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상황 악화될라’ 몸사려
미국민 지지 얻는 계기도 안돼
미국민 지지 얻는 계기도 안돼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의 재판과 처형이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부시 행정부는 26일(현지시각) 항소법원의 사형 확정판결 이후 후세인의 신병을 이라크 정부에 넘긴 뒤 올해 안 처형을 염두에 두고 바그다드에 최고수준의 경계상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처형이 전격적으로 이뤄진 뒤, 부시 대통령은 30일 대변인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공정한 재판을 받고 처형됐다”며 “이라크인들의 법치사회에 대한 결연한 의지 없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마치 이라크인들이 재판을 주도하고, 처형을 주도했다며 발을 빼는 모습이었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정보가 거짓으로 판명난 뒤 후세인의 제거를 이라크 침공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민주주의의 중요한 이정표”라면서도 이처럼 ‘뒤로 숨는’ 태도를 보이는 데는 극도로 악화한 이라크 상황을 의식한 것이다.
부시 행정부가 이렇게 드러내놓고 처형에 관여했다는 인상을 주거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것은 과거의 교훈을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크다. 2003년 후세인 생포→2005년 총선→2006년 알카에다 지도자 아부 무사브 알자르카위 사살 등의 중요 사건 이후 승리감에 도취된 모습을 보여준 뒤 이라크의 상황이 오히려 더욱 악화했다. <뉴욕타임스>는 후세인 사형이 이라크전에 대한 미 국민의 지지를 얻는 계기가 될 수 없다는 게 또다른 이유라고 지적했다.
후세인에 대한 사형 집행은 부시 대통령이 내년 초 새 이라크 정책을 발표하기 앞서 골치 아픈 후세인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정지작업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조기 철군 압력에 맞서 오히려 증파를 고려하고 있는 부시 대통령으로선 이라크 정책에 염증을 느끼는 국민 및 의회에 ‘이라크 점령정책이 성공하고 있다’는 가시적 성과를 내놓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이 성명에서 시인했듯이 이라크 사태는 결코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라크인과 미군들에게 어려운 한 해의 말미에 이뤄진 후세인 사형 집행은 이라크 안 폭력 사태의 종결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이런 점을 고려해 부시 대통령은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담은 새 이라크 정책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이라크의 치안 확보를 위해 1만5천~3만명의 병력을 증파하는 동시에, 이라크 민심을 돌리기 위해 다양한 경제지원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워싱턴/류재훈 특파원 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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