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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일본 ‘피폭자’ 민족차별…조선인 피해 긴 시간 묻혀

등록 2010-02-02 21:10

나가사키평화자료관의 활동을 얘기하는 다카자네 야스노리 이사장(왼쪽)과 시바타 도시아키 사무국장.
나가사키평화자료관의 활동을 얘기하는 다카자네 야스노리 이사장(왼쪽)과 시바타 도시아키 사무국장.
[2010 특별기획 성찰과 도전] ② 나가사키 해상 귀신섬에 끌려갔던 사람들
징용·원폭피해자료 등 전시 ‘나가사키평화관’




오카 목사 조선인문제 천착
나가사키 자료관 주춧돌
매·화장인허증 조사 요구
징용 자료 찾는데 큰 공

시민들의 힘으로 운영되는 역사평화교육기관인 ‘나가사키평화자료관’ (이하 자료관)은 언덕바지인 니시자카마치에 있다. 나가사키역에서 걸어서 5분 정도 걸린다. 근처에 26인 성인기념관이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침략했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통치 시절, 일본인 신자 20명을 포함해 외국인 신부 등 26명이 처형된 자리다. 일본 최초의 가톨릭 순교성지라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81년 방일했을 때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1995년 10월1일 문을 연 자료관은 4층 건물을 쓰고 있다. 일본어 한국어 중국어 영어 등 4개국어로 쓰인 팜플렛은 ‘피해자의 아픔을 마음에 새기며 전후 보상의 실현과 비전(非戰)의 다짐 ’을 내세우고 있다. 1, 2층에 마련된 전시장에는 학교 교육에서 별로 다루지 않는 근·현대사의 사건들이 대형 사진과 설명판으로 가득 차 있다. 침략·강제연행·군대위안부·난징대학살·731부대의 만행 등 주제별로 구분돼 있다.

현 이사장은 다카자네 야스노리(71) 나가사키대 명예교수다. 규슈대학에서 프랑스문학을 전공한 그는 1969년 나가사키대학의 프랑스어 강사 자리를 얻으면서 이 지역과 인연을 맺었다. 그가 본격적으로 시민운동에 뛰어든 것은 70년대 중반 오무라수용소 해체운동 때였다. 나가사키에 인접한 오무라수용소에는 불법입국 혐의 등으로 체포된 재일동포들이 집결돼 강제송환될 때까지 수감됐다. 당시 오무라수용소는 ‘동양의 아우슈비츠’ 라고 불릴 정도로 인권유린이 심했다고 한다. 그는 오무라수용소에 갇힌 조선인들의 법적 투쟁을 지원하는 활동을 하면서 오카 마사하루 목사를 만났다.

자료관의 정식 명칭에는 오카 마사하루 기념관이란 단어가 수식어처럼 붙어 있다. 자료관은 오카 목사를 빼고서는 얘기할 수 없다. 그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세운 시설이기 때문이다. 나가사키의 조선인 피폭자 실태를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조사한 것은 일본정부도 아니고 나가사키현이나 시도 아니다. 오카 목사와 그의 열의에 감동한 일반 시민들이 발로 뛰어다니며 했다. 현재 일본에서 강제연행 문제를 연구하는 활동가들이 필수적으로 점검하는 문서 가운데 매·화장인허증이 있다. 말단 행정관청에 보존돼 있는 이 서류에는 사망자의 신원·사망일시·사인 등이 기재돼 있다. 패전 때 일본 정부와 대기업이 강제연행에 관련된 자료들을 소각하거나 은닉한 상황에서 매·화장문서의 조사 필요성을 부각시킨 것도 오카 목사의 공이라고 할 수 있다.

1918년 오사카에서 태어난 오카는 15살 때 다니던 상업학교를 중퇴하고 해군통신병 시험을 거쳐 히로시마 구레해병단에 들어갔다. 43년 히로시마 에타지마에 있는 해군병학교(해군사관학교에 해당)에 교원(하사관급)으로 간 그에게 45년 8월6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는 인생의 전기가 됐다. 정찰 갔다 돌아온 부하들로부터 시가지의 참상을 전해들은 그는 그날 밤 가까운 부하와 생도들을 불러 이대로 가면 일본 민족이 전멸하게 되니 도쿄에 가 천황이나 총리에게 전쟁중지를 호소하겠다는 결심을 밝혔다. 오카는 생도들의 신고로 헌병대에 끌려가 5일간 고문을 당하다가 일제의 항복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전쟁이 잘못됐다는 것은 진작 알았으나 5일밖에 싸우지 못했다며 깊은 고민에 빠졌던 그는 56년 도쿄의 루터교 신학교를 졸업해 복음루터교 나가사키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했다.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있는 조선인 원폭희생자 추도비. 태극기와 총련의 조화가 보인다.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있는 조선인 원폭희생자 추도비. 태극기와 총련의 조화가 보인다.
1958년 5월 나가사키원수협 상임이사가 됐다. 15명의 이사중 유일한 비피폭자였던 그는 매달 열리는 상임이사회에서 피폭자 완전원호법 제정운동과 핵병기 폐절운동 외에 조선인 피폭자 실태조사와 원호 착수를 주장했다. 하지만 64년 7월 그가 물러날 때까지 상임이사회에서 한번도 정식의제로 다루지 않았다. 그는 일본인 피폭자가 자국민 외에는 아무 관심을 두지 않는 풍조를 ‘피폭자 민족주의’ 라고 규탄했다.

그는 1965년 ‘나가사키 재일조선인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결성을 주도해 대표가 됐다. 한일협정 체결 당시 재일동포들의 대다수는 조선적이었다. 한국적으로 바꾸면 출국시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는 재입국허가를 받기가 용이했으나 조선적을 유지하면 그런 혜택을 받기가 어려웠다. 재일동포들의 유력한 생계수단이었던 폐품수집업(고물상)은 경찰의 인허가 대상이었는데 조선적 동포들에게 단속이 집중되곤 했다. 일본 행정당국의 노골적 차별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인권을 지키는 모임이 대체로 공산당과 가까운 변호사들 중심으로 일본 각지에서 발족했다. 나중에 공산당과 총련과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다른 지역의 모임이 하나씩 자연소멸된 반면 나가사키 모임은 오히려 활동범위를 넓혀갔다.

오카는 1971년 나가사키 시의원 선거에 나가 3기 연속 당선됐다. 그가 시의회에서 줄기차게 요구한 조선인 피폭자 조사는 예산 부족 등의 이유로 무시됐다. 마침내 79년 4월 당선된 모토시마 히토시 시장이 받아들였다. 모토시마는 1명을 촉탁으로 발령해 1년간 조사를 전담토록 했다. 81년 6월 발표된 결과는 당시 거주 조선인을 1만2천명에서 1만3천명, 사망자는 최저 1400명으로 잡았다. 오카는 이 수치를 믿을 수 없어 ‘지키는 모임’ 회원을 동원해 81년 7월부터 1년간 나가사키 시내의 조선인 발자취 조사를 했다. 회원 약 20명이 현장을 찾아다니며 조사한 결과는 시내 거주 피폭자 1만9391명, 사망자 9169명으로 나왔다. 조사 내용은 82년 7월 간행된 <원폭과 조선인> 제1집에 실렸다. 피폭자에 대한 조사는 강제연행 실태조사로 이어졌다. 원폭이 터졌을 때 조선인들이 나가사키에 있던 이유가 무엇이냐는 근원적 물음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원폭과 조선인>은 94년 6집까지 나왔다.

18살의 우익청년한테 구타를 당하기도 했던 오카 목사는 94년 7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사후 1년 2개월여만에 개관한 자료관은 교육용 전시 외에 해마다 대학생 2명을 뽑아 중국의 난징대학살 추도행사에 보낸다. 다카자네 이사장의 꿈은 나가사키원폭자료관 내방자의 1%가 평화자료관에 오도록 하는 것이다. 일본의 가해행위가 전시되지 않는 원폭자료관에는 해마다 50만명이 찾는다. 1%라면 5천명인데 행정이나 교육당국의 견제로 아직 이 수치에 도달하지 못했다. 한국 관광객이 자료관을 찾는다면 운영에 도움이 된다.

나가사키/글·사진 김효순 대기자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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