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에서 아들리 만수르 헌법재판소장이 4일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만수르는 이날 오전 10시(현지시각) 취임 선서를 했다. 앞서 3일 밤 압둘파타흐 시시 국방장관 겸 군참모총장은 텔레비전 연설을 통해, 무함마드 무르시 대통령의 직무와 헌정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군부는 만수르를 수반으로 한 임시정부를 구성한 뒤 새 헌법을 제정하고 총선을 치러 새 민간정부를 출범시킨다는 일정도 발표했다.
군부의 쿠데타로 이집트 정국의 시계는 현상적으로는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대중적 저항에 밀려 하야한 2011년 초로 되돌아갔다. 쿠데타에 대한 대중적 지지도 높다. 하지만 이 사태를 계기로 이집트가 다시 대중민주주의가 확장되는 길을 가게 되리라는 전망은 별로 없다. 오히려 앞으로 국민들이 사회체제를 둘러싸고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분열 속으로 빠져들 것이란 예상이 많다. 권위주의 정권과 대중들 사이에 벌어지던 갈등이 세속주의와 이슬람주의를 지지하는 대중들 사이의 갈등으로 악화되리라는 우려가 높다.
임시정부는 국민 절반의 지지를 받는 무슬림형제단이 구심이 된 이슬람주의 세력을 실질적으로는 주변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임시정부를 주도할 세속주의 세력의 근간은 군부·사법부·경찰 등 구체제 기득권 세력이다. 무바라크 하야 뒤 시민세력 등은 군부의 정국 장악에 맞서 투쟁했다. 이들의 위태로운 동거가 얼마나 갈지 의문이다.
무르시 대통령의 실각은 경제와 치안 악화에 대처하지 못한 실정의 책임이 크지만, 사법부를 필두로 한 구체제 세력의 발목잡기 탓도 있다. 무르시 실각의 대표적 원인으로 거론되는 ‘비민주적 헌법’에 대해서도 “(헌법의) 초안자가 내놓은 문서는 비판자들의 주장보다는 훨씬 문제가 적다”고 중동문제 전문가인 네이선 브라운 조지워싱턴대 교수가 <포린 어페어스>에서 주장했다. 그는 무르시의 새 헌법을 대중들이 거부하게 된 상황의 일부 책임은 “무슬림형제단의 제안에 무조건 ‘아니오’ 전략으로 일관한 야권한테도 있다”고 비판했다. 야권의 비타협적인 대결 탓에 무르시 대통령이 정국 운영을 위해 ‘새 헌법 제정 때까지 대통령 칙령이 최고 권위를 갖는다’는 ‘현대판 파라오 선언’을 해 대중의 저항을 부른 측면도 있다.
하지만 무르시 정권이 집권 뒤 민생보다는 구체제 세력과의 권력투쟁에 집착한 것 자체가 이슬람주의 세력의 집권 기반과 역량의 취약함을 대중들에게 드러냈다. 살라피스트 등 보수 이슬람주의 세력의 이탈 등도 이슬람주의 내부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는 당분간 이슬람권 전반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의 표류를 예고한다.
그동안 도전자의 자리에서 세력을 확장하던 이슬람주의가 중대한 갈림길 앞에 섰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이슬람권에서 급속하게 세력을 확장해온 현대 이슬람주의의 원류는 이집트에서 나왔다. 즉 1928년 이집트에서 하산 반나에 의해 창설된 무슬림형제단이 그 뿌리다. 이는 무르시 정부의 기반이기도 하다. 이번 쿠데타로 무슬림형제단은 핵심 간부들이 대거 체포되는 등 다시 지하로 들어갈 운명에 처했다. 이집트뿐 아니라 터키에서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총리의 이슬람주의 정부가 최근 대중적인 반정부 시위에 봉착하고 있다.
무슬림형제단의 지하화는 기존 체제 및 세속주의와의 타협을 모색하던 이슬람주의 세력의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음을 의미한다. 이슬람주의 세력 안에서 비폭력 온건파가 퇴조하고, 알카에다 등 강경 무장세력들의 위상이 강화될 수 있다. 바레인의 수니파 성직자인 아흐마드 후사이니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집트는 우리에게 민주주의는 거짓이며, 선출된 대통령은 신화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고 있다”고 썼다. 이슬람주의 내부에서 세속주의와의 타협을 거부하는 목소리들이 더욱 커지리라는 전망이 힘을 얻는 이유다.
현재 이집트 주변은 온통 ‘분쟁중’이다. 서쪽으로는 리비아, 북쪽으로는 팔레스타인, 남쪽엔 수단 등 모두 이슬람주의 세력들이 내란 또는 내전을 벌이는 곳이다. 이들 이슬람주의 세력은 이집트와 무슬림형제단한테서 큰 영향을 받았고, 지금은 이집트 국경을 넘나들며 무기를 도입하고 훈련을 한다. 시나이반도 사막에는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의 훈련캠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슬람주의 무장세력은 당장 숨을 죽이겠지만, 이슬람권의 대표 국가인 이집트를 무대로 삼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이집트가 가는 길은 이슬람권 전체의 미래를 보여주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