영향이다. 논문은 “감당할 수 없는 에너지와 다른 생필품 비용이 취약계층을 에너지빈곤과 절대빈곤 상태로 몰아넣었다”고 밝혔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에너지인플레로 빈곤층의 에너지 접근성이 떨어지면서 아예 전기를 공급받지 못하는 인구도 전세계적으로 2.7%(전년 대비 2022년)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에 이은 가구의 연료비 부담 증가는 예측 가능했다. 하지만 정부는 당초 올해 에너지바우처(등유와 연탄 바우처 등 포함) 예산을 지난해보다 적게 편성했다. 그나마 국회를 거쳐 조금 증액된 1910억원으로 확정됐다. 가구당 지원금액은 늘었지만 대상은 30만가량 줄었다. 지난해 한시적으로 포함한 주거와 교육급여 수급가구들을 뺐다. 바우처는 사회 취약계층이 전기, 도시가스 서비스를 구매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다. 에너지 취약계층 지원 예산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핵심 사업이다.

지난해 12월 사용분 연료비 청구서가 지난 1월 각 가정에 배달되자 곳곳에서 불만이 쏟아졌다. 정부가 바우처 지원액을 2배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예산조차 다 확보하지 못한 채 다급히 내놓은 대책이었다. 정부는 예비비 등 1788억의 예산을 추가 투입하기로 했다. 지원 확대를 삐딱하게 볼 일은 아니지만 중장기 계획 없이 성급하게 내놓은 단기대책으로 에너지빈곤층이 겪는 어려움을 제대로 해결할 수는 없다.

4년째 에너지바우처 혜택을 받는 유아무개씨 부부는 59㎡ 넓이 아파트에 거주한다. 서울에 살면서 네 자녀를 키우고 있다. 방과 후 교사로 월 120~140만원을 번다. 암 수술을 받고 산정특례제도 대상자가 된 뒤에야 바우처를 알게 됐다고 한다. 요금차감 방식을 선택해 사용하면서 지난 1월 나온 전기료(6만9570원)는 한 푼도 내지 않았다. 문제는 가스보일러로 개별난방을 하는데 여태 한 번도 바우처를 활용하지 못했다. 에너지바우처콜센터와 동사무소 등에 문의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바우처와 별도로 그나마 가스공사로부터 생계 및 의료 급여 수급자 대상이 돼 일부 요금할인을 받았다. 한파가 덮친 올해 1월 가스요금이 11만4000원이나 나왔지만 할인폭은 2만4000원에 그쳤다.

지난 1월 유씨의 전기료와 가스요금을 더하면 소득 대비 13%가 넘는다. 허리띠를 더 졸라매지만 가스비는 미납 상태다. 그는 산정특례 제도 기간이 끝나는 내년에 바우처 혜택도 사라질까 봐 걱정이 태산이다.

“그나마 우리는 아파트이어서 연료비가 적게 나오는 편이다. 정부가 추가로 바우처 한도를 늘려줘도 기한(4월까지 사용)도 짧고 늦게 충전해줘 다 사용하지도 못하고 소멸한다. 우리 말고도 그런 문제를 겪는 집들이 많다. 대상이라고 하더라도 신청하지 않으면 받을 수 없는 시스템은 문제다. 또 4인 이상 가구로 뭉뚱그릴 게 아니라 가구원수가 많으면 더 지원해주는 게 맞지 않나.” 제도 개선을 바라는 유씨의 얘기다.

그의 말은 대체로 바우처 수혜자나 앞으로 혜택을 받길 원하는 이들의 목소리이기도 하다. 에너지빈곤 문제를 다뤄온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명예선임연구위원은 “가구원수가 많을수록 바우처 부족액이 크다. 가구원수에 따른 차등 폭을 더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바우처의 문턱도 높다. 소득과 세대원 특성 등 두 가지 조건을 다 충족해야 한다. 즉 소득이 중위소득(소득 순으로 가구를 나열했을 때 중앙값)의 40% 이하이면서 동시에 세대원 가운데 노인, 영유아, 장애인, 임산부, 중증질환자 등이 있어야 한다. 두 조건을 충족하는 가구는 86만으로 한정된다. 총가구 수(2073만)의 4%에 불과하다. 지난해 추경을 편성하면서 한시적으로 주거와 교육 급여 수급자(올해 4월까지 수혜)로 대상을 확대했지만 그래도 전체 가구 수의 5%(117만)가 조금 넘는 수준이다.

에너지시민연대가 2년 전 실시한 ‘겨울철 에너지빈곤층 실태조사’를 보면 에너지 취약가구 가운데 겨울철 에너지바우처 수혜 비중이 15.8%에 불과했다.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가 넓다고 유추할 수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김정호 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한겨레>에 “향후 에너지가격 및 공공요금 추이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재정 당국 등 관계부처와 협의해 에너지 소외계층에 대한 지원 확대를 지속해서 검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아직 에너지복지 혜택을 누구에게 얼마나 더 제공할지 합의된 기준은 없다. 매듭 없이 겉도는 오랜 논쟁이다. 한때 한국에너지공단이 2013년 기준 중위소득의 50% 이하이면서 소득 대비 연료비가 10% 넘는 158만 가구를 에너지빈곤층으로 추산한 바 있으나 정책에 반영되지 못했다.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정확한 실태 파악조차 못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0월 ‘2023년도 예산안 주요 사업 평가’ 보고서에서 “정부 차원에서 에너지빈곤층에 대한 실태조사를 조속히 시행해 에너지복지사업의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점검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영국 등 여러 나라에서는 소득 수준과 적정 냉난방 온도, 소득 대비 연료비 비율 등을 고려한 지표를 활용해 에너지복지 대책을 펴고 있다.

바우처 대상인데도 몰라서 신청하지 못하는 가구도 적지 않다. 2021년 동절기 바우처 대상 가운데 5만8647가구가 신청조차 못했다. 지난 몇 년 새 바우처 대상 가운데 발급가구의 비중을 뜻하는 발급률은 90%대 중반이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단순히 신청을 독려하는 방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수급자 관리 시스템을 연동 및 통합하는 방안을 마련하지 않으면 사각지대는 언제나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저소득 가구(10분위 가운데 1~2분위)의 21.5%가 난방에 쓰는 등유에 대한 지원 폭도 더 넓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저소득층은 낡은 주택에 거주하는 비율도 높다. 국토부 주거실태조사를 보면 소득 하위 20%에 드는 가구 열 가운데 셋(28.8%)은 31년 이상 된 노후주택에 산다. 지은 지 오래된 주택은 열효율이 떨어져 난방비가 더 든다. 이런 구조 때문에 주거 불평등은 에너지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저소득층 주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단열재와 창호 시공 등 에너지효율개선사업을 펴오고 있지만 가구당 330만원 한도다. 올해 3만4천 가구 대상으로 858억원의 예산이 잡혔다. 온실가스 감축 효과까지 있지만 임차 가구 중심으로 진행되는 문제가 있다.

이른바 ‘에너지복지법’ 제정 움직임도 다시 꿈틀대고 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산자부와 복지부로 이원화한 지원 체계를 일원화하고 통합 복지 관점에서 에너지빈곤층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2010년부터 조승수 전 의원 등 여러 의원의 손을 거쳐 에너지복지법안이 발의됐으나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더 늦기 전 에너지빈곤 해결을 위한 또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까. 기후위기 대응과 탄소중립 사회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에너지 취약계층을 지원할 장기적인 계획 마련이 시급하다.

류이근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선임기자 ryuyige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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