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AP 연합뉴스
미국과 중국의 외교·안보 사령탑이 5월에 이어 다시 전격적으로 만났다. 미-중 정상회담 개최도 논의됐을 것으로 보이는 이번 회동은 북-러 정상회담 직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러시아 방문 직전에 이뤄져 한반도 주변국들의 긴박한 외교 행보가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백악관은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 보좌관이 16~17일 지중해 섬나라 몰타에서 중국공산당 중앙외사공작위원회 판공실 주임을 겸하는 왕 부장과 회담했다고 17일 밝혔다. 두 사람은 5월에 오스트리아 빈에서 만났을 때처럼 이틀에 걸쳐 12시간이라는 비교적 긴 시간 동안 회담했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양국 관계의 핵심 문제인 국제적·지역적 안보,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해협 등을 놓고 “솔직하고, 실질적이고, 건설적인” 대화를 했다고 밝혔다. 또 이 회동은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의 방중으로 이어지고 있는 고위급 소통 라인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만남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등 6일간의 방러 일정을 마무리하는 중에, 또 왕 부장이 18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 등과 회담하기 직전에 이뤄졌다.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설리번 보좌관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중국의 대러 지원과 왕 부장의 모스크바 방문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비교적 구체적으로 논의 내용을 공개한 것은 북-러 정상회담으로 북한의 대러 무기 지원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중-러의 지나친 밀착을 견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러시아에 비살상용 품목을 제공하는 중국이 북한과 함께 러시아를 더 적극적으로 도우면 전쟁의 구도를 크게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2월에도 “중국이 대러 살상무기 제공을 검토하고 있다”며 견제구를 날렸다. 김 위원장 방러 직전에는 설리번 보좌관이 북한이 러시아와 무기를 거래하면 “대가를 치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왕 부장이 북-러 정상회담에 배석한 라브로프 장관한테 이에 대한 설명을 들을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은 북-중-러 3각 협력 강화도 경계하고 있다.
애초 왕 부장은 19일 미국 뉴욕에서 개막하는 유엔총회 참석이 예상됐으나 돌연 러시아 방문 계획이 잡혔다. 미국 쪽에서는 왕 부장이 미국에 오면 11월에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미-중 정상회담 개최가 논의될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었다. 그 대신 모스크바를 찾는 왕 부장은 다음달로 예상되는 중-러 정상회담을 준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미국이 11월 미-중 정상회담 성사 가능성을 여전히 거론하는 상황이라 이번 회동에서 양국 정상회담 준비도 논의됐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최근 미국 국무부는 왕 부장이 유엔총회에는 불참하더라도 연내에는 방미할 것이라며 “조 바이든 대통령은 늦가을에 시진핑 주석을 만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한편 미국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번에 군사적 소통 라인 개설에 관해 중국 쪽으로부터 “제한적인” 신호를 받았다고 밝혔다. 중국은 다른 분야 소통 채널 구축에는 응하면서도 군사 분야는 소극적 태도를 보여왔다.
워싱턴/이본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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