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매티스(왼쪽) 미국 국방부 장관은 9일 “북한은 정권의 종말과 국민의 파멸을 이끌 어떤 행동도 고려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사진은 8일 워싱턴 미 국방부에서 베트남 응오쑤언릭 국방장관(오른쪽) 환영식에 참석한 매티스 장관. 워싱턴/AFP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화염과 분노” 등 자극적인 대북 발언의 파장이 확산되자 행정부 관료들이 긴급하게 불 끄기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행정부의 대북 정책 부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국무부는 트럼프 대통령 발언 뒷수습에 나섰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9일(현지시각) 정례브리핑에서 “미국은 많은 국가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대북) 압박 공세를 하고 있다”며 “대북 압박을 증가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도 어제 이 점에 대해 얘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대북 압박 차원에서 나온 것이지, 군사행동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인 셈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도 아세안 관련 회의를 마치고 귀국길에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오판을 막기 위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상황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트럼프 대통령의 8일 발언도 즉흥적이었던 것으로 점점 드러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들은 그가 대북 강경 메시지를 전달할 계획이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김정은이 종종 사용하는 종말론적인 비아냥에 필적할 만한 위협을 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못했다”고 전했다.
특히 신문은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관련 언급을 하면서 책상 쪽을 흘깃흘깃 쳐다봤지만, 그가 쳐다본 문서는 마약성 진통제 남용 문제에 관련한 내용으로 확인됐다며 “완전히 즉흥적인 발언”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는 어떤 측근들도 트럼프 대통령에게 재갈을 물릴 수 없다는 점을 입증한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독선과 인기 영합주의에 입각한 대외정책, 행정부 의사결정 시스템의 마비 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영국 <가디언>도 “트럼프 대통령이 즉흥적 선언을 하고 고위 관리들이 급하게 개입해 톤다운하는 시도는 트럼프 행정부 취임 후 6개월간 계속 반복돼왔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무부와 백악관, 백악관 참모들 간 공개적인 메시지조차 어긋나는 고질적 문제점도 다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대통령 취임 6개월이 지났는데도 현실적이고 조율된 대북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워싱턴 싱크탱크의 한 고위 관계자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제외하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정책인 ‘전략적 인내’와 다를 게 없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은 ‘전략이 없는 인내’”라고 꼬집었다.
또한 행정부 내에서도 대북 정책을 놓고 참모들의 의견이 나뉘어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전했다. 공화당 주류 입장에 가까운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나 허버트 맥매스터 국가안보보좌관 등은 북한을 강한 대응이 필요한 현저한 위협으로 여기고 있다. 이에 비해 스티븐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등 아웃사이더 출신의 국수주의 세력은 북한을 미-중 관계 갈등의 한 부분쯤으로 여겨 북한에 중요성을 부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배넌 수석전략가는 맥매스터 보좌관 같은 ‘전쟁 무리’들의 과도하게 공격적인 접근에 반대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북한 문제 논의에서 배제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어느 쪽도 ‘화염과 분노’와 같은 용어는 옹호하지 않는다고 신문은 전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측근들보다는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 대해 호감을 가진 편이라고 한다.
워싱턴/이용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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