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률·주가 회복 “위기 적응력 키워”
전쟁 장기화로 유가불안·불균형 심화도
전쟁 장기화로 유가불안·불균형 심화도
미국 뉴욕의 세계무역센터(WTC)를 무너뜨린 ‘9·11테러’로 미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는 곧바로 ‘패닉상태’에 빠져들었다. 세계무역센터가 전세계 금융·상품시장의 중심부여서 충격은 더 컸다.
뉴욕증권거래소는 17일까지 문을 닫아야 했다. 다시 개장했을 때 다우존스지수는 하루 최대 하락률인 7.1%나 빠졌다. 유럽과 일본, 한국 등의 주가도 급락세를 기록했다. 유가와 금값은 반대로 폭등했다. 기업과 소비자 신뢰지수가 추락하고, 미국과 세계 경제 성장전망치가 크게 하락했다. 파국을 점치는 시나리오까지 등장한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9·11은 가뜩이나 위축된 세계경제에 재앙으로 받아들여졌다.
5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어떤가? 한마디로 비관적 전망이 상당부분 근거가 없거나 과장됐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미국과 세계 경제가 대강 1년 정도 지나자 회복세를 탔으며 이전보다 더 효율적이 됐다는 것이다. 〈월스트리저널〉이 최근 48명의 이코노미스트들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65%가 ‘경제가 2001년 당시보다 테러공격과 같은 충격에 더 잘 견딜 수 있게 됐다’고 응답했다.
하지만 〈비비시〉는 정부당국자들의 테러 대처가 적절치 못해 세계 경제의 문제점들이 더 불거지는 부작용도 빚어졌다고 진단한다. ‘테러와의 전쟁’이 혼미를 거듭하면서 유가 급등에 한몫을 하고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심화했기 때문이다.
당시 우려가 지나쳤음은 몇가지 지표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2000년 3.7%에서 0.8%로 뚝 떨어졌으나 2002년 1.6%로 회복됐으며 2004년에는 4.2%로 치솟았다. 2001년 성장률이 0.8%로 급락한 것과 관련해서는 닷컴버블 붕괴 여파로 미국 경제가 이미 2분기부터 침체 국면에 들어섰던 점을 감안해서 살펴봐야 한다. 테러 때문만은 아니라는 말이다. 세계경제도 성장률이 2001년 2.6%로 내려간 뒤 다음해 3.1%, 4.1% 등으로 뛰었다. 주가 또한 테러가 나고 한달쯤 지나자 대체로 이전 수준을 되찾았다.
항공·보험산업 등이 직격탄을 맞긴 했지만 9·11이 경제 전반에 오랫동안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은 데는 부양책이 큰 구실을 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금융시장의 파장을 최소화한다며 테러 당일에만 100억달러 이상의 돈을 풀었고, 기준금리를 연말까지 1.75% 포인트 내렸다. 이런 부양기조는 2003년까지 이어졌다. 부시 대통령의 두차례 감세 정책 등도 미국 경제가 침체 국면에서 일찍 탈피하는 데 일조했다. 이는 또한 세계경제의 상승세를 뒷받침했다. 다른 나라들도 이런 정책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부양책의 부담도 적지 않았다. 우선 연준의 저금리정책이 빚은 주택시장 거품은 지금 미국경제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미국의 경상적자와 재정적자 또한 마찬가지다. 언제든지 세계경제를 교란할 수 있는 복병이다. 고유가는 특히 비산유 개도국 경제에 치명타가 되고 있다.
이경 선임기자 jae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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