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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미국·중남미

높아지는 ‘제국의 벽’ 곳곳에 균열

등록 2006-09-05 19:13수정 2006-09-06 18:07

2001년 9·11 테러 나흘 뒤인 9월15일 아침 뉴저지쪽에서 바라본 뉴욕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짙은 스모그 속에서도 자유의 여신상을 찾을 수 있지만,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은 보이지 않는다. 저지시티(뉴저지)/AP 연합
2001년 9·11 테러 나흘 뒤인 9월15일 아침 뉴저지쪽에서 바라본 뉴욕 맨해튼의 스카이라인. 짙은 스모그 속에서도 자유의 여신상을 찾을 수 있지만, 테러로 무너진 세계무역센터 쌍둥이빌딩은 보이지 않는다. 저지시티(뉴저지)/AP 연합
[9.11테러 5년 끝나지않는전쟁] ② 미국 패권은 유지되는가

미 국방부 예산 39% 늘어…‘미국식 질서’ 강요 가속화
유럽과 동맹 흔들…중국 영향력 확대 “잠재 위협” 긴장

지난 2002년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어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9·11 이후의) 지금 이 시기는 (2차 세계대전 후의) 1945~47년과 흡사하다고 본다. 국제정치에서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시사주간 <타임>은 4일(현지시각), 9·11테러 5주년을 특집으로 다룬 최신호에서 이에 동의했다. “어떤 이들은 9·11이 미국 시대의 종말의 시작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또다른 형태의 미국 시대의 시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9·11은 국제정치에서 힘의 균형을 변화시켰다.”

9·11 이후 세계 질서엔 많은 변화가 일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침공했다. 세계적 규모의 테러와의 전쟁은 국제 정치질서 판도를 뒤흔들고 있다. 아시아에선 중국이 몸을 일으켰다. 전대미문의 테러에도 불구하고 ‘미국 제국’은 계속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주요국 군사비
주요국 군사비
군사력에 기반한 미국의 확장=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최신호에서 “(9·11테러를 일으킨) 오사마 빈 라덴의 목표는 세계를 바꾸는 것이었다”고 적었다. 빈 라덴은 1990년대 초 소련 붕괴 이후 세계 유일의 슈퍼파워로 남아 있던 미국의 주도권을 겨냥해 테러를 감행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9·11 이후 미국 패권이 흔들렸는지에 대해선 부정적 의견이 많다. 미국의 군사력 확장 때문이다. 강경 보수 성향의 미국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오래 전부터 미국의 군사력 강화를 외쳤다. 대표적 네오콘으로 꼽히는 맥스 부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미국이 전세계에서 (제국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려면 국방비를 두배로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9·11은 네오콘의 바램을 어느 정도 실현했다. 2001년 9·11 이후 2006년까지 미 국방부 예산은 39%가 늘었다. 2001년 미국의 군비(3250억달러)는 세계 주요 14개국의 군비를 합친 것과 비슷했지만, 2005년엔 14개국 군비 전체보다 1160억달러가 많아졌다. <포린폴리시>는 “아마도 9·11로 인해 변화한 가장 확실한 건 펜타곤(미 국방부)의 예산이 하늘로 치솟았다는 것”이라고 평했다.

미국은 압도적 군사력을 기반으로 전세계에 미국식의 세계 질서를 전파했다. 9·11 이후 미국은 전세계 각 지역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새로운 전쟁에 유연하게 대처한다는 명분으로 ‘전략적 유연성’ 개념을 도입했다. 이에 맞춰 해외주둔 미군의 재배치와 미군의 신속기동군화가 가속화했고, 이것은 주한미군에도 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군사 패권
미국적 질서에 대한 도전=적어도 군사적으로 미국은 제국의 벽을 더욱 두텁게 쌓았다. 그러나 전세계적으로 너무 넓게, 얇게 퍼진 미군은 곳곳에서 어려움에 처하고 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상황의 악화는 대표적이다.

9·11 5년이 지난 지금, 서구사회를 겨냥한 테러는 아랍에서가 아니라 영국 스페인 독일 등 유럽과 미국 내에서 성장한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조직되고 모의된다는 점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외부가 아니라 오히려 ‘내부와의 전쟁’이 되고 있다.

대테러전의 와중에서 전통적인 유럽과의 동맹관계는 심각하게 깨졌다. 이라크 침공에 반대한 프랑스 독일 등 옛 유럽 동맹국들과의 관계는 독일을 빼고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지지했던 영국, 이탈리아 등과의 ‘의지의 동맹’ 역시 이라크 상황 악화와 함께 해이해졌다. 랜드연구소의 중동포럼의 제임스 도빈스 연구원은 “9·11 이후 5년 동안 미국의 외교는 테러리스트보다는 자신들을 고립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혹평했다.

‘미국 제국’에 더 큰 위협은 아시아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은 아시아는 물론이고, 미국 텃밭이라 불리는 남미와 아프리카에서도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올해 초 펴낸 연례 보고서에서 “중국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경쟁상대가 되고 잠재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군은 이미 중국을 겨냥해 태평양 지역의 해·공군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을 봉쇄해야 한다”는 얘기를 미 의회 군사청문회에선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러나 대테러전쟁 탓에 늘어나는 부시 행정부의 재정적자를 메꿔주는 건 중국의 고도성장이다. <타임>은 “미국은 중국에 점점 더 취약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이 미국의 패권에 구멍을 낼 것인가 하는 논쟁은 오히려 ‘중국 경제가 무너지는 게 과연 미국에 유리한 것인가’라는 의문을 낳고 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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