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반시리아 정치인 피에르 제마옐 레바논 산업장관이 암살된 베이루트 동부의 사건 현장에서 주민과 추모객들이 범행 지점을 바라보고 있다. 통제선을 따라 그를 추모하는 촛불들이 놓여 있다. 베이루트/AP 연합
반시리아 집권세력, 시리아-헤즈볼라 소행 의심
암살-보복 악순환 내전으로 발전 가능성
암살-보복 악순환 내전으로 발전 가능성
반시리아 정치인인 피에르 제마옐(34) 산업장관 암살로 레바논 정국이 폭발 직전이다. 그의 아버지인 아민 제마옐 전 대통령(재임 1982~88)이 “무책임한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촉구했지만 내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고 있다.
21일 베이루트에서 제마옐 장관 승용차를 들이받은 뒤 총을 난사한 이 사건을 저질렀다고 밝힌 세력은 아직 없다. 강한 의혹을 사는 친시리아 시아파 조직 헤즈볼라는 “범행 세력은 레바논을 내전에 빠져들게 하려는 게 분명하다”며 결백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슬람 수니파와 드루즈파, 기독교 세력이 뭉친 집권세력 ‘3월14일 연합’은 시리아를 배후로 지목했다.
이 사건은 지난해 2월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 암살 이후 반시리아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5번째 암살이다. 푸아드 시니오라 총리는 “살인자들이 레바논 운명을 지배하게 놔두지 않겠다”고 말했다. 미국과 유럽연합도 규탄 대열에 합류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 뒤 “불안과 폭력을 조장하는 시리아와 이란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레바논인들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마론파 기독교 정치세력의 대표인 제마옐 가문은 많은 암살·학살 사건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다. 75년 극우 기독교 정당인 팔랑헤당 창시자이자 제마옐 장관과 이름이 같은 그의 할아버지에 대한 암살 기도는 기독교-이슬람 세력이 충돌한 15년 내전의 빌미가 됐다. 팔랑헤당 민병대는 82년 대통령 당선자인 제마옐 장관의 삼촌 바시르 제마옐이 암살되자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습격해 수백명을 사살한다. 제마옐 장관 사촌 3명도 암살됐다.
이본영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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