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아프가니스탄 세번째 대도시 헤라트를 점령한 탈레반 전사들이 주지사 사무실 앞에 서 있다. 헤라트/AFP 연합뉴스
최근 일주일 사이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도시를 모두 점령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15일 오후(현지시각) 수도 카불 교외에 진입했다. 아프간 정부가 “평화적으로 정권을 이양하겠다”며 전격적으로 항복을 선언하면서,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침공을 받고 정권을 잃었던 탈레반이 20년 만에 다시 아프간 집권세력이 됐다. 지난 11일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 정보당국이 “(8월31일) 미군 철수 한달 만에 카불이 고립되면서 함락될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했으나, 이보다 훨씬 빨리 카불 함락과 탈레반으로의 정권 이양이 현실화한 것이다.
<아에프페>(AFP) 통신 등은 이날 압둘 사타르 미르자크왈 내무장관이 “아프간 국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도시에 대한 공격은 없을 것이고, 과도정부는 평화적으로 (탈레반에) 정권을 이양할 것”이라고 녹음된 연설을 통해 말했다고 전했다. <알아라비야> 등 아랍권 언론에서는 전날 대국민 연설을 통해 항전을 독려했던 아슈라프 가니 아프간 대통령이 곧 사임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탈레반도 이날 카불 교외에 진입하면서 성명을 통해 카불을 무력으로 점령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탈레반 대변인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평화적 항복 방안’을 두고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가 협상하고 있다며 조직원들에게 카불 관문에서 대기하고 입성하진 말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대변인은 또 “(아프간) 정부나 군에서 일한 모든 이들이 용서받을 것이며 누구에게도 복수할 계획이 없다”며 “아프간인들은 두려움에 도망치지 말고 아프간에 남아달라”고 말했다.
14일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한 공원에 북부 지역에서 탈레반과 정부군의 전투를 피해 피난 온 가족들이 앉아 있다. 카불/EPA 연합뉴스
지난 5월 미군 철수 발표 이후 농촌 지역 점령을 시작한 탈레반은 지난 6일 님로즈 주도 자란즈를 점령하며 공세를 본격화하더니, 8일 만에 아프간 34개 주의 주도 가운데 23곳을 차지했다. 탈레반은 14일 카불에서 11㎞ 떨어진 로가르주까지 진격해 아프간 정부를 압박했다.
탈레반이 “카불 내 외국인들은 떠나거나 새 정부에 등록해야 한다”고 밝힌 가운데, 미국과 영국, 독일 등 각국은 아프간에 머무는 대사관 직원과 자국민 대피에 몰두하고 있다. 이날 <로이터> 통신 보도 등을 보면, 미국은 주아프간 외교관들의 철수를 시작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14일 자국민 대피를 지원할 미군을 2천명 더 늘려 5천명까지 승인했다. 바이든은 탈레반이 미국의 철수 작전을 방해하면 “무력 대응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국 외교부도 이날 밤 주아프간 한국대사관을 잠정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공관원 대부분을 중동 지역 제3국으로 철수시켰다고 밝혔다. 다만, 아프간에 체류중인 재외 국민 1명의 안전한 철수를 위해 현지 대사 등 일부가 안전한 장소에서 머물며 본부와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현준 김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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