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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산업·재계

노조 45억-경제단체 1226억인데…보조금 회계투명성 노조만 겨냥

등록 2023-03-09 11:00수정 2023-03-10 15:40

나라살림연구소 최근 5년 비교
윤 대통령 “노조 법치 부정” 주장
모든 회계자료 공개하라 압박
“노조에 일방 요청은 형평성 어긋나”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22년 5월1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기 위해 마이크를 조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22년 5월1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기 위해 마이크를 조정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가 연일 ‘정부 지원금(보조금)’을 받는다는 것을 근거로 노동조합의 회계 투명성을 강조하며 지원금 사용 내역뿐 아니라 전체 회계를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잘못된 근거를 바탕으로 한 잘못된 요구라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가 경제단체 등에 견줘 막대한 지원금을 무상으로 받는 것도 아니고, 지원금 사용 내역은 지금도 공개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 보조금을 노조보다 많게는 수십배를 더 받는 경제단체에겐 같은 요구를 하지 않아 ‘노조 때리기’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노조만 받는 지원금?

8일 나라살림연구소에 따르면, 2017∼2021년 5년간 노동조합이 중앙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은 연평균 46억원이었다. 한국노총의 보조금이 연평균 38억원(83%)으로 대부분이었다. 반면 경제단체가 받는 보조금은 노조의 27배에 이른다. 2017~2021년 대한상공회의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 등 세 단체가 받은 보조금은 연평균 1226억원에 달했다. 더욱이 노조의 보조금은 정체상태인 반면 경제단체의 몫은 증가추세를 보였다.

2020년만 따져도 노조는 45억원의 보조금을 받은 반면 대한상의와 경총, 무역협회는 각각 1159억원, 686억원, 190억원을 받았다. 지방정부가 제공한 보조금까지 고려하면 격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노조가) 국민의 혈세인 수천억원의 정부 지원금을 사용”한다며 노조의 회계 투명성을 강조한 윤 대통령의 지난달 20일 발언은 그보다 수십배의 ‘혈세’를 쓰는 경제단체는 비켜나있다. 윤 대통령의 수천억원은 2018∼22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로부터 받은 보조금을 더한 1500억원을 뜻한다.

국가보조금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하는 대가로 주어진 것이지 무상으로 받은 것은 아니다.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국가보조금은 국가 외의 자가 행하는 사무 또는 사업에 대해 국가가 이를 조성하거나 재정상의 원조를 하기 위한 재원을 뜻한다.

실제로 한국노총은 2020년 ‘노동자 법률 구조 상담 사업’을 수행하고 14억6700만원을, 민주노총 소속 공공연대노조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생활지원사 근로 및 고용조건 실태와 개선방안’ 마련을 위해 1400만원을 받았다. 경총도 ‘청년 일경험 지원사업’을 하고 18억4800만원, 대한상의는 ‘청년 디지털 일자리 사업’ 명목으로 26억2200만원, 무역협회는 ‘스타트업 해외진출 바우처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42억2500만원을 지원금으로 받았다.

이런 사업 내용 및 지출내역과 결산 등은 정부가 운영하는 ‘e나라도움’(gosims.go.kr)에 공개되고 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노조가 “법치를 부정하고 사용 내역 공개를 거부”한다고 사실에 맞지 않는 주장을 펼친다.

이 때문에 정부 자문단조차도 윤 대통령의 발언이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고용노동부가 꾸린 ‘불합리한 노동관행 개선 전문가 자문회의’의 자문단장을 맡은 김경율 회계사는 “노조의 회계 투명성과 국가 보조금 지출은 다른 문제”라며 “윤 대통령의 발언은 내용이 잘못됐고, 대통령실의 메시지 관리가 잘 안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단체도 보조금을 잘못 쓴 게 있다면 당연히 시정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보조금 지출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노조에게만 강요하는 회계 투명성

정부는 최근 노동조합법을 근거로 노조의 회계 서류 비치·보존 의무를 점검하고 그 결과를 공개했다. 조합원 수 1000명 이상 단위노조와 연합단체 327곳에 회계 관련 자료를 요청한 결과 207곳(63.3%)이 전체 또는 일부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조보다 더 지원금을 받는 경제단체에 같은 점검이나 요구는 없었다. 노동조합법처럼 ‘상공회의소법’도 서울상의·지역상의 등이 결산보고서 등을 사무소에 비치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더욱이 경총은 지난 2018년 회계 부정으로 노동부 조사를 받고 잘못을 시정한 전력도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회계 투명성의 잣대를 노조에만 적용하고 있다.

정부는 동시에 노조 전체 회계를 외부에 공개하는 시스템을 준비하고 있다. 노동부는 올해 상반기를 목표로 노조 회계자료 공시시스템을 구축할 계획이다. 노조 조합원이 노조에 낸 조합비를 연말정산 때 세액공제(15%)를 받기 때문에 다른 지정기부금 단체처럼 공시해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정부의 행위에는 법적인 근거가 없다. 국세청 관계자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라 기부금을 받은 단체가 국세청 사이트에 회계 자료를 공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노조와 종교단체는 예외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이총희 회계사는 “지정기부금을 받은 단체에게 공시 의무를 지운 것은 기부금을 내는 사람이나 단체가 불특정 다수이기 때문”이라며 “기부자들이 감사가 어려운 기부금 단체와 특정인이 회비를 내고 의결권을 갖는 노조의 사례는 다르다”고 말했다.

더욱이 모든 단체의 회계 투명성 강화는 필요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일방적 밀어붙이기가 아니라 사회적 합의를 통해 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나라살림연구소 이상민 수석연구위원은 “어느 단체나 기업의 회계를 투명하게 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면서도 “이를 노조에게만 요구하고 경제단체나 종교단체 등에는 요구하지 않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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