댓글의 무한도전 “토달고 퍼나르고”
[한겨레 2010 새해특집] 누리꾼 세상|패러디·댓글
<문화방송>(MBC)의 인기 프로그램 ‘무한도전’ 달력이 불티나게 팔려나가 판매사이트 서버가 다운됐다는 기사가 뜨자 누리꾼들도 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누리꾼들의 ‘무한도전 댓글놀이’가 벌어진 것이다. ‘제가 베플이 된다면’으로 시작하는 기발한 공약성 댓글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이 댓글놀이는 순식간에 한 포털사이트의 검색어 상위에 올랐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거짓말을 일삼는 정치인들에게 회의를 느낀 누리꾼들은 세 사람이 실제로 약속을 지키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환호했다. “우울한 크리스마스에 할 일이 생겼다” “고기만 굽지 말고 야채와 쌈장도 챙겨라”
누리꾼들은 이제 “하이루” “방가방가” 같은 인사성 댓글에 만족하지 않는다. 너의 댓글에 나의 댓글을 붙여 또다른 댓글을 유도하는 ‘댓글 이어달리기’를 즐긴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누리꾼들의 일상 속에 파고들면서 생긴 댓글의 진화다.
한 스님이 오락실에서 게임에 열중하는 사진이 올랐다. 이 낯선 모습에 한 누리꾼이 걸그룹 ‘투애니원’의 노래 ‘파이어’(Fire)의 한 부분을 개사해 붙였다. 이를 혼자만 보고 즐기면 대한민국 누리꾼이 아니다. 뒤를 이어 가사를 바꾸며 ‘노는 스님’과 관계없이 자기들끼리 찧고 까분다. 쇼핑몰에서 물건을 사고 그치면 ‘원시인’이다. 상품평이나 사용후기를 올리고 댓글을 달아야 ‘현대인’ 대접을 받는다.
누리꾼들은 댓글로 ‘그래, 맞아. 완전 똑같아, 나도…’하면서 공감을 표현한다. 한 누리꾼이 ‘선생님이 껍던 씸 함부로 뱉지 말라’고 하면 또다른 말실수 경험담이 쏟아진다. “식물인간 아들을 둔 어머니를 위로하려다 ‘야채인간’이라고 했음.” “이명박 대통령이 언제 당선했냐고 해야 할 걸 언제 데뷔했냐고 물었음.” “편의점에서 팬티색 커피스타킹 있냐고 했음.” 댓글이 이어지면서 누리꾼들은 데굴데굴 구른다. 기상천외한 말실수에는 “된장님, 원장찌개 왔어요 이후 최고”라며 왕관을 씌운다.
댓글은 가녀린 이들의 아픔과 어깨동무하기도 한다. 딸을 성폭행한 남편의 선처를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한 어머니의 안타까운 사연(<한겨레> 2009년 11월18일치)이 뜨면 “그놈의 ○○가 뭔지…”라며 고개를 주억거린다. 댓글을 통해 연락처를 주고받으며 온정을 건네기도 한다.
어떤 댓글놀이는 책이 된다. 지난 12월6일 소울드레서, 쌍코, 화장발 등 이른바 ‘여성 삼국연합’은 시국선언 교사에 대한 징계를 거부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에게 응원의 댓글을 엮은 ‘댓글북’을 전달했다.
댓글은 꼬투리를 잡고 이어진다. 한나라당이 날치기 처리한 미디어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절차상 위법하나 유효하다”고 결정하자 댓글의 어퍼컷이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커닝해도 대학만 가면 합법이다.” “오프사이드지만 골은 인정된다.” “사람을 때렸지만 폭행은 아니다.”
댓글은 누리꾼들의 창의성을 시험하는 무한도전이다. 누리꾼들은 저마다의 끼와 색깔로 댓글을 심는다. 때론 거기에 잡초와 독풀이 무성하다. 그 불안한 경계에서 댓글의 진품명품이 갈린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댓글은 누리꾼들의 창의성을 시험하는 무한도전이다. 누리꾼들은 저마다의 끼와 색깔로 댓글을 심는다. 때론 거기에 잡초와 독풀이 무성하다. 그 불안한 경계에서 댓글의 진품명품이 갈린다.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