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이 11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빌뉴스/로이터 연합뉴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가장 떨떠름하게 대하는 동맹국 정상이다. 2020년 미국 대선 때는 튀르키예에서 정권 교체가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하지만, 튀르키예가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가입에 동의한 직후인 11일(현지시각)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만난 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찬사와 덕담을 주고받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정상회담 머리발언에서 이번 회담은 “역사적 만남”이라면서 “당신의 용기와 지도력에 감사한다”고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도 상대를 “친애하는 내 친구”로 부르면서 “우리의 지난 모든 만남은 준비운동 같은 것이었고, 이제 우리는 새 과정을 시작했다”고 화답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다가오는 선거(내년 미국 대선)에서 행운을 바란다”고 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웃음을 터뜨리며 “무척 고맙다”고 했다.
갑작스런 유화 모드는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줄곧 반대한 튀르키예가 전날 입장을 바꾼 덕에 생겨난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의 방침 전환은 그동안 ‘나토 내 훼방꾼’이라는 말까지 들어온 터라 더 극적이다. 튀르키예는 나토 회원국이면서도 미국이 주도한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오히려 러시아산 에너지 수입을 늘렸다. 지난 5월 <시엔엔>(CNN) 인터뷰에서는 친구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특별한 관계” 덕에 우크라이나와의 사이에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핀란드에 이어 스웨덴에게까지 나토 가입의 길을 터주면서 푸틴 대통령의 등을 찌른 꼴이 됐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180도 방향 전환을 한 것은 스웨덴의 나토 가입을 볼모로 관계국들에게 얻을 만큼 얻어냈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스웨덴한테는 반테러법 제정, 쿠르드족 망명자 일부 송환, 유럽연합(EU) 가입 협조 약속을 받아냈다. 미국은 2019년 러시아제 방공시스템 구매를 이유로 중단한 F-16 전투기 판매 재개를 준비하고 있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브리핑에서 ‘미국도 튀르키예의 유럽연합 가입을 지지하냐’는 질문에 “계속 지원하겠다”고 했다. 유럽연합 합류를 열망했지만 이슬람이 주류라는 점 등이 걸림돌로 작용한 튀르키예는 재추진 동력을 얻은 것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을 독재자 취급하던 바이든 대통령의 태도 변화도 극적이긴 마찬가지다. 그는 20년간 집권한 에르도안 대통령을 백악관으로 초청하지 않은 유일한 미국 대통령이다.
앞으로 관건은 전체 전황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튀르키예와 서구의 밀착 및 러시아와 거리두기가 어디까지 가느냐다. 최근 이와 관련해 매우 시사적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일 에르도안 대통령을 만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해 개전 초 ‘최대 격전지’였던 마리우폴의 아조우스탈 제철소에서 82일간 싸우다 포로가 된 아조우연대 지휘관 5명을 데리고 귀국했다. 종전 때까지 이들이 튀르키예에 머물러야 한다는 조건으로 포로 교환에 동의했던 러시아는 ‘약속 위반’이라며 반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심지어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우크라이나는 나토 가입 자격이 있다”고도 했다.
미국과 튀르키예의 밀착은 중동에서 가장 중요한 동맹인 이스라엘과 관계가 소원해지고 있는 것과 대비된다. 바이든 행정부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사법부 무력화 시도에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에 반발하듯 이달 중국을 방문해 시진핑 국가 주석을 만날 예정이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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